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 문병일 전무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해운의 울타리 역할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보험요율을 동결한 것도 한국해운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보험료 동결에도 불구하고 가입 선사들의 철저한 안전관리로 클럽 재정건전성은 오히려 좋아졌다. 문 전무는 앞으로 IG클럽이나 해외보험사와 제휴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재보험, 전쟁보험 등 선사들이 가입하고 있는 다른 보험상품 진출도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Q. KP&I 상임이사인 전무로 취임한지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KP&I 설립기획단이 1999년에 만들어졌으니 그 때부터 계산하면 벌써 17년째 우리클럽에 몸담고 있어서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조화롭게 실행해나가자니 매사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불황기에는 성장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본을 탄탄히 하면서 호황을 대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직원들의 전문성과 서비스정신을 한 단계 올려야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해양사고와 관련된 모든 문제 해결책을 우리가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선주의 걱정 해소를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한다. 우리클럽이 원하는 인재상을 설정하고, 그런 인재를 회사가 주도해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행 중이다. 직원들의 자신감이 상승한 만큼 시장이 느끼는 신뢰도도 높아졌다고 믿는다.
또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5년 연속 매출이 정체 상태인데 원인분석과 함께 대응책을 마련하고 해운업계의 경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 목표를 재설정하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다시 이를 전 직원이 공유하는 일이었다. 구체적인 회사차원의 실행과제를 설정할 때 태스크포스팀(전담조직)을 꾸려서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진행했고 워크숍을 통해 전 직원이 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뒤 팀별 개인별 실행과제를 각자가 설정하게 했다. 또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급적 태스크포스팀을 통해 해결방안을 강구하고자 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목표를 더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직원들간의 소통이 활발해졌으며 실행과제도 능동적 적극적으로 수행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Q. 해운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계약갱신을 마쳤다. 결과는?
어느 기업이나 책임자가 단기실적에 천착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특히 보험사업은 장기사업으로 구분된다. 한 해는 손해가 날수도 있고 다른 해에는 이익이 날 수도 있는 거지. 보험계약자 입장에서도 보험가입, 이동, 탈퇴를 장기적 관점에서 결정해야 하지만 보험회사에선 특히 단기적 매출 증가에 매달려선 안 된다. 매출 증가를 위해 불량물건을 인수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높은 손해율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불량물건은 보험요율이 아무리 높아도 충분하지 않다’는 격언도 있다. 우린 무리하게 요율 인하 경쟁에 참여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불량물건 인수는 피하고 있다.
2월 갱신 후 가입 현황은 지난해 210개사 983척 2300만t 3158만달러에서 올해 195개사 1049척 2400만t 3086만달러로 변화했다. 척수와 톤수는 늘었지만 보험료는 줄었다. 보험료가 높은 노후선 위주로 선박이 매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천이펙트’(Churn Effect)라 부르는데, 국제적으로 모든 P&I클럽이 겪고 있는 해운불황기 현상이다. 갱신 후에 몇 개 가입선사가 폐업을 하고 여전히 노후선이 매각되고 있지만 다행히 신규 가입도 늘어 4월 말 현재 215개사 1080척 2400만t 3112만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Q. 올해도 보험료 동결을 결정했다. 클럽 운영에 차질은 없나?
클럽 재정을 걱정해주시는 애정 어린 관심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실제로 우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014년에 4.5% 인상한 것을 제외하고는 5년 연속 보험요율을 동결했다. 경쟁 IG(P&I국제그룹) 클럽들이 같은 기간 동안 25% 내지 50% 인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클럽이 인상하지 않으니 인상을 발표했던 IG클럽들도 국내에서만큼은 계획대로 인상하지 못했을 거라 추정한다. 우리클럽의 존재 효과지.
KP&I를 설립할 당시에 이미 국내 해운 업황과 연동해서 보험요율을 운영하겠다고 한 데다 최근 수년간 해운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걸 곁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재보험료가 크게 인상됐음에도 차마 보험요율을 인상할 수가 없더라. 반면에 IG클럽은 저 멀리 런던에 자리잡고 있어 우리 선주의 어려움이 마음 깊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선주의 불황과 상관없이 보험료를 매년 인상하겠다고 하는 거 아니겠나? 소액이지만 우리클럽의 보험료 동결조치가 국내 해운사 경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해운업계의 존재 없이 우리클럽 혼자서 존재할 수는 없지 않겠나?
다행히 가입선주들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안전관리를 잘 해 주셔서 여유자금을 까먹지 않고 오히려 늘릴 수 있었다. 그 결과 보험회사 전문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AM베스트가 우리클럽을 4년 연속 A-(엑설런트)로 평가했다.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른 지급여력비율(위험기반자본율, RBC ratio)은 작년 418%에서 올해 488%로 더욱 좋아졌다. 이 비율이 100% 미만이면 금융감독원에서 경영개선명령을 내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건전한 보험회사가 400%를 조금 넘는 정도이니 우리클럽은 재무적으로 아주 탄탄한 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재무건전성은 결국 한국해운의 이익으로 돌아갈 거다.
Q, IG클럽과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KP&I만의 경쟁력은 뭐라 생각하나?
작년까지만 해도 IG클럽과의 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는 않았다. 우리클럽의 신규 사업은 대부분 IG클럽을 공략해서 가져오는 식이었다. 작년까지 우리가 공격하면 방어만 하던 IG클럽들이 올해부터는 적극적으로 우리 가입선박을 빼앗으러 들어오더라. 자기한테 오면 얼마 낮춰주겠다고 우리클럽 가입선박을 적극 공략하는 거지. 무분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클럽의 보험요율은 거의 대부분의 선종에서 경쟁적이다. 불황기에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요율 아닌가? 우린 국내 해운기업을 잘 알고 있다. 보험을 인수할 때 여러 정보를 평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선박의 종류, 선령, 선급, 국적, 항로, 화물, 기항지, 선원국적, 보유선대, 사고기록, 안전관리 수준, 경영자의 안전관리 성향 등을 평가하고 부족한 정보가 있으면 감점을 주게 된다. 충분한 정보가 없는 IG 클럽의 보험요율은 시장 구석구석 정보를 갖고 있는 우리클럽의 요율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는 거지.
우리클럽이 갖고 있는 더 중요한 경쟁력이 있다. 한국에 위치하고 있고, 누구보다도 한국말을 잘 하고 한국의 사정을 잘 안다는 거지. 보험을 왜 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는 거 아닌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다. 사고가 나면 우린 해운회사와 아주 쉽게 초기단계부터 사고처리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 한국말로 아주 상세하게, 담당자가 할 수도 있고 대표가 할 수도 있고, 전화로 부족하면 언제든지 상호 방문해서 협의할 수 있다. IG클럽은 절대 할 수 없는 서비스지. 또 우리클럽은 ‘찾아가는 워크숍’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해운회사에 찾아가서 보험팀뿐 아니라 영업팀 운항팀 등을 상대로 해상운송에 관한 여러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행사다. 이런 기회를 통해 선화증권이나 용선계약서에 대해 해운회사 종사자 모두가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게 되면 많은 분쟁을 예방하거나 손해를 경감할 수 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이지.
Q. 최근 해외시장 진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진행 상황은?
사실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은 아무런 프리미엄 없이 그야말로 벌거벗고 실력 대결하는 거라 시장 확대가 쉽지 않다. 현재 외국계 가입선박은 45척, 240만달러로 전체 매출의 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전년대비 늘었고 앞으로도 매년 증가할 걸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 확대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한 가지는 매입보다는 매각이 많은 국내시장만을 의지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오게 될 것이니 미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두자는 거다. 다른 하나는 IG 가입을 서서히 준비한다는 의미다. IG에 가입하려면 국제적으로 얼마나 다양한 지역의 선박이 가입해 있느냐를 따진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해외시장에서 우리클럽의 인지도가 상승하고 있고 관심도 크게 증가하고 있어서 해외시장 진출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은 두가지 방식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직접 해외 선주들을 방문해서 가입을 권유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현지 P&I보험자와 제휴해 우리클럽 가입경로를 확보해 두는 거다. 베트남에서는 이미 현지 보험자 4곳과 제휴협정을 통해 선박이 가입하고 있고, 중국도 그 동안 선주가 직접 우리와 접촉했지만 앞으로는 현재 논의 중인 현지 보험회사와 제휴하게 될 경우 더 많은 선박들이 더 쉽게 우리클럽에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보험사와의 제휴는 빠르면 이달 내로 마무리 될 걸로 예상하고 있다. 이란 P&I보험자와의 제휴도 중동시장의 통로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란 P&I보험자간 인수합병 문제가 논의 중이고 미국의 프라이머리 제재(미국인 대상 제재)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라 조금 더 이란 현지 상황이 정리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 외에도 미얀마 말레시아 필리핀 등에서도 곧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Q. KP&I에 대형선사들의 참여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 대형선사나 대형선박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보다는 IG클럽을 선호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대형선박의 인수를 주저하기도 했고…. 우리클럽에 미래전략자문위원회라고 있다. 대형선사의 보험전문가들이 모여 신규사업 등 클럽 미래를 자문하는 곳이다. 여기서 올해 참으로 중요한 논의를 도출했다. ‘대형 선박이 가입하기엔 KP&I클럽은 여전히 부족한가’란 주제의 논의였지. 결론은 부족함이 없다는 거였다. 그 결과 현대상선과 폴라리스쉬핑에서 케이프급 대형선박을 가입했다. 물론 시도상선은 진작부터 대형 자동차선을 가입하고 있고 올해도 5척이나 추가로 가입했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보험전문가들이 모여서 KP&I의 능력과 신뢰도의 충분성을 확인해준 건 역사상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대형선의 가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향후 사업계획은?
올해 사업계획의 키워드는 기본을 탄탄히 하고 무리한 성장을 지양하되 성과를 지향하자는 거다. 톱5 리스크를 파악하고, 리스크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구체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업연속성을 공고히 할 생각이다. 회사가 주도해 인력양성에 힘쓰는 한편 팀간 층간 소통을 늘려 조직역량을 강화하고 경쟁자들이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경쟁력을 발굴하고 실행해나가도록 하겠다.
IG클럽이나 중국 등 해외보험사와 제휴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P&I보험 재보험, 전쟁보험 등 해운기업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을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선주상호보험조합법을 개정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올해는 IG클럽간 합병얘기가 설을 넘어서 실질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국내외 P&I보험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우리도 다양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Q. 업계 및 정부당국에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 목표는 한국해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자는 거다. 그런데 아직은 지금까지 해주신 것처럼 한국해운이 우리클럽의 울타리가 되어 주십사고 부탁드려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한국해운의 울타리가 될 거고 그 때 그 이익은 오롯이 한국해운에게 돌아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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