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2 10:08

여울목/ 국적선사 외면하고 해외선사에 곳간 여는 금융권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채권은행들이 지급 보증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한 탓이다. 대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주도로 3000억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 지원을 추진 중이다. 한진해운은 계열사 지분과 최은영 회장이 보유한 한진해운홀딩스 지분, 최 회장의 가회동 자택 등을 담보로 내놓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제시했지만 신디케이트론 성사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렵다.

국내 양대 선사는 만기 도래하는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 상환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한진해운은 내년에 39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현대상선은 내년에 갚아야할 회사채가 4300억원이나 된다. 몇 년째 이어진 적자경영으로 운영자금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회사채 상환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국내 대형선사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해운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해운사들이 기대를 걸었던 영구채 발행은 불투명해졌으며, 해운보증기금 설립도 금융당국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에 가로막혀 난항이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두고 통상마찰 우려, 산업간 형평성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왜 하필 해운업만을 지원하는 금융기관을 설립해야 하느냐는 시큰둥한 시선이다. 이 중 통상마찰 우려는 수수료율을 시장요율화할 경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OECD 규정은 사실상 조선업 지원을 제한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산업간 형평성 문제는 금융당국의 해운업 몰이해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농지관리기금이나 방송발전기금 등 특정산업분야에 한정된 기금을 설립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해운보증기금의 정당성을 지적한다. 해운산업은 그 중요성으로 볼 때 다른 산업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9%를 담당하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는 점은 교역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해운산업의 가치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전쟁 등 국가비상상황에서 인력 및 전략물자 수송 등 제4군(軍)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연간 3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주요 외화가득산업이라는 점도 해운이 국가기간 산업의 지위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요건이다.

산업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금융권은 정작 조선산업 지원에는 적극적이다. 조선업 지원을 위해 외국선사에 돈을 빌려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은 노르웨이계 선사인 골라LNG에 총 9억5천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삼성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수주를 간접 지원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범 아랍권 선사 UASC 10억달러, 미국 스콜피오탱커스 3억달러, 캐나다 티케이 3억달러, 칠레 CSAV 3.4억달러 등 올해 들어 정책금융기관이 주요 외국선사에 지원한 규모는 30억달러에 달한다. 덴마크 머스크라인이 대우조선해양에 1만8000TEU 컨테이너선을 발주했을 때도 12억달러를 지원했다.

이 같은 행태를 두고 국내 해운업계에선 ‘이적행위’라는 거친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책금융기관들이 해외 선사 지원에 골몰하는 사이 한국 외항선사들은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최근 6년간 80여곳의 선사들이 문을 닫았으며 국내 1~2위 벌크선사인 STX팬오션과 대한해운은 법정관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조선산업과 수출산업 지원을 위해 해외선사에 망설임 없이 곳간을 여는 금융권이 해운산업 지원을 두고 형평성 문제를 따지는 건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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