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4 10:20

기획취재/‘화마’에 신음하는 물류창고 정부 대책은 제자리걸음

우수물류창고 인증기업 화재 안전성 우수
화재기업 ‘솜방망이 처벌’ 안 돼

지난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에서 초유의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40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오늘, 참혹했던 당시 현장의 모습이 잊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잊히기엔 아직 이르다. 2013년 상반기 여전히 물류창고는 곳곳에서 활활 타올랐다. 더욱이 창고 화재는 지난 2007년 이후 2012년까지 지속해서 증가추세를 보였다.

최근 6년간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 현황.

소방방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창고시설(냉동/냉장창고·물품저장소·기타 창고·하역장) 화재발생 건수는 641건 수준이었으나 2012년 1191건으로 무려 85.8% 증가했다. 특히 2013년 물류창고 화재는 이미 800건에 육박해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된다.

매달 불타는 물류창고, 대비책 찾아야

올 상반기 창고 화재는 8월 기준으로 이미 700건을 넘어 지난해 1191건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주요 물류창고 화재사고 사례를 분석해보면 샌드위치 패널로 인한 화재사고가 눈에 띄게 많다. 더구나 매월 한차례 이상 물류창고 화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대형 화재사고는 지난 5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코리아냉장 물류창고 화재이다. 이 사고로 코리아냉장 창고가 40일 동안 불탔고, 10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재의 여파로 지역주민들은 악취, 수질, 토양오염 등 일상생활을 하는데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다. 특히 코리아냉장 대표는 지난 2008년 이천시에서 발생한 코리아2000의 대표이사와 동일인인 것으로 드러나 대형물류창고 화재를 두 차례나 발생시킨 책임자 처벌이 미흡하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전남 목포시 삽진공단의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3500㎡ 규모의 물류창고 3개동을 태워 약 1억50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6월에도 물류창고에 화재의 불길이 연달아 타올랐다. 지난 6월 26일 경기도 용인의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소방서추산 3억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다.

사고가 발생한 창고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데다가 가연성 물질인 에어컨 냉매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양쪽 창고로 번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에는 외국계 기업인 타이코AMP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헬기 1대와 소방차 17대, 소방관 100여명이 현장에 출동해 진화 작업을 했으나 창고 전체가 전소됐다. 지난달에는 부산 강서구 한 펌프 제조공장 물류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약 50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내고 1시간 40분 만에 진화됐다.

익명을 요구한 물류창고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가 위탁을 맡긴 물류창고에도 화재가 발생해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화재로 인해 우리 물류창고는 화재예방과 관련해 직원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는 ‘우수 물류창고 인증’도 받았다”며 “앞으로도 지속해서 화재예방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워 다시는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다. 화재는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에 발생하고, 화재가나면 그 피해규모나 피해액이 큰 만큼 사전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샌드위치 패널, 화재 키우는 ‘주범’

앞서 언급된 물류창고화재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진압이 어렵고 ‘전소’됐다는 점이다.
물류창고는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그 피해규모와 피해액이 큰 만큼 사전에 화재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물류창고 화재를 대비하기란 쉽지가 않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물류창고는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로 건축돼 화재가 발생하면 초동조치가 어렵고 유해한 물질로 인해 자칫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샌드위치 패널이 주요 창고자재로 사용되는 주요 원인은 역시나 비용절감이다. 샌드위치 패널은 다른 건축자재에 비해 월등히 값이 싸고 변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임시로 존재하는 건물이나 창고 등에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샌드위치 패널은 열에 매우 취약하며, 가운데 삽입된 스티로폼이 열로 인해 녹아내릴 경우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붕괴될 우려가 크다. 더욱이 유독가스가 새어나오면 연소하기 때문에 화재 진압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2008년 50명의 사상자를 낸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 화재역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화재를 진압하는데 어려움이 따랐으며, 유독가스로 인해 창고에서 탈출하지 못한 직원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인터뷰를 한 A기업 관계자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우리 창고도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에서 발화된 불로 큰 피해를 입을뻔한 사례가 있다. 다행히 초동조치를 신속히 해 불은 진압했지만 당시 불이 삽시간에 번지는 것을 보고 샌드위치 패널의 위험성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물류창고에 화재가 발생하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창고 내 다양한 화재예방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만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과연 효과적으로 화재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샌드위치 패널로 건축된 물류창고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한 번에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인 만큼 샌드위치 패널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대책마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화재예방, 우수 물류창고 인증 실효성 있나

물류창고 화재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우수 물류창고인증’ 제도이다.

국토교통부는 물류창고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로 서비스 향상과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우수 물류창고업체 인증제도’를 실시했다. 첫 인증을 받은 물류창고는 (주)한진 물류창고를 비롯해 총 12개 사업장이다.

인증심의를 총괄한 홍상태 인증위원장은 “앞으로 물류창고 인증제도가 정착되면 화주기업에 물류창고 선정 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물류창고 업체의 서비스 경쟁을 유도해 화주에 대한 서비스 기능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수물류창고 인증이 창고전문업체 인증이 아닌 개별창고 인증으로 전락해 정책목적과 도입취지가 흐려졌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대다수 물류업체는 정부가 물류산업 발전을 위해 준비한 정책인 만큼 협조하기 위한 차원에서 인증을 취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우수물류창고 인증을 받은 업체 중 (주)농협물류의 실태조사를 해 봤다.

농협물류는 화재사고 예방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매주1회 화재방지 안전교육을 실시해 인화물질 취급금지, 가연성물질 방호조치, 센터내부 흡연금지 교육, 소화기 사용교육 등 정기적으로 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더욱이 송탄소방서와 매년 1~2회 합동훈련을 실시해 화재 발생 시 화재진압 훈련, 부상자 수송훈련, 소방차 도크 접안, 내부 진압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게다가 분기1회 직원을 대상으로 소화기 사용법을 비롯해 화재 초기 진압 요령을 교육해 초동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농협물류창고 관계자는 “농협물류는 직원의 안전사고 방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 안전사고 제로 사업장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 사업장은 주기적으로 직원 안전교육을 실시해 직원이 화재 및 안전 전반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협물류 화재구축 시스템은 체계적인 편이었다. 우선 자동 관제 장비 설치를 통해 화재발생 시 경보작동 및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한 소방 설비가 구축돼 있다.

또 소화기 199개, 옥내외 소화전 88개, 스프링클러 4989, 청정소화설비 32개, 화재감지기 323개, 청정소화설비 32개, 피난설비 유도등 320개, 비상조명등 553개, 완강기 1개, 상수도 소화용수 7개가 설치돼 있다.

직원교육 또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농협물류는 연간 안전, 보건 업무교육 계획을 수립해 계획에 의거 년도, 분기, 월, 주 단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농협물류 관계자는 “우리 물류창고는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셔터가 올라가 직원이 탈출할 수 있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화재예방 교육 및 시스템 구축을 체계적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결과 우수 물류창고 인증을 받은 농협물류의 화재예방 대책은 우수한 편이었다. 특히 주기적인 직원 교육으로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은 물론, 안전 전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우수 물류창고 인증제도가 화재방지의 완전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예방효과는 큰 것으로 파악됐다.

물류창고-소방서 합동훈련

하지만 우수 물류창고 인증을 받았더라도 한계는 있다. 우수 물류창고 인증 평가항목 중 안전부분은 약 10%수준에 불과해 물류창고 화재 예방과 관련된 체계화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으로 물류창고와 소방서가 협력해 실시하는 물류창고 화재예방 활동이 주목 받고 있다.

경남 진주소방서는 지난 8월 한달 간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운 외곽지역 농공단지 및 산업체에 대한 현지적응훈련을 실시했다. 이날 훈련은 진주시 산업단지 내 CJ 진주 물류센터를 비롯해 총 4개소에서 실시됐다. 중점훈련사항은 산업단지 등 신규조성에 따른 최단 출동로 및 입주업체 현황 파악, 물류창고 등 신규 대상물의 화재취약요소 확인 및 그에 따른 진압대책 강구, 화재발생시 소방차량 부서배치 및 소방용수 현황 파악 등이다. 박유진 대응구조과장은 “산업단지는 화재나 재난 발생 시 초기대응이 어렵고 다수의 인명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지적응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화재발생시 소방대의 즉각적인 대응 및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산소방서 역시 지난 8월 23일 샌드위치 패널 구조의 창고시설에 대한 화재예방 집중홍보에 나섰다. 샌드위치 패널은 양면 철판사이에 스티로폼 또는 우레탄 등 단열재가 채워져 있어 화재진압 시 철판이 주수되는 물을 막아 진화가 어렵고 건물붕괴 위험이 있어 소방관이 건물내부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등 화재에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오산소방서장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는 화재 시 급격한 연소 확대와 붕괴의 위험이 있어 화재진압에 어려움이 있다. 제2의 안성 코리아냉장창고 같은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서는 관계자의 안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양주소방서도 창고 화재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남양주소방서는 대형화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정책 수립을 위한 샌드위치패널 구조 공장·창고에 대한 일제 실태조사를 8월말까지 실시한다. 남양주소방서는 지난 2008년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시 냉동창고화재, 같은 해 12월 12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는 샌드위치패널 구조 건축물의 특성으로 인해 피해가 더 컸다고 지적했다. 남양주소방서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건축물 관계자의 자체 안전관리능력 강화, 실제 화재발생 시 초기대응 요령 등에 초점을 둔 맞춤형 화재예방 정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양주소방소 재난안전과장은 “이번 실태조사를 계기로 건축물 신축공사 시 안전에 취약한 샌드위치패널 사용을 가급적 자제하고 비교적 안전한 우레탄폼 재질 등이 함유된 패널을 사용할 수 있도록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우수 물류창고 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물류창고등록제에 등록된 물류창고 역시 타 물류센터보다는 화재대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창고등록제 등록창고인 동원산업 이천냉동냉장센터는 화재에 대비해 스프링클러, 소화전, 소화기 등의 각종 소방설비와 경보설비를 구축하고 비상상황 시 대응절차를 마련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행동요령을 주기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이천냉동냉장센터에선 화재 발생 시 화재발생 경보 및 소화설비가 자동으로 작동되며 바로 화재 진압에 들어간다. 또 인근 소방서로 속보기가 작동해 화재를 알려준다. 이천소방서와 연계된 이천냉동냉장센터는 매년 2회 합동훈련도 실시한다.

이와 함께 이천냉동냉장센터에는 전기설비의 점검을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열화상 카메라 측정과 절연저항 측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센터진입로에 경비실을 설치해 외부인원을 통제하고 있으며, 보안업체를 통해 CCTV 90여대를 가동하여 도난 방지를 하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마련 시급

우수 물류창고 인증제, 물류창고등록제 그리고 합동훈련은 아직까지 물류창고 화재를 막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화재예방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조치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창고 화재예방에 초점을 맞춘 정부차원의 지원은 미비한 상황이다. 우선 강화되어야 할 사항은 정부의 정책지원 또는 법률 강화이다. 현재 샌드위치패널 건축물에 대한 정부차원의 승인은 비교적 유연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샌드위치패널을 사용한 물류창고가 계속해서 손쉽게 건축되고 있다.

하지만 안전행정부가 종전에 3000㎡이상인 샌드위치 패널 건축물에 적용해야 했던 난영성 마감자재의 사용을 1000㎡이상인 건축물로 강화한 것은 박수칠 일이다. 또 내년 3월부터는 난연성 자재확인 절차를 도입해 감리자 또는 검사자가 건축감리와 상용승인 조사·검사시에 복합자재의 적합시공을 직접 확인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강화되어야 할 사항은 물류창고 책임자의 처벌 강화이다. 앞서 확인했듯, 지난 2008년 코리아2000 대표와 지난 6월 발생한 코리아냉동창고 대표는 동일인이다. 하지만 두 차례의 대형 물류창고화재를 일으킨 주범인 이 기업의 대표는 여전히 화재 책임을 지지 않고 뒷전에서 지켜보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은 결국 또 다른 대형 물류창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발화점이 된다. 책임자에게 조금 더 법적인 책임을 물어 화재발생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다면 지금과 비교해 화재발생률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강화되어야 할 사항은 현장 실무자의 화재교육이다. 이는 국가차원에서 화재예방과 관련된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실제 화재가 발생한 사례를 보면 현장에 근무하는 직원의 실수에서 화재가 발화된 경우가 다수 있었다.

2007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물류창고 화재는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고, 올 상반기에만 벌써 700건이 넘는 창고화재가 이어졌다. 연이어 발생하는 물류창고화재로 재산피해는 물론, 인사사고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 하반기 더는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중심이 돼 방화수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 배종완 기자 jwbae@ksg.co.kr >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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