2017-05-11 09:50

시선/ 현대상선 재계약 압박이 억울한 부산항 HPNT부두

현대상선의 동정표 구하기 작전은 성공이었다. 싱가포르 글로벌 부두 운영사인 PSA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현대상선과의 부두 계약을 재검토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에 놓이면서 모부두였던 현대부산신항만(HPNT)을 PSA에 매각했다. 유동성 확보에만 매몰된 것일까. 생각지도 않던 매각조건은 현대상선에 부메랑이 돼 날아왔다.

우선 2023년까지 HPNT에서 매년 70만TEU 이상의 물동량을 처리해야 한다. 물량에 상관없이 하역요율도 매년 일정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부산신항의 다른 부두를 사용하는 것도 국내에서의 부두 인수도 역시 금지다. 올해 150만개의 물동량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컨테이너당 하역요금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3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타 부두보다 TEU당 하역료가 20~30% 높다는 점도 현대상선으로선 불만이다. PSA가 재계약에 나서지 않을 시 70만TEU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을 모두 해외 자사 부두나 중화권 항만으로의 이전까지 검토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어려움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계약조건이 불리했다면 왜 부두를 팔았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HPNT는 헐값에 각종 혜택까지 내걸었기에 매각될 수 있었다. 그것이 HPNT의 당시 실매각가치였다. PSA를 악덕기업으로 낙인찍기 전에 현대상선은 성급한 결정부터 반성해야 한다. 현대상선이 모부두를 매각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스스로 화를 자초한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현대상선의 실질적 주인인 정부와 채권단의 책임도 크다. 동서항로를 기항하는 국내 유일의 국적 원양선사 살리기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해운업과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하역사업까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정부가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비올 때 우산을 뺏은 꼴이 됐다. 지난해 지분 인수를 시사했던 부산항만공사는 아직도 HPNT를 인수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국내 여론이 지나치게 현대상선 살리기에 쏠리면서 항만하역업계는 마지못해 동조해주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현대상선이 그런 ‘독소조항’도 모르고 부두를 매각했던 것이냐”란 비난도 나온다. 또 현대상선이 하역료를 잣대로 환적물량을 중국이나 대만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지 부두의 연결성이나 체선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무엇보다 현대상선은 세계 100여개국 500여 항만과 연결되는 네트워크를 갖춘 부산항의 빠르고 저렴한 고품질 하역서비스를 상기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PSA가 재계약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칫하면 거금을 투자한 부두를 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계약서를 왜 1년만에 갱신해야 하는 지에 대해 PSA를 납득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은 그래서 더욱 막중하다. 주인인 정부와 채권단은 적기에 현대상선을 지원해야 한다. 해운과 항만은 각각의 사업이 아닌 하나의 연결된 유기체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비오는 데 우산 뺏는 실책을 또 범해선 안 된다. 현대상선과 PSA가 서로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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