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8 09:05

판례/ 직접청구권 믿다가 큰일날 수 있어요

김현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2.31자에 이어>
5. 판결 평석

가. 제3자의 직접청구권

1) 직접청구권의 의의
대한민국 상법 제724조 제2항은 ‘제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해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 제3자의 보험자에 대한 보험금 직접청구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나아가 동조 제1항은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인해 생긴 손해에 대해 제3자가 그 배상을 받기 전에는 보험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피보험자에게 지급하지 못한다’고 해, 제3자의 직접청구권을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권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상법에 의하는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의 책임보험자에게 책임보험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고, 가해자의 책임보험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전이라도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2)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

가) 손해배상청구권설
피해자가 가지는 직접청구권을 보험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으로 해석한다. 근거는 (i) 피해자와 보험자 사이에는 보험계약 관계가 없으므로 보험금청구권이라 할 수 없고, (ii) 책임보험의 본질상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iii) 직접청구권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중첩적(병존적)으로 인수한 결과 인정되는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점을 든다.

나) 보험금청구권설
피해자의 지위를 피보험자의 지위에 놓고 여기에서 직접청구권의 본질을 보험금 청구권으로 해석한다. 근거는 (i) 보험자에게 사고에 관한 귀책사유가 없으므로 손해배상청구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고, (ii) 책임보험은 보험계약일 뿐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채무를 중첩적으로 인수한 것은 아니므로 보험자에게 채무인수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며, (iii) 제3자의 직접청구권은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만 인정되는 점을 보면 이를 손해배상청구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든다.

다) 판례
주류적인 판례는 손해배상청구권설의 입장에 서 있다. 최근의 판례도 ‘상법 제724조 제2항에 의해 피해자에게 인정되는 직접청구권의 법적 성질은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한 것으로서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해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이고, 피보험자의 보험자에 대한 보험금청구권의 변형 내지는 이에 준하는 권리가 아니다’라고 판시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대법원 2017년 5월18일 선고 2012다86895, 86901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손해배상(기))

라) 검토
직접청구권은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험자에 대해 행사하는 것으로서, 이를 손해배상청구권의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새기는 판례의 태도가 타당하다. 이에 따라, 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는 보험자가 중첩적, 병존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준거법의 결정

1) 관련규정
국제사법
제34조(채권의 양도 및 채무의 인수) ①채권의 양도인과 양수인간의 법률관계는 당사자간의 계약의 준거법에 의한다. 다만, 채권의 양도가능성, 채무자 및 제3자에 대한 채권양도의 효력은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한다.
②제1항의 규정은 채무인수에 이를 준용한다.

제35조(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 ①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은 그 이전의 원인이 된 구채권자와 신채권자간의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한다. 다만, 이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채무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규정이 적용된다.
②제1항과 같은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이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한다.

2) 직접청구권의 경우
직접청구권이 손해배상채무의 병존적, 중첩적 인수라는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이와 같은 병존적 채무인수이며, 법률에 의한 채무인수의 경우에도 국제사법 규정이 적용될 수 있을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 본건 판례는 국제사법 제34조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의 법률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해, 채권의 양도가능성, 채무자 및 제3자에 대한 채권양도의 효력은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제1항), 채무인수에 대해도 이를 준용하고 있으며(제2항), 또한 국제사법 제35조는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해, 그 이전의 원인이 된 구채권자와 신채권자 사이의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하지만, 만약 이러한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에 비추어 보면, 채무인수 및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해 이전되는 채무·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한 국제사법 제34조 및 제35조의 기준은 법률에 의한 채무의 인수의 경우에도 참작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34조 2항이 면책적 채무인수 뿐만 아니라, 중첩적 채무인수의 경우도 상정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중첩적 채무인수를 배제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고, 직접청구권의 경우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보다 우선시해 보험금의 한도 내에서는 사실상의 면책적 채무인수의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판례의 이와 같은 해석이 옳지 못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 영국법상 직접청구권의 적용 요건

영국법은 우리 상법과 달리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일반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규정이 ‘제3자 권리법[Third Parties(Rights against Insurers) Act 1930]’이다.

제3자 권리법 제1조에는 직접청구권이 허용되는 경우에 관해 ‘피보험자가 개인인 경우는 파산했거나 채권자들과의 화의가 이루어진 경우’, ‘피보험자가 법인인 경우는 해산명령이 이미 내려졌거나, 임의 해산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졌거나 파산관재인 등이 적법하게 임명되는 등 도산절차가 개시된 경우’에 한해 직접청구권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건 판결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제3자 권리법 제1조의 입법 취지,규정의 방식 등을 고려할 때 위 규정에서 직접청구권을 허용하고 있는 경우를 ‘제한적,열거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고,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까지도 위 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고는 볼 수 없다는 해석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본건 피보험자인 피고 C는 원고가 상법 제520조의2의 휴면해사의 해산을 주장하는 점으로 유추해 보건대, 5년 이상 실질적 영업활동이 없는 회사에 해당할 정도인 것으로 보이나, 명시적인 파산, 회생계획 인가, 해산명령 또는 판결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건과 같은 사실상의 폐업의 정도로는 영국법에 의한 직접청구권 행사는 어렵다는 것이다.

라. 판결의 의의

이 사건 판결은 보험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을 명확히 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본건에서는 가해자인 피보험자가 사실상의 폐업 상태라 피해자들은 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직접청구해 받기를 바랬을 것이나, 본건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시적인 해산에 준하는 사유가 아니면 직접청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사고를 당해 가해자의 보험자에게 직접청구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보험계약의 준거법이 어디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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