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발달로 큰 변혁을 맞은 산업 중 하나가 ‘물류’다. 그 가운데서도 ‘택배산업’은 전자상거래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맞으며, 지금도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택배산업은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현장근무자, 그 가운데서도 배송기사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택배산업 고속성장…택배단가는 매년 ‘하락’
국내 택배시장은 1998년 택배물량 5795만개, 매출액 2196억원 규모에서 2016년 물량 약 20억개, 매출액 4조7444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 기간 물량은 약 35배, 매출액은 21배 이상 증가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9.5%로 GDP성장률과 비교하면 여전히 성장세가 높다. 당연히 택배업 종사자도 증가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가 택배차량에 근거해 집계한 결과, 전국에 약 5만여명의 택배기사가 종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택배기사의 근무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택배기업 간 과당경쟁으로 인한 지속적인 택배단가 하락이 주요원인이다. 우리나라의 택배기사 대부분은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직’ 종사자다. 이들은 집하 및 배송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고 있다. 택배기사들은 단가가 하락함에 따라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 탓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있다.
택배 평균단가는 2000년 박스당 3500원, 2016년 2318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이러한 구조에서 택배기사의 업무량은 증가하고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택배기사가 택배비 2500원의 물건을 배송하면, 약 800원의 수수료가 대리점에 배분되고, 여기에 부가세 10%, 소득세 3.3%, 대리점 수수료(대리점마다 상이) 약 5%를 제외한 600~700원의 수익을 가져간다. 집하의 경우 기업화물과 개인화물에 따라 수수료가 상이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경우 기업화물은 440원, 개인화물은 870원 수준이다. 집하 작업도 이런 저런 세금을 제하고 택배기사에게 수익이 돌아간다.
각 기관의 조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택배기사의 월평균 순수입은 대략 240~330만원대로 파악된다. 주 6일 하루 평균 14시간을 근무하는 여건을 감안하면, 소득이 높다고 볼 수 없다.
배송기사, 근로기준법 적용 ‘못받아’
무엇보다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이른 아침 대리점 또는 서브터미널로 출근을 하는데, 난로나 선풍기조차 갖추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휴게공간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갖추지 않은 곳도 있다.
더군다나 택배기사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경조사나 병가, 휴가를 사용할 경우 연차휴가가 적용되지 않아, 직접 비용을 들여 용차를 사용한다. 용차 비용은 25~30만원선이다.
뿐만 아니라 택배 분실이나 파손, 배달지연 등으로 인한 고객 불만에 따른 책임도 택배기사가 지는 구조이며, 고객들을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육체노동과 더불어 감정노동까지 더해져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택배기사의 직업만족도 및 자존감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권익노동센터에서 택배기사를 면접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기사들은 “고객들이 택배기사를 낮은 신분으로 여긴다”고 답변했다.
다음은 인터뷰에 응한 택배기사 A씨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우를 받지 못해요. 무시를 많이 당하죠. 아파트를 가도 경비 아저씨도 무시를 합니다. 처음 택배를 할 때 많이 싸우게 돼요. 오래 일하다보면 그런 일을 피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서울노동권익센터 신태중 연구위원은 “택배기사들에게 단체를 통해 집단적으로 근로조건에 대해 협상하고 부당한 피해에 대해 상담 및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며 “법정노동시간 적용을 통한 최대노동시간 제한과 시간외 근무에 대한 철저한 보상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집배송 업무와 화물취급 및 분류업무를 철저히 분리해 택배기사 본연의 업무인 집배송업무에만 투입되도록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집배송 소화물당 최저수수료 하하선을 둬, 택배기사의 최저수입을 보장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불공정한 위수탁계약을 근절하고, 자율적인 개선 유도, 의무적 산재보험 가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조 설립필증 요구 ‘단식농성’ 돌입
올해 초 결성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노조)’은 노조 설립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지난 10월23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요구사항은 지금 당장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발급하라는 것.
노조는 지난 10월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이 노조의 설립신고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과, 며칠 뒤인 17일 고용노동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에 대한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계획이나 일정이 발표되지 않아, 노조 설립필증 교부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자회견 당일(23일)부터 무기한 단식노숙농성을 시작했다.
노조 관계자는 “지금은 택배기사들이 노조에 가입하면 계약해지 위협을 받고 있어, 가입을 주저하는 사례가 많다”며 “노조 설립필증이 교부되면 1차적으로 택배기사의 노조 가입이 보호될 것이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택배기사도 노동자로서의 인정을 받는 첫 걸음이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바람대로 노조 설립필증이 교부될 경우 택배노조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른 노조의 교섭력 확대와 택배업체간 연대파업 등을 예상해볼 수 있다. 특히 쿠팡의 배송기사들도 노조를 결성해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택배노조와 쿠팡노조가 동시에 연대파업을 진행할 경우 상당한 파급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택배는 이미 보편화된 국민생활편의서비스이자 중소상공인들의 사업을 위한 필수수단으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이 자칫, 노동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이유로 국민 생활 및 경제활동에 불편 및 피해를 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출범한 택배노조
택배법 제정 공론화 필요
택배업계는 꽤 오래전부터 택배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오며, 택배법 제정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택배산업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제도적인 부분의 뒷받침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택배물동량의 증가로 택배업 종사자와 차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택배 평균단가는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미국의 택배 평균단가는 약 1만원, 일본은 7천원대인 반면, 우리나라의 평균 택배단가는 2천원대로 매우 낮아, 택배기사들이 취하는 수수료 역시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지만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출혈경쟁으로 택배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결국 택배단가를 올려야 하는데, 이에 따른 대안으로 ‘표준요율제’ 도입 등이 논의된다. 표준요율제는 화물의 무게와 배송거리에 따라 요금을 표준화하고, 이에 맞춰 비용을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 택배법 제정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매년 증가하는 택배물량을 처리할 차량부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지난 2004년 화물연대 파업을 거치면서 영업용 번호판 발급기준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신규 번호판 발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택배물량에 비례해 영업용 차량이 부족해, 택배기업들은 암암리에 일반 차량으로 택배를 배송하는 실정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육상운송업과 택배업은 근본적으로 시장 환경과 업태가 다르다”며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독립한 택배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택배법이 제정되면 현장 근로자나 배송기사의 근무환경도 더욱 개선될 수 있으며, 서비스 품질도 높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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