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1 16:03

더 세월(37)

저자 성용경
33. 정신과 치료(2)
 


“이런 사회문제 얘기도 심리치료 내용에 들어갑니까?”
 
“환자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포함되죠. 진료비는 40분을 30분으로 처리해드릴까요?”

“선생님도 농담을…. 수고하신 만큼 계산하십시오.”

시선을 주고받음으로써 농담을 확인하는 의사와 환자.

“약은 제 시간에 드셨나요?”

“네. 오늘도 약을 주실 건가요?”

“이번에는 항우울제로 심발타를 조금 드릴게요. 프로작과는 약간 다릅니다만.”

“매주 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면 기분이 좋고 불안이 사라지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진료날짜가 기다려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잘 견뎌야 할 텐데.”

“다음에는 심리치료와 약물치료에 추가해 통찰치료로 정신분석도 병행할까 합니다. 통합적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정신분석 치료는 증상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증상을 유발한 무의식적 갈등을 의식화하여 자아의 통제 아래 두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자유 연상, 꿈 분석, 전이 분석, 저항 분석, 해석이나 훈습 등의 기법으로 내담자의 성격 구조를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원리다. 서정민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란 마음의 근육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남들은 별 문제 삼지 않을 이야기에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공황장애 증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요.”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욱하는 성질을 못 참아 사고를 치기도 하는 게 공황장애라고 한다. 다혈질일수록 더 심한데,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려고 화를 내거나 싸우게 되고 말썽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

“심장에 통증을 느끼십니까?”

“약간 답답한 정돕니다.”

“초기 증상인 것 같네요.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공황장애가 진행되면 느닷없이 심한 발작이 시작돼 심장을 쥐어짜는 아픔과 답답함이 몰려오기도 하고 두통뿐 아니라 목 허리 등 다양한 부위에 통증이 오기도 한다. 아픔들이 계속 되다보면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되는 장소에는 가지 않으려 하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비교당하는 순간이 오면 증상이 더 심해져요. 연예인의 경우 더욱 그렇고요. 노력 여하에 따라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외국의 역사적 인물로 다윈 괴테 카프카 프로이트, 국내의 유명 연예인으로는 김장훈 이경규 김구라 등이 공황장애를 앓았다. 그들도 다 훌륭하게 극복했다고 한다.

약은 한 번에 많이 먹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일주일 단위로 끊어주는 경우가 많다. 약을 받으러 와서 상담도 하고 진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상담은 자유형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심리상담은 은연중 뇌세포 얘기로 발전했다.

“마음의 병이 악화되면 뇌세포가 파괴돼 치매 뇌졸중에 이르기도 하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인을 하는 경우까지 있어요.”

“그렇긴 해도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을까 두려워 진료를 회피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도 일반인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매 뇌졸중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진료 기록이 찜찜하다고 정신과 치료를 안 받는 게 중요할까요?”

“두 가지 다 피하고 싶은데….”

“정신과에서 보험혜택을 받지 않는 비보험으로 약물치료를 받으시면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또 약물치료 없이 일반상담만 받으면 기록에 남지 않고요.”

진료기록에 취사선택이 가능하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병력(病歷)도 일종의 족보라서 그런가.

“요즘 괜히 사람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은데요?”

서정민이 말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대인기피증 분노조절장애가 있으신 경우에 이런 증상은 결과이고, 원인은 과거에 상처받은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일 가능성이 높아요.”

정신과 치료방법에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외에 예술치료 충격요법 정신분석법 주술적 치료 종교적인 치료까지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의사는 자세를 고쳐 잡고 모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도약을 위해 준비하는 자세 같았다.

“혹시 가족협의회 같은 데 관여하고 계신가요? 본인의 치료를 위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피해자 군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회원일 뿐 특별히 직분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환경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요. 천안함 유가족 중에서 이민을 가신 후에 트라우마에서 빨리 치유된 사례도 있어요.”

한국 문화에서 집단을 이탈하는 건 쉽지 않다. ‘왕따’라는 단어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는 정부와 언론 학자도 섣불리 언급하지 못한다.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민은 가지 않더라도 가급적 사업에만 열중하려 합니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심리치료에도 응용되는 부분이지요. 의사는 환자를 최대한 조속히 완치시킬 의무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환자가 묵묵히 앉아 있자 의사는 오늘 심리치료를 마무리하려는 것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지금은 안산이라는 지역이 환자들에겐 굉장히 극복하기 힘든 세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에 계시는 것은 다행이고요. 재난지역에는 여진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도 유가족 한 분이 자살했잖습니까.”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가 오래 살아서 뭐하냐며 치료를 거부해온 유가족도 있다. 사고 1년이 가까워지자 트라우마센터를 찾는 유가족이 늘어났으나 최근 특별법 시행령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치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트라우마 지역에서 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재난이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스스로 정신적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문의는 말했다.

다음 주에 뵙겠다고 인사하고 서정민은 병원 문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약봉지를 손에 꼭 쥔 채였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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