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2 09:41

여울목/ 예선 생태계 뒤흔드는 가스공사 무법행위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LNG)의 원활한 공급을 목적으로 지난 1983년 8월 설립된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국내 가스 수입량의 95%를 도맡고 있다. 해마다 단일기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3500만t 안팎의 LNG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한 해 거둬들이는 매출액은 30조원 안팎에 이른다.

막대한 양의 LNG를 수입하다보니 가스공사는 해운산업에서 큰 손으로 통한다. 가스공사가 진행하는 LNG 수송 입찰은 국내 해운업계를 떠들썩하게 한다. 입찰 결과에 따라 해운기업들의 미래가치가 요동친다. 하물며 예선산업에선 두말할 나위 없다. LNG기지가 있는 인천과 평택 통영 삼척 등지에서 가스공사는 예선시장 최대 고객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가스공사가 골목상권에 불과한 예선시장에서 ‘슈퍼갑질’로 원성을 사고 있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말 인천·평택 LNG기지에서 예선 사용 계약이 끝나자 새로운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 들어갔다. 전국 예선업자를 대상으로 입찰을 벌여 인천과 평택 LNG기지 예선사업자 5곳을 가려 뽑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입찰은 위법과 편법으로 얼룩져 해운항만업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과 평택항 예선을 선정하면서 입찰을 전국에 개방한 건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선박입출항법은 항만마다 예선업을 별도로 등록토록 하고 있다.

예선요율 산정 기준도 ‘적법’과는 거리가 멀다. 가스공사는 입찰에서 국적선박엔 10만원의 예선료를 받도록 하는 한편 외국선박 요율은 그의 900배인 9000만원을 제시했다. 국적선사가 수송하는 FOB(본선인도조건) 화물의 경우 가스공사가 운임과 예선료를 지급하지만 외국선박이 수송하는 DES(착선인도조건) 화물은 현지 수출화주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예선업계는 이 같은 요율 산정은 명백한 WTO 규정 위반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중앙예선운영위원회에서 요율을 산정토록 한 선박입출항법에도 배치되는 건 물론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형화주나 조선업체의 예선업 진출을 제한한 규정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업계에 따르면 인천항에선 금강선박 대성항업 삼척예선 해양선박 통영예선, 평택항에선 금강선박 대성항업 세종예선 용마선박 해양선박 등이 각각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대성항업 1곳을 제외하고 입찰 참여 업체들이 모두 가스공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통영예선의 경우 가스공사 OB들이 설립한 회사로 파악된다. 역대 대표이사들이 전원 가스공사 전직 임원들로 구성돼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선박의 입출항을 돕는 예선업은 시장 규모가 335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지만 항만과 선박 안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해운 분야 대표 공공재다. 대형화주들의 ‘슈퍼갑질’로 예선 생태계가 혼란에 빠져선 안 되는 이유다. 정부도 예선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각종 제도를 도입해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입찰을 강행해 지난달 28일 최종 사업자를 선정했다. 5곳을 뽑는 입찰이었던 만큼 응찰업체들이 모두 낙찰자로 결정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예선 입찰이 용인될 경우 앞으로 제2 제3의 가스공사가 나올 것은 명약관화하다. 해운항만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해당업체들의 인천·평택지역 예선업 등록을 불허함으로써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해운시장 교란 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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