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2 13:44

논단/ 선하증권상의 부지약관의 효력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내용물을 검사할 합리적 방법이 없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 유효성이 인정됨



1. 부지약관(不知約款)의 의미와 내용

부지약관(Unknown Clause)이란 선하증권상에 운송물의 내용, 중량, 품질 등에 관하여 운송인은 알지 못한다는 취지를 기재한 약관을 통칭한다. 송하인이 컨테이너에 적입한 화물의 수량 및 상태 등을 운송인이 알지 못하는 경우에 그 수량 및 상태 등이 선하증권상의 기재와 차이가 있더라도 운송인이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송하인이 신고한 명세임’(particulars declared by shipper), ‘송하인이 선적하고 계량함’(shipper’s load and count), ‘적하되었다고 함’(said to contain 또는 said to be) 등의 문언을 선하증권에 기재하게 되며 이를 부지조항, 부지약관, 부지문언, 부지문구 등으로 칭하는 것이다. 이하 부지약관에 관한 우리 판례의 입장을 중심으로 부지약관의 효력에 관하여 살펴본다.

2. 부지약관에 관한 판례 검토

가. 대법원 2001. 2. 9. 선고 98다49074 판결

(1)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선하증권에 운송물이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되었다는 기재가 있는 무고장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은 그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할 것이고, 따라서 무고장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운송물의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입증함에 있어서는 운송인으로부터 운송물을 수령할 당시의 화물의 손괴사실만 입증하면 되는 것이고 나아가 이러한 손해가 항해중에 발생한 것임을 입증할 필요는 없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선하증권에 기재되어 추정을 받는 ‘운송물의 외관상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검사하면 발견할 수 있는 외관상의 하자에 대하여서만 적용되는 것이지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발견할 수 없는 운송물의 내부상태에 대하여서는 위 추정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2) 송하인측에서 직접 화물을 컨테이너에 적입하여 봉인한 다음 운송인에게 이를 인도하여 선적하는 형태의 컨테이너 운송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법 제814조 제1항 소정의 선하증권의 법정기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하여 혹은 그 선하증권의 유통편의를 위하여 부동문자로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수령하였다.”는 문구가 선하증권상에 기재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이와 동시에 “송하인이 적입하고 수량을 셈(Shipper’s Load & Count)” 혹은 “……이 들어 있다고 함(Said to Contain……).” 등의 이른바 부지(不知)문구가 선하증권상에 기재되어 있고, 선하증권을 발행할 당시 운송인으로서 그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 상태에 대하여 검사, 확인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적당한 방법이 없는 경우 등 상법 제814조 제2항에서 말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부지문구는 유효하고, 위 부지문구의 효력은 운송인이 확인할 수 없는 운송물의 내부상태 등에 대하여도 미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선하증권상에 위와 같은 부지문구가 기재되어 있다면, 이와 별도로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되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다 하여 이에 의하여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의 상태에 관하여까지 양호한 상태로 수령 또는 선적된 것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 선하증권 소지인은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인도하였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같은 취지에서 원고가 운송인이 운송물을 보관, 운송하는 도중에 화물이 손상된 사실, 즉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하자 없는 운송물을 인도하였으나 운송인으로부터 하자가 있는 운송물을 인도받은 사실을 주장·입증하여야 한다고 본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선하증권의 추정력, 무고장선하증권에 기재된 부지약관의 효력과 그 내용, 입증책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3) 원심은, 그 판시 채택 증거에 의하여 이 사건 컨테이너 24개 중 2, 3개에 약간의 못, 자갈, 나무조각 등의 이물질이 발견되었고, 이 사건 화물을 부산항에서 양하한 1995. 7. 7. 부산 지역의 강우량이 107.7mm이며, 위 양하시에 이 사건 컨테이너 1개의 상부가 움푹 파여 있고(50cm×100cm), 좌측 상부레일 1곳(길이 30cm)이 휘어 있는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한편 이 사건 화물이 젖게 된 것은 해수(海水)가 아닌 담수에 의한 것인데, 중국 대련에서 송하인으로부터 운송인에게 화물이 인도된 1995. 7. 2. 및 같은 달 4일∼5일경에도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렸고, 운송인의 해상운송과정에 특별한 기상이변이나 해난사고는 없었으며, 컨테이너는 방수처리가 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 왔는데 이 사건 컨테이너에서 빗물이 스며들 만한 구멍은 발견되지 않았고, 이 사건 컨테이너가 물에 침수되거나 컨테이너 야적지가 물에 잠기는 사고는 없었던 사실, 이 사건 컨테이너 24개 중 21개의 컨테이너에서 886롤이나 되는 많은 양의 내용물이 찢기거나 찔려 있었으나 못, 자갈 등의 이물질은 불과 2, 3개의 컨테이너에서 발견되었을 뿐인 사실, 비록 운송인이 컨테이너를 제공하더라도 이 사건 선하증권 이면약관 제6조에 화물이 운송인에 의하여 포장, 적입되지 아니한 경우, 컨테이너의 적입, 포장 또는 선적 당시 또는 그 이전에 송하인의 합리적인 조사에 의하여 명백히 발견될 수 있는 컨테이너의 부적합성 또는 하자로 인한 운송물의 손해에 대하여 운송인은 책임지지 아니한다고 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에 쉽게 발견되는 이물질이 있는 경우 송하인이 운송물의 적입시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 사실, 화물에 발생한 손상 형태로 보아 컨테이너에서 발견된 이물질에 의한 손상이라거나 롤과 롤간의 접촉이라기 보다는 날카로운 물체에 찍히거나 찢어진 상태이며, 이는 운송물의 적입이나 적출과정에서 지게차의 앞날부분에 찍혀 나타날 수 있고, 실제 수하인인 한솔무역이 각 보세장치장에서 컨테이너에 있는 이 사건 운송물을 적출할 때 종이로 된 롤이 손상되지 않도록 통상 사용하는 롤 페이퍼 크램퍼(roll paper cramper)를 사용하지 않고 지게차를 사용한 사실 등에 비추어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하자 없는 운송물을 인도하고 한솔무역이 운송인으로부터 위 운송물을 인도받을 당시 하자 있는 운송물을 수령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되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채증법칙 위배나 심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나. 대법원 1987. 6.23. 선고 85다카2666 판결

원심판결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인이고 선하증권의 발행인인 피고가 선하증권의 최후소지인인 원고들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질 것인가의 여부는 미국해상물건운송법과 선하증권의 약관에 의하여 가려질 것인데, 위 미국해상물건운송법의 관계규정과 감정인의 감정결과에 따르면, 해상물건운송인은 송하인이 통고한 기호, 수량, 용적, 중량이 수령한 물건을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지 아니하다고 의심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검사할 합리적인 수단이 없는 경우, 즉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화물의 기호, 수량, 용적, 중량을 기재하지 아니하고 선하증권을 발행할수 있고 운송물의 내용에 관한 부지약관을 기재하여 선하증권을 교부할 수 있으며, 위와 같은 특별사정이 있어 부지약관이 유효한 경우에는 부지약관에 의하여 유보부로 기재된 운송물의 내용에 관한 사항은 운송인을 구속하지 아니하므로 피고가 이 사건 선하증권을 발행할 당시 이러한 특별사정이 있었음이 입증된다면 그 부지약관은 유효하고, 따라서 원고들이 위 선하증권에 기재된 화물과 동일한 화물이 콘테이너에 실제로 적입되어 피고에게 인도되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피고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수 없다 할 것이고, 반대로 피고가 위와 같은 특별사정을 입증하지 못하여 부지약관의 효력이 부정된다면 위 선하증권에 기재된 운송물에 관한 사항은 피고를 구속하는 추정적 증거가 된다 할 것이므로 피고가 화물이 실제로 적입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선하증권소지인인 원고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전제한 다음, 그 거시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관계에 나타난 바와 같이 피고가 필리핀국의 공인기관소속 검량인의 검량결과가 송하인인 닛치빌상사의 통고내용과 일치되자 콘테이너의 중량계량 등의 점검조치 없이 이 사건 선하증권에 송하인이 서면통고한 내용 그대로 화물 및 포장의 명세, 개수, 중량, 용적을 단정적으로 명시하여 발행한 사실에 비추어 위와 같은 특별사정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비록 피고가 선하증권에 송하인이 적입 및 검수하였다는 뜻과 운송인은 단지 콘테이너 적치장에서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운송하는 책임만을 인수하였다는 취지의 뜻을 기재하였다 하더라도 위 선하증권상의 화물에 관한 사항의 기재는 피고를 구속하는 추정적 증거가 된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선하증권에 기재된 화물이 실제로 적입되지 아니하였다는 입증을 하지 못하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할 것인 바, 피고의 전거증만으로는 원고들의 거증에 비추어 송하인인 닛치빌상사가 피고에게 화물을 적입하지 아니한 빈 콘테이너만을 인도한 것이라는 피고의 주장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결국 피고는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들에 대하여 문제의 콘테이너에 적입되어 피고의 선박에 선적된 것으로 이사건 선하증권에 기재된 화물의 인도불능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여 줄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원심판결을 기록과 대조하면서 검토하건대 원심의 위와 같은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소론이 지적하는 바와 같은 선하증권, 부지약관 및 입증책임에 대한 법리오해, 심리미진 내지 채증법칙 위반으로 인한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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