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화장을 하고 치장을 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포장도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포장업계에 오랜 기간 내공을 쌓은 관계자가 포장을 쓰레기 취급하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포장은 크게 상업포장과 공업포장이 있는데, 공업포장이 물류와 연관이 깊다.
언뜻 생각하면 물류와 포장의 연관성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른다. 하지만 포장은 물류가 시작되는 시작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류는 포장의 치수변화에 따라 수송의 적재효율이나, 보관·하역의 효율이 영향을 받아 물류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생산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이 경제적·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물류표준화’이다. 물류표준화는 포장의 치수를 정확히 표준화시켜 포장을 복수 단위로 묶어 한 개의 물품처럼 취급하는 방식이다. 포장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파렛트 적재효율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차량이 운행돼 물류비가 증가하게 된다.
물류과정에서 사용되는 골판지나 파렛트, 컨테이너, 수송차량 등의 특성을 고려한 뒤 제품을 생산해야만 적재효율이 100%에 가깝게 도달돼 물류비가 절감된다. 국내 모 대기업의 경우, 제품 설계하기 전 포장의 치수를 사전에 미리 설계해 포장 표준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연간 수백억의 물류비를 절감했다. 포장 표준화 여부에 따라 물류과정에서 손실되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포장의 재료 및 강도의 표준화도 필요하다. 제품의 성격과 가격, 소비자에 따라 사용되는 포장 재료는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사전에 포장의 특성에 맞게 위험 요소에 대비한 재료 및 강도에 대한 표준화를 거쳐야 한다.
한 가지 예로 농산물의 경우 수확 후에도 수분이나 산소가 어느 정도 있어야만 신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밀폐된 포장용기는 피해야 한다. 그래서 산소나 수분의 투과율이 높은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반면 과자를 비롯한 식품류의 경우 수분과 산소를 차단하는 재료를 사용해야 부패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부충격(인장강도, 압축강도, 파열강도 등) 을 사전에 미리 고려해 초적 물리적 강도를 미리 계산해 표준화를 해야 한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RFID 역시 물류와 포장을 함께 융합시키는 새로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RFID는 물류정보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이전에는 바코드를 사용해 각각의 제품을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RFID는 한번에 수십개의 정보를 읽어내는 장점이 있다.
RFID를 포장에 접목할 경우 소비자는 단 한번의 태그로 제품의 유통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다. 가령 소비자가 고기를 구매했을 때 그 고기에 부착된 태그를 찍어내 구입한 고기와 관련된 대량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RFID를 통해 1,2차 가공자, 생산자, 유통센터, 판매실적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물류정보처리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더구나 제품의 수량과 재고 파악도 가능해 생산품을 조절하고 반품 및 오배송을 감소시켜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국내의 한 약품 회사에서 RFID를 도입해 각 약국에 납품된 물량의 수량 및 재고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전체 물동량을 추적해 생산일정을 맞추고 있다. 이 덕분에 반품이 줄어들고 제품의 오배송이 줄었으며, 연간 50억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회수용 플라스틱 포장상자의 등장은 물류와 포장의 상호연계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 현재 대부분의 포장에 사용되고 있는 ‘골판지’의 경우 그 원재료인 펄프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골판지로 인해 막대한 쓰레기 발생은 물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와 습기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이를 대체할 회수용 플라스틱 포장상자의 등장은 소비자는 물론 물류업계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플라스틱 상자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강도가 뛰어나며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기존의 골판지로 포장된 제품은 공정과정을 거치면서 손상을 입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플라스틱 상자의 경우 재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농산품의 경우 골판지를 사용하는 경우 제품 손상률이 높았지만,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할 때는 선도를 위한 저장처리만 마치면 바로 대형마트 등으로 이동된다. 이후 다시 회수돼 세척 과정만 거치면 다시 농장으로 이동해 반복해서 사용된다.
그동안 골판지를 줄곧 사용했던 까닭은 회수용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관리하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플라스틱 용기를 전문적으로 회수하는 업체가 등장하면서 플라스틱 용기를 재사용해 제품 손상을 줄이고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앞서 살펴 본 몇 가지 사례로 알 수 있듯 포장산업의 발전은 곧 물류비의 절감으로 연결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물류과정에서 포장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포장산업은 여전히 타 산업과 비교해 소외된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포장산업 소외된 경향 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패키징기술센터에 따르면 세계 포장산업의 시장규모는 6400억달러(2009년 추정치)로 연간 6% 내외의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다. 국내 포장산업 시장규모는 약 27조원(2009년)으로 소프트웨어(20조원), 바이오(15조원), 로봇(1조원)과 비교해 산업의 규모가 더 크다.
고용규모 역시 16만8000명의 노동집약적 산업이며 동시에 전체 기업이 99% 이상이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중소기업형 산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포장산업은 그간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비교해 전반적인 기술력·인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장관련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포장산업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70% 수준이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고도화된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인력양성 측면에서도 교육기관이 전국에 1곳에 불과 하는 등 전문인력 공급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정부의 미비한 정책적 지원도 포장산업이 소외받는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생산기술연구원 내에 패키징기술센터를 설립·운영해 기술개발, 인프라 구축, 수요 확산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나 산업의 규모·중요성에 비해 지원규모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국내 시장규모 대비 예산규모가 소프트웨어산업, 로봇산업과 비교해 1/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공업포장협회 수송포장기술연구소 김형빈 소장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패키징진흥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 포장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장업계, 각 단체 묶는 연합체 구성해야
취재과정에서 만난 포장업계 관계자들은 포장산업이 더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포장산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연합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한국수출입포장협회 김영순 부회장은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의 인식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포장과 관련된 정부 부서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며 “포장산업은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내고 있음에도 교육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며 포장 진흥법이 하루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김영순 부회장은 이 때문에 약 40여개의 포장관련 단체가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합체를 구성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 포장과 관련된 단체는 약40여 곳에 이른다. 이들 단체는 개별적인 모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지만, 협회나 단체 차원에서 모임을 갖는 경우는 없다. 이 때문에 포장산업이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김 부회장은 “각 협회차원에서 각자의 사업을 잘하고 있지만, 포장산업 전반이 더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각 협회나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포장업계가 함께 연합체를 구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듯 보인다. 또 다른 포장업계 임원급 관계자는 “과거에 협회차원에서 모임을 갖고 연합체를 구성할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회의를 거듭할수록 각 협회의 이익과 추진방향이 조금씩 상이해 갈등이 증폭됐고, 결국 연합체 구성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 협회차원에서 한발 물러서 양보를 하면 포장업계 전반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성사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전세계 포장산업의 전망
최근 프리덤 그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포장산업은 2017년까지 연간 4.6%의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은 5.7%의 성장을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시장규모도 현재 334억 달러 수준에서 2017년 418억 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 상황에서 국내 포장업계는 분열 보다는 화합으로 선로를 틀어 연합체 차원에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화학, 의약 및 생활 소비재 분야에서 기업들의 포장 고급화와 안전성 강화를 위한 신규 설비 구매율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중남미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과 소비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이 전문 포장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데 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포장 설비 공급은 독일, 이태리 및 미국 주요 6개 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의 생산량은 전체의 21%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밖의 제조업계는 주로 소형 포장 기계나 A/S용 부품 등에 한정돼 생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글로벌 포장시장에서 미국은 현재 유통과 판매 부문에서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나 중국의 지속적인 제조업 확대로 인해 2017년에는 시장 판도가 역전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2012년 미국의 포장 시장규모는 58억 달러이며 해외로 이전했던 자국기업들의 생산설비 리턴 현상으로 인해 연간 2.1%의 성장이 예상된다.
아시아 시장은 포장 부문의 발전이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며, 연간 5.7%의 성장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2017년에 전체 포장 수요의 21%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개인 소득 증가로 인해 건강과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증대됨에 따라 전체 포장 산업 규모의 확대는 물론 기술적 발전을 통한 신규 설비의 출현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질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물류, 포장과 융합해 나가야
포장산업의 전망이 밝고 물류와 융합화 되어 가는 추세에 발맞춰 물류업계도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미약한 게 현실이다. 특히 IT기술의 도입, 지속가능성, 그리고 소비자 안전이 강조되는 현 시점에서 포장산업 역시 정보전달 체계 구축, 포장 표준의 확립, 순환형 물류 분야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형 포장개발, 포장의 안전성 향상이 당면한 주요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포장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통합적인 아이디어 창출과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관련기업의 이해를 돕고 상호협력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물류와 포장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연구기관의 육성 또한 절실하다.
스페인의 경우 스페인 패키징 수송 물류 연구소를 설립해 물류와 포장이 함께 융합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류를 중심으로 포장산업과 함께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류와 포장산업 모두 발전가능성이 클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두 산업의 융합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장산업은 아직까지 포장진흥법도 재정되지 않았을 정도로 소외되는 측면이 큰 만큼 물류업계가 먼저 포장산업에 손을 내밀어 스웨덴의 사례와 같이 ‘패키징 수송 물류 연구소’를 설립해 물류비 절감은 물론 포장산업 경쟁력도 함께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많이 본 기사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