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척의 예인선이 한 척의 LNG선박 입항에 투입돼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예선업계가 한국가스공사가 인천평택 LNG(액화천연가스) 기지 예선 사업자 선정을 놓고 진행 중인 입찰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파업으로 맞대응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항만예인선연합노동조합은 25일 오전 인천 역무선 부두에서 조합원과 선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가스공사의 갑질행위 규탄 및 선원 생존권 보장을 위한 집단 결의 대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가스공사 갑질로 LNG선 지원 예선업체인 (주)한국가스해운 선원과 임직원 30명이 3월31일부로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한 데다 타 지역 예선업체의 인천항 진출로 지역 예선 선원의 생존권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자 집단 행동에 나섰다고 밝혔다.
한국예선업협동조합도 24일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인천 지역 집단 결의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 예선업계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와 전국 항만 예선 배정 중단을 결의했다.
예선은 밀거나 당겨서 선박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업무를 수행하는 업종이다. 예선 배정이 중단될 경우 전국 항만에서의 선박 수출입항이 불가능하게 돼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 예선료 단돈 10만원 강요
이번 사태는 가스공사가 현행법을 무시한 채 평택·인천LNG 기지 예인선 사업자 선정 입찰을 강행한 게 발단이 됐다.
가스공사는 LNG 수송선사들이 구성한 ‘국적LNG 운영위원회’를 통해 예선 사용료와 사용 방법을 정한 뒤 이를 토대로 입찰을 진행 중이다. 전국 예선업자를 대상으로 입찰을 진행해 인천과 평택에서 각각 5척의 예선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가스공사는 입찰에서 국적선이 수송하는 FOB(본선인도조건) 화물에 대한 예선료는 10만원, 외국적선의 DES(착선인도조건) 수송 예선료는 9000만원을 받도록 했다.
입찰 요강대로라면 오는 28일 예선사업자가 최종 선정될 예정이다.
예선업계는 가스공사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현행법을 위반한 내용으로 입찰을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박입출항법 시행령 제12조는 예선업 대표자 3명, 예선 사용자 대표자 3명, 해양수산부 담당자 및 도선사 등의 해운항만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 중앙·지방예선운영협의회에서 예선과 관련한 사용료, 사용 절차, 배정 방법을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이해당사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예선 운영 전반을 결정함으로써 항만 운영질서를 확립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한 기준과 준칙을 지키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법에 근거해 중앙예선운영협의회는 LNG선 1척이 입출항할 때 소요되는 예선 비용을 7600만원(시간당 106만8710원)으로 정했다. 예선 10척이 61시간 동안 LNG선 입출항을 돕는다는 점을 고려해 책정한 금액이다.
대형 LNG선이 입항하는 경우 4척의 예선이 16시간 동안 접안을 돕고, 예선 2척은 교대로 20시간씩 화재 등의 긴급 상황 대처와 다른 선박 접근을 방지하는 경계·순찰 업무를 벌인다. 출항할 땐 4척의 예선이 평균 5.5시간을 보조한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국적선에겐 10만원을 받고 외국적선에겐 900배 많은 금액을 받도록 했다. 국적선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외국선사에게서 충당하라는 취지다. 자신들이 외국적선의 예선료까지 지급하는 점을 빌미로 삼았다.
예인선노조는 예선업체와 외국선사 간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국적선과 차별적인 예선료를 적용토록 강요하는 건 명백히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무역협정(GATS)과 보조금 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향후 우리나라가 투자자·국가간 국제중재(ISDS)에 휘말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선업협동조합도 “가스공사 같은 대형화주들이 법에 의거해 예선운영협의회에서 정한 예선 요율, 사용 절차를 무시한다면 인천뿐 아니라 전국 항만의 예선업계는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해수부도 항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통제권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치권 일제히 가스공사 입찰 성토
정부와 정치권도 가스공사의 이번 입찰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유섭 의원은 지난 12일 낸 보도자료에서 “최근 공사와 업체간 유착관계에 대한 감사원 지적과 시장 질서 혼란 야기를 문제로 해수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이 같은 조치를 강행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인천·평택 LNG기지 예선 입찰을 제대로 따져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무위 김성원 의원은 지난 4일 예선업 등록을 일정 기간 제한하거나 등록에 조건을 붙일 수 있도록 하는 등 현행 등록제를 개선한 ‘선박의 입항 및 출항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해수부는 “가스공사‘평택/인천생산기지 예인선 선정 및 ‘평택/인천예선(가칭)’ 법인 설립’이 항만별 등록예선의 이동을 조장하여 항만의 안정적 운영을 저해할 우려가 크고 법령에 정한 협의절차를 준수하지 않아 적법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유권해석하고 중재에 나섰지만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가스공사와 인천 예선업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인천항은 선박 입출항을 못하는 사상 초유의 물류대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항만예인선 노조는 "물류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스공사가 진행하는 입찰을 중단하고 선박입출항법의 테두리 안에서 전면 재검토해 입찰을 재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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