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철도 운영체계가 바뀐 지 1년이 지났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작년 4월 컨테이너 화물열차 전구간에서 사전계약 판매를 시작했다. 철도 사전 계약 판매란 그동안 경부구간에서 운영해오던 블록트레인(BT, 전세형 화물열차)을 모든 컨테이너 열차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던 코레일이 ‘만년 적자 기업’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한 카드로 철도 전 구간에 전세형화물열차를 도입한 것이다.
효과는 있었다. 그동안 운송사들이 원할 때마다 화물열차를 배정해주던 방식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새로운 운영체계에서 코레일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화물부문뿐만 아니라 전사적인 구조개혁 덕분인지 코레일은 출범 9년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흑자를 냈다.
지난해 일군 영업이익 흑자 규모는 당초 예상치인 780억원을 크게 웃도는 1034억원이었다. 2013년 1932억원의 영업적자와 비교하면 영업이익 증가폭은 2966억원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적자 개선 폭인 1100억원의 3배에 가깝다. 매출액도 전년대비 2548억원 늘어나 역대 최고인 4조8076억원을 기록했다.
지선구간 열차 축소로 ‘컨’ 수송량 대폭 감소
코레일은 수익성 위주의 운영효율화를 통해 흑자구조로 돌아섰지만, 대대적인 철도 환경 변화에 운송사들은 철도 수송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전 구간 왕복운행의 부담으로 철도수송물량은 급감했고, 운송사들은 수억원의 적자를 떠안았다.
코레일과 한국철도물류협회에 따르면 2014년 철도로 수송된 컨테이너 물동량은 20피트 컨테이너(TEU) 94만4693개로 지난해 109만7492TEU와 비교해 13.9% 감소했다. 2010년 이후 4년만에 100만TEU가 붕괴된 것이다. 월간 실적에서도 전년동월대비 증가한 달은 12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물량이 늘어나는 시즌 구분할 것 없이 1년 내내 비수기 같은 저조한 실적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운송사들은 수출입화물 이동이 가장 많은 경부구간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열차단위 판매 계약을 맺었지만 지선구간에선 철도이용을 대폭 줄이고 화물차를 통한 육로운송으로 전환했다. 적자가 예상되는 지선구간 수송이 줄어들면서 철도 수송량은 하락곡선을 그렸고 수송량 감소세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철도수송량이 줄어들면서 운송사들의 실적은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사전계약 판매가 시작되면서 줄곧 흑자를 보던 구간이 몇 개월 새 왕복열차의 상하행 불균형으로 적자를 보인 곳도 나타났다. 왕복운행 계약으로 수출물량이 많은 하행 열차는 계약화차만큼 채울 수 있었지만 상행 열차는 하행열차의 반도 못 채우는 날들이 지속됐다. 열차에 화물을 가득 채우거나 채우지 못하거나 운임은 정해져 있어 운송사들은 계약열차 물량 채우기에 열을 올렸다. 계약열차에 대한 운임이 고정적으로 나가게 되자 운송사들이 어떻게서든 화물을 끌어 모으기 위해 화주에게 덤핑운임을 제시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A 운송사 관계자는 “화물열차 사전계약이 도입되면서 상하행 열차 비율을 맞추기 위해 육상으로 수송되는 화물까지 끌어다 열차에 실었지만 상행열차를 채울 수 없었다”며 “계약한 만큼 화물을 실지 못해 작년 1년 동안 철도수송부문에서만 1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화물열차의 상하행 비율을 맞추지 못해 손실을 본 업체들 중 많게는 8~10억원의 손실을 떠안은 업체들도 있었고, 대부분 전년대비 50%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선노선을 줄이면서 부랴부랴 화물차를 수배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1년 학습효과 계약 화차수 ‘줄여’
1년 동안 철도 수송에서 ‘쓴 맛’을 본 운송사들은 지난 1월 컨테이너 전용열차 재계약에서 사전계약열차수를 대폭 줄였다. 1월 기준 컨테이너 전용열차는 15개 노선 29개 열차로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계약 화차수를 줄여 상행 비율을 줄여버린 것이다. 수출위주 국가에서 상행 열차까지 책임져야하는 부담이 철송회피의 가장 큰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B 운송사 관계자는 “내려가는 화물은 채울 수는 있지만 올라오는 화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재계약 할 때 철도수송을 줄여버렸다”며 “사전계약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철도 수송은 지속적으로 줄어 들 것”이라고 말했다. 1년간 노력했지만 하행열차에 비례해 일정비율 이상으로 상행 열차를 채우는 건 운송사들로선 감당하기 힘든 미션이었다.
운송사들이 철도수송을 줄이자 코레일은 추가 계약되는 신규 화물열차에 대해서는 상하행 비율을 개선했다. 4월과 5월 추가 신설되는 의왕-부산신항노선과 의왕-부산북항 노선은 모두 운임할인을 적용받는 저수요열차로 운행된다. 또한 하행과 상행 계약비율을 10:8에서 10:3 수준으로 확대해 업계의 부담을 덜어줬다. 업계는 저수요 열차가 지속적으로 도입돼야 대폭 감소했던 철도 수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코레일 물류사업부체제… 운송사에게 ‘득?’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1일 철도물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코레일 물류부문을 책임사업부제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국토부는 작년 12월 철도물류 부문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를 위해 여객과 화물의 운영을 분리한다는 원칙하에 물류 자회사 분리의 전 단계로 과도기적 책임사업부제 도입을 결정한 바 있다. 코레일 물류사업부는 지역본부에서 분리된 6개 물류사업단과 산하 89개 물류역으로 재편되며 총 1367명의 인력으로 구성된다.
장거리 대량수송 장점을 살리기 위해 화물역은 30개 이내 거점역 중심으로 재편하고, 30~40량 단위의 대량 운송이 가능하도록 시설 개량을 추진할 계획으로, 철도물류에 대한 종합적인 투자계획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도 4월 중 시작된다. 또한, 현재 여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선로배분, 선로사용료 기준 등을 재정비해 여객·화물간 공정한 운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운송업계는 코레일의 변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6개의 사업단이 구성되면 상대적인 실적 평가에서 적극적인 화물유치활동을 펼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숨 돌릴 틈 없는 철도수송환경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녹색물류 철도활성화를 위한 어떤 활동도 없었지만 최근 철도관련 세미나가 개최되면서 철도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이 보인다”며 “운송사 입장에서 현재 철도수송환경이 워낙 심각해 코레일의 변화가 마이너스 효과를 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운송사 관계자는 “코레일 변화가 지금 업계상황에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며 “상하행 불균형 부담을 줄이지 않고서는 철도 수송 증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철도수송전반에 대한 계획에서 코레일과 일방적인 얘기를 나눌 것이 아니라 운송사들의 얘기를 듣고 상황을 이해해줘야 철도 활성화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