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에선 2년마다 한 번씩 LPI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LPI는 ‘Logistics Performance Index’의 줄임말인데요, 우리말로 ‘물류성과지수’ 또는 ‘물류경쟁력지수’라고 번역합니다. 각국의 물류경쟁력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죠. 순위가 높을수록 그 나라의 물류산업이 선진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세계은행은 2007년 이후 150~16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LPI 지수를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는데요, 지난 6월 말 2016년판을 내놨습니다. 올해 자료는 국가별 순위 변동이 눈에 많이 띕니다. 1위는 독일이 차지했습니다. 2014년에 이어 2회 연속 최우수물류국가로 선정된 겁니다. 2위는 6계단이나 순위 상승한 룩셈부르크에게 돌아갔습니다. 스웨덴도 6위에서 3위로 점프했습니다.
반면 2년 전 2위에 올랐던 네덜란드는 올해엔 두 계단 내려앉은 4위에 랭크됐습니다. 물류선진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싱가포르는 2회 연속 5위를 기록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7년과 2012년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뒤 다소 부진한 모습입니다. 이밖에 벨기에 오스트리아 영국 홍콩 미국 등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결과는 어땠을까요? 24번째에서 우리나라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2년 전보다 세 계단이나 떨어진 성적입니다. 우리나라는 2007년 25위에서 시작해 2010년 23위 2012년 21위 2014년 21위 등 줄곧 상승세를 타다 이번에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 아랍에미리트 핀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가파른 순위 상승을 이뤄 부러움을 샀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2년 전 우리나라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가 무려 15계단이나 훌쩍 뛰며 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27위에서 13위, 핀란드는 24위에서 15위, 남아공은 34위에서 20위로 각각 도약하며 우리나라를 앞질렀습니다.
160개국 중에 24위를 차지한 건 썩 나쁜 성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물류선진국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만족할 만한 결과도 아니죠. 더구나 올라가도 시원치 않은데 뒤처지기까지 했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5점이 만점인 LPI 평가에서 3.72를 받아들었습니다. 통관(3.45, 26위) 기반시설(3.79, 20위) 국제수송(3.58, 27위) 물류품질 및 역량(3.69, 25위) 화물추적(3.78, 24위) 정시성(4.03, 23위) 등 모든 항목에서 선진국에 비해 열위를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8월 초 정부는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의 물류국가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담은 ‘2016~2025년 국가물류기본계획’을 내놨습니다. 기본계획엔 물류스타트업 육성, 운송시장 진입장벽 개선 및 업종체계 개선, 철도화물운송 경쟁 환경 조성, 한중일 복합운송 확대 방안, 물류기업 해외진출 지원, 드론 로봇 등 첨단물류기술 개발, 친환경 물류환경 구축 등의 시행과제가 담겼습니다.
하지만 누누이 지적돼온 우리나라 물류적폐에 대한 대응책은 외면한 듯해 아쉬움을 남깁니다. 특히 2자물류 정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화주기업들이 물류자회사를 어김없이 운영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한 집안 식구를 통해 물류를 진행하다보니 비효율성이 높아지는 건 물론입니다. 전문물류기업 고사, 글로벌화 외면 등 부차적인 폐단도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3% 세액 공제를 통해 3자물류 이용을 장려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형화주들이 2자물류를 이용할 때 누리는 혜택이 그 이상이기에 정책 효과는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도로에 편중된 화물운송도 우리나라 물류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입니다. 도로의 수송분담률은 90%를 넘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환교통 효과가 낮은 보조금제도에만 의지해 철도와 연안운송을 장려하는 정책을 되풀이하는 실정입니다. 물류 종사자 처우 개선도 전문 인력 육성 및 물류에 대한 국민 인식 전환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지만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최근 물류환경은 전자상거래의 성장과 함께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물류산업이 현실에 안주한다면 향후 국제경쟁력은 더욱 뒤처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선진국 물류현장 벤치마킹과 융복합물류 육성 등 경쟁력 제고를 위한 물류산업 체질 개선에 조속히 착수해야 합니다. 물류기업과 화주 정부 학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밀도 높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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