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포신항 전경
지난해 1760만TEU의 컨터이너화물을 처리한 부산항이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부산 신항의 끊임없는 상승세를 배경으로 신항과 북항의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항은 기존 북항 컨테이너 물동량을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끌어가고 있다.
지난 2006년 부산 신항 개장 당시만 하더라도 북항과 신항 간의 화물 처리량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를 보였다. 신항이 개장된 2006년 당시 북항의 연간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은 1130만TEU에 달해 부산항 전체물동량의 98%에 이르렀다.
당시 신항 처리물량은 24만TEU에 불과했다. 북항과 신항 양항으로 나뉘어진 부산항은 2009년 신항의 본격적인 가동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됐다. 물동량이 대거 신항으로 이전하며 북항과 신항의 화물처리 비율은 예전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신항과 북항의 물량 처리 비율은 작년 62대 38이었다가 올해 3월 말 현재 65대 35로 벌어졌다. 신항으로의 화물 쏠림이 가속화되면서 북항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3월까지 북항은 154만2000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해 지난해 동기 대비 -6%의 감소세를 보인 반면 신항은 10.7% 증가한 288만 7천TEU를 처리하며 물동량 점유율 70% 고지를 앞두고 있다.
신항 북항 간 경쟁이 항만 공급 과잉문제로 번지는 모양새다. 전국 물동량에 비해 컨테이너부두가 과다하게 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항 광양항 인천항 평택항 울산항 포항항 등 기존의 컨테이너 전용부두 외에 최근 추가로 건설된 창원 ‘가포신항’은 최근 실적 부진을 이유로 컨테이너 부두를 포기함으로써 항만 난개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창원 가포신항 실적 예측 물동량 5% 그쳐
창원 가포신항은 지난해 7월 컨테이너 부두로 준공했지만 물동량 부족으로 현재까지 개장조차 못했다. 급기야 해양수산부는 최근 건설된 가포신항을 컨테이너 전용부두에서 일반화물부두로 바꾸는 실시협약 변경을 추진했다.
가포신항은 2천TEU급 컨테이너선이 접안 가능한 부두 2선석과 다목적 부두 2선석, 관리부두 등 총 5개 선석으로 건설됐다. 하지만 부두 완공 후에도 컨테이너 물동량이 대부분 인근 부산 신항으로 몰리면서 신규 화물 확보가 여의치 않자 민간투자사업자 측은 컨테이너부두 2선석을 일반화물부두로 변경하고 MRG(최소운영수입보장) 협약도 수정할 것을 요청했으며 해수부는 이를 수용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건설한 컨테이너 부두가 결국 일반잡화부두로 전락하고 만 셈이다. 일반적으로 부두 1개 선석 건설에 최소 1천억~4천억원 가량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처럼 뻔히 눈에 보이는 실패를 왜 아무도 예측을 못했을까? 지도상으로 보면 가포신항과 부산 신항은 불과 채 30㎞가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이웃해 있다. 부산 신항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허브항만으로 연간 처리되는 물동량이 1100만TEU에 이른다.
매주 368개의 정기 컨테이너선 항로로 전세계 400여개의 항만을 연결하고 있기도 하다. 부산 신항을 지척에 두고 엄청난 정부 예산을 들여가며 가포신항을 건설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해운업계는 가포신항 건설을 엉터리 수요 예측과 지자체의 실적 경쟁이 빚은 결과로 보고 있다.
해수부는 2001년 6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 용역을 근거로 마산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2011년 20만5000TEU, 2020년에는 39만2천TEU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현재까지 마산항에서 처리한 물동량은 예측 물동량의 5%에 불과하다. 화물 유치를 위해 창원시 역시 컨테이너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물량 유치에 노력했지만 매년 물동량은 급격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해수부는 가포신항에 대형선박이 통항할 수 있도록 준설작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가포신항 진입항로 준설사업은 마산항 앞바다 5km 거리를 12.5m 깊이로 준설해 대형선박 통항을 가능케 하는 사업으로 총 311억원의 예산을 들여 2015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포신항 사태가 ‘해피아’(해수부+마피아)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창원지역 시민연대측은 “가포신항 사업도 해피아 소행”이라며 “가포신항 건설사업자인 마산아이포트㈜ 대표도 초대부터 3대까지 해수부 고위관료 출신으로 부사장과 상무 등 주요 간부 역시 해수부 관료 출신이 많아 공직에 있으면서 국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엉터리 사업을 계획, 집행하고 퇴임 후에는 그 사업 시행에 직접 참여해 막대한 이윤 및 국고 낭비에 앞장섰다”고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이 단체는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불필요한 항로준설에 막대한 혈세를 들여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단 창원 가포신항뿐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 전국토의 컨테이너선 전용부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국에 산재한 컨테이너 전용부두에 과연 그 만큼의 화물을 채울 수 있느냐다. 해운항만업계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인 부두를 전국 곳곳에 만들면서 가동을 못하고 ‘개장휴업’하는 부두가 생길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궤를 같이해 인천신항의 증심 추진도 항만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천신항은 통항선박 크기를 4천TEU급에서 8천TEU급으로 확대하기 위해 항로 준설(14m→16m)을 준비 중이다. 인천항은 지정학적 위치상 대 중국 화물의 관문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컨테이너선이 인천항과 중국 주요 항구를 매일 연결하고 있다.
부산 지역에선 인천항의 증심을 곱게 보지 않고 있다. 잦은 스케줄로 움직이는 근거리 무역항로에 관연 8000TEU급 선박을 투입할 선사가 있을지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또 그 많은 화물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지난 1990년대에 양항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한 광양항 역시 가동 20년이 돼가도록 대형 원양선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물동량 역시 242만TEU로 14개 선석으로 연간 460만TEU의 화물처리 능력 대비 절반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배후물류단지에는 불과 17개 국내업체만 입주해 있어 화물 창출이 매우 힘든 실정이라 미래 전망 역시 그리 밝지는 않다.
선사 역시 수출입 화물량, 환적의 편리성과 배후물류 부지, 운송, 보관 등 여러 여건을 비교해 기항 여부를 결정하기에 천편일률적으로 부두만 지어 놓는다고 해서는 결코 능사가 아닌 것이다. 또 각 항만공사가 물동량 유치를 위해 선사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지역별 항만공사 간 화물 쟁탈전이 국부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전체 컨테이너 화물의 75%를 처리하는 부산항마저 북항의 화물 이탈에 따른 부두사용료 감면 요구로 국가로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또 자동화, 현대화로 시간당 화물처리 능력 역시 10년 전에 비해 2~3배 높아져 부두가 예전처럼 혼잡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지역별 균형 발전과 낙후된 지역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바 아니다. 하지만 항만 인프라만큼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천혜의 부산항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전국 각지에 국가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수배에 이르는 컨테이너 부두를 지을 필요가 과연 있는지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간의 치열한 항만 경쟁으로 부두의 생산성은 매년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부산항 역시 예년에 비해 높은 화물 처리 능력으로 실제 처리 능력의 2배를 처리하고 있어도 큰 혼잡함을 느낄 수 없다. 부두를 짓는게 능사가 아니라 지어진 그 부두에 화물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더 큰 문제다. 수조원에 이르는 아까운 국민의 혈세로 지어진 부두가 개장휴업하는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는 좀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 부산=김진우 기자 jw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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