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5 09:09

판례/ 잘못 지급한 보험금, 구상청구도 안돼요

김현 법무법인 세창 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1.22자에 이어>
나. 피고의 주장

(1) 보험자 대위의 불가 및 상법상 면책사유

주위적으로,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A와 체결한 적하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고 한다)에서 면책사유로 정한 ‘보험 목적물의 포장 불완전 또는 부적합으로 인한 손해’이기 때문에 원고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었음에도 원고가 B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것이어서 원고는 B의 권리를 대위 행사할 수 없고, 운송물 포장불충분으로 인한 사고이므로, 상법 제796조 제9호에 따라 피고는 면책된다.

(2) 책임 제한

예비적으로 상법 제797조 제1항 운송인 책임제한 규정 또는 선하증권 이면약관 8.3항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은 약 71,142,000원{= (21,300kg × 2SDR) × 1,670원} [> 745,187원(1pkg × 666 67/100 SDR)]가량으로 제한돼야 할 뿐 아니라 이 사건 5번 화물의 수리불능을 전제로 원고가 지급한 보험금은 지나치게 과다해 부당하다

3. 법원의 판단

가. 보험금 지급의 적절성 여부

원고가 보험자대위의 법리에 따라 B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에서, 원고가 B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었던 경우라면 설령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B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사고에 ‘포장불충분’이라는 면책사유가 존재하는지에 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나. 관련 약관 규정

협회적하약관[INSTITUTE CARGO CLAUSE(A)]

[면책]

4. 어떠한 경우에도 이 보험은 다음의 손해를 담보하지 않는다.

4.3 이 보험의 대상이 되는 운송에서 통상 발생하는 사고에 견딜 수 있도록 보험목적물의 포장 또는 준비를 완전하고 적절하게 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 멸실·손상 또는 비용, 다만 그러한 포장 또는 준비가 피보험자 또는 사용인에 의해 실행되거나 이 보험의 개시 전에 실행되는 경우에 한한다(이 조항에 있어서 “포장”에는 컨테이너에 적부하는 것을 포함하고, “사용인”에는 독립계약자를 포함하지 아니한다).

[보험기간]

8 8.1 아래 약관 제11조를 조건으로 해 이 보험은 운송개시를 위해 운송 차량 또는 기타 운송용구에 보험목적물을 곧바로 적재할 목적으로 창고 또는 보관장소에서 보험목적물이 최초로 움직인 때에 개시되고, 통상의 운송과정 중에 계속된다.
다. 면책사유의 존부에 관한 판단

(1) 위 협회적하약관의 면책조항(4.3)은 ‘보험 개시 전에 이루어진 포장이 불완전하거나 부적절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는 보험자가 면책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사고는 이 사건 화물의 특성과 무게에 맞게 설계된 밑틀판에 포장되지 아니한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이 사건 보험의 개시 시점은 위 약관상 이 사건 화물이 해상 운송을 위해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공장을 출발할 때이므로 위와 같이 불충분한 포장은 위 보험 개시 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유는 위 협회적하약관 제4.3에 규정된 보험개시 전에 이루어진 ‘포장불완전’이라는 면책사유에 해당하므로, 원고는 B에게 이 사건 사고에 관해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원고의 보험금 지급이 정당했음을 전제로 하는 이 사건 청구는 나머지 점에 관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설령 원고의 보험금 지급이 정당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는 결국 송하인 또는 그 사용인이 이 사건 화물을 적절하게 포장하지 아니한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므로, 상법 제769조 제9호 가 정한 포장불충분이라는 면책사유가 있어 피고가 운송계약상 채무불이행책임 또는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지 않으므로, 원고의 청구가 이유 없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이에 대해 원고는 피고가 무고장 선하증권을 발행했으므로 화물의 포장이 불충분하고 양호하지 않은 상태로 선적됐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다투나, 이 사건 선하증권에는 “SAID TO BE”의 부지문구가 기재돼 있음은 기초사실에서 본 바와 같은바, 선하증권상에 부지문구가 기재돼 있다면 이와 별도로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됐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하증권 소지인은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인도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대법원 2001년 2월9일 선고 98다49074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오히려 송하인 측의 포장 불충분이 입증됐으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운송인에 대해 운송물에 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운송계약에 따른 운송 중에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 방법으로 운송인이 운송물을 양하 할 때 운송물이 멸실·훼손된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면 운송물이 하자 없는 양호한 상태로 운송인에게 인도됐음을 증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 되므로(상법 제854조 제1항), 선하증권에 운송물이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됐다는 기재가 있는 무고장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은 그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선하증권에 기재돼 추정을 받는 ‘운송물의 외관상태’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검사하면 발견할 수 있는 외관상의 하자에 대해만 적용되는 것이지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발견할 수 없는 운송물의 내부 상태 등에 대 해 도 위 추정규정 이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무고장 선하증권이라도 거기에 ‘송하인이 적 입하고 수량을 셈(Shipper’ s Load & Count)’ 혹은 ‘……이 들어있다고 함(Said to Contain……)’등의 이른바 부지문구가 기재돼 있다면 송하인이 운송인에게 운송물을 양호한 상태로 인도했다는 점은 운송인에 대해 손해를 주장하는 측에 서 증명해야 한다.

라. 결론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모두 기각하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한다.

4. 판결 평석

가. 보험금 지급과 구상권 행사

보험자대위(Subrogation)이란 보험자가 보험사고로 인한 피보험자의 손해에 대해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에 피보험자나 보험계약자가 보험의 목적 또는 사고를 야기한 제3자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보험자가 법률상 당연히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 보험의 목적에 대한 권리(물권적 권리)를 대위하는 것을 잔존물대위라 하고(상법 제681조), 제3자에 대한 권리(청구권)를 취득하는 것을 청구권대위라 한다(상법 제682조). 본건에서는 보험자대위 중 청구권대위가 문제됐다.

청구권대위란 피보험자의 손해가 제3자의 행위로 인해 생긴 경우에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제3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할 필요 없이 지급한 보험금액의 한도에서 그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권리를 법률상 당연히 취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보험자대위가 인정되지 위해는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는 경우일 것이 당연히 요구된다.

나. 구상권행사의 요건 및 효과

우리 상법상 청구권대위가 적법하게 인정되기 위한 요건으로는 (i) 제3자의 행위에 의한 보험사고 발생, (ii) 보험금의 지급, (iii) 제3자에 대한 권리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보험계약자/피보험자의 제3자에 대한 권리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별도 이전 절차 필요 없이 보험자에게 당연히 이전되는바, 소멸시효 등의 기산점도 권리 이전시(보험금 지급시)가 아니라 원래 피보험자 등이 가지고 있던 권리 기준으로 기산된다.

즉, 불법행위의 경우 피보험자가 사고발생 사실을 안 시점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개시되는바, 그 이후에 구상권을 행사하면 제3자는 소멸시효의 항변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 판결의 의의

본건 판결은 구상권 행사에 있어서 그 가장 기본되는 요건인 ‘보험금 지급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책임보험의 보험자는 자기의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사고를 일으킨 제3자(주로 운송인)에게 구상청구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경우 청구를 당하는 제3자는 보험금 지급은 제대로 됐을 것이라는 전제를 일단 하고, 나머지 사항들인 사고 발생 여부나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반박에 기운을 쏟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보험자들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데 지급하고서 구상청구를 하는 본건과 같은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구상 청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구상청구의 전제가 되는 보험금 지급이 제대로 이루어 진 것인지부터 따지고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고, 보험자는 자신의 약관을 면밀히 살펴서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보험금은 지급을 안 하는 것이 불필요한 비용 및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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