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7 09:08

논단/ 해상보험에서 보험자의 면책사유인 ‘감항능력 결여’와 인과관계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법학박사)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른 근인관계보다 그 범위가 넓은 광의의 개념이라는 최근의 판례를 중심으로

<1.24자에 이어>

다. 선박 기간보험의 감항능력 결여와 보험자의 면책요건
영국 해상보험법 제39조 제5항은 “기간보험(Time Policy)에서는 해상사업의 어떤 단계에서이든 선박이 감항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묵시적 담보가 없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with privity of the assured) 항해하게 했다면 보험자는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attributable to unseaworthiness) 일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박 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로 인해 보험자가 면책되려면 손해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어야 하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감항능력의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 즉 손해의 일부나 전부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이러한 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자가 부담한다.

영국 해상보험법상 선박 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요건으로서 피보험자의 악의(privity)는 피보험자가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의 원인이된 사실뿐 아니라, 그 원인된 사실로 인해 해당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위험을 견디어 낼 수 없게 된 사실, 즉 감항능력이 결여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아는 것(positive knowledge of unseaworthiness)뿐만 아니라,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turning the blind eyes to unseaworthiness)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대법원 2002년 6월28일 선고 2000다21062 판결 참조). 

라. 감항능력 결여와 보험자의 면책여부
원심은 예인선인 이 사건 선박의 침몰이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선박 기간보험에 해당하는 이 사건 보험계약 및 공제계약의 부보대상에 해당함을 인정하고,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피고들의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면책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1) 이 사건 항해는 겨울철에 부선 3척을 중국 상하이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탕가항까지 장거리 원양항로로 예인·운송하는 것인데, 이 사건 선박의 예인방식은 이러한 원양항해와 겨울철 계절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등 이 사건 선박은 이 사건 항해에서 통상적인 위험에 견딜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 감항능력이 결여됐다. 
2) 이 사건 사고의 경위에 비추어 보면, 예인방식의 부적절함에 따른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는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이거나, 적어도 이 사건 사고 발생의 원인(遠因) 내지 조건이 됐으므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3) 원고는 이 사건 항해의 개시 당시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의 원인이 된 사실과 그 원인된 사실로 인해 이 사건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거나 적어도 감항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갖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발항하도록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4)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이 사건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해당해 피고들이 그로 인해 발생한 이 사건 사고에 따른 손해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 
5)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 판단에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없다. 

마. 적법성 담보
영국 해상보험법상 적법성 담보 위반으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을 인정할 수 없다는 원고의 상고이유 제2점은 원심의 부가적 판단에 대한 것이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들이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로 인해 이 사건 사고에 따른 손해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이 정당한 이상 이러한 부가적 판단의 당부는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이에 관한 상고이유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3. 부산고등법원 2019년 12월19일 선고 2017나55346 판결 (원심판결)

가. 판결요지
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원심판결인 위 부산고등법원판결은 피고들의 영국해상보험법상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면책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보험금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 판결은 준거법, 부보위험과 인과관계, 면책사유인 손해배상방지의무, 감항능력 결여와 인과관계, 적법성 담보 등에 관해 자세히 설시하고 있어, 영국해상보험법의 해석 특히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설시는 음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판결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의 준거법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의 첫머리에 영국법 준거약관이 포함돼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이 돼 온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거래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익규정 또는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이라거나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유효하다(대법원 2005년 11월25일 선고 2002다59528, 59535 판결등 참조). 

따라서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에서 보험자인 피고들의 책임 문제를 가리는 데 적용될 법률은 1906년 영국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 이하 ‘영국해상보험법’이라고 한다)이 된다[2015년 2월12일 제정돼 2016년 8월12일부터 시행된 2015년 영국 보험법(Insurance Act, 2015)에 따라 영국해상보험법상의 담보(warranty)위반, 고지의무 등에 관한 종전의 규정 및 법리가 일부 변경됐으나,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이 그 시행 이전에 체결돼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이상 2015년 영국 보험법은 이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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