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물류업계에는 정초 한 해 전망과 이슈를 알아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자리가 있다. 바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해양수산전망대회’다. 해양수산부에서 국토해양부를 거쳐 다시 해양수산부로 정부 부처의 이름이 바뀌듯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세미나 내용도 조금씩 바뀌어왔다.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2017 해양수산전망대회’가 열렸다. 행사장은 불확실한 경제의 향후 흐름과 산업트렌드를 알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부에서는 경제전망에 대한 기조발표와 토론이, 2부에서는 각 분야별 이슈와 전망이 다뤄졌다. 해운해사 해양정책 수산 항만물류 4개 주제로 각각 세션이 진행됐다.
하지만 2부 행사 장소를 확인한 해운물류업계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회의장은 ‘수산’이 차지했고, 두 번째로 큰 장소는 ‘항만물류’ 세션에 돌아갔다. 해운은 해양정책과 함께 수십 명이 겨우 들어가는 곳을 배정받았다. 비좁은 장소는 곧 정부의 해운 홀대를 KMI가 동조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한국해운산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글로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큰 행사는 곤두박질 친 한국해운의 위치를 대변하고 있었다. 현장에선 “한국해운이 오징어 명태에 밀렸다”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KMI의 해운 홀대 징후는 예전부터 포착됐다. 해운 부서 연구원을 계약직으로 운영한다든지 관련 조직을 축소하는 비상식적인 개편이 이뤄져왔다. 지난해 예산 편성을 보면 해운이 KMI 내에서 얼마나 차별을 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연구예산 246억원 중 해운부문에 투입된 금액은 2억원이 채 안됐다. 수산에는 수십 배에 달하는 예산이 지원됐지만 위기일발의 해운에는 가장 적은 예산을 배정했다.
한진해운 사태를 앞두고도 KMI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해 해운업계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상반기 KMI는 국적선사 구조조정의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보고서를 다수 작성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 갈 경우 화주물류기업은 물론 부산항과 한국해운산업의 위치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KMI는 여타 보고서와 다르게 이 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가 양대 선사를 두고 어디를 살릴 것인지 저울질 할 때 KMI도 정부 눈치만 보며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셈이다.
KMI는 지난 1984년 해운산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통해 정책대안을 제시한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1988년 해운산업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꾼 뒤 1997년 수산과 해양을 포괄하는 현재의 종합 해양산업 연구소로 거듭났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해운산업 전문 국책연구기관의 현주소는 정부에 올바른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정부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주는 역할에 머물러 해운물류업계에 큰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작년 말 해운 분야를 연구해온 양창호 원장 취임으로 KMI에 대한 변화가 예상됐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더 큰 탄식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KMI가 정부 예산에 종속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권의 입맛에 영합하는 길을 걷는다면 국책연구소로서의 존재이유는 무의미해진다. 정확한 눈으로 선사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정부에 해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본업을 찾아야한다. 칠흑 같은 한국해운산업에 앞길을 밝혀줄 등대가 필요하다. KMI의 올바른 방향 설정이 긴요하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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