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1일부로 전 세계에서 실시된 ‘컨테이너 중량 검증제(VGM)’가 어느덧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다. 12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가운데 전 세계 해운항만물류업계는 VGM 조기정착에 힘을 쏟아왔다. 선박 안전을 위협하는 화물 과적을 해소하고자 업계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부정확한 화물 무게 신고를 막고자 노력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VGM이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화주의 인식·이해도 제고, 계근대 설치, 물류비 부담, 측정 신뢰성 등의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VGM이 안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가운데 '선박안전법' 일부 개정안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통과돼 VGM 제도에 대한 실효성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해운사·부두운영사 VGM 구축에 만전
전 세계 해운항만물류업계가 VGM 시행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글로벌부두운영사(GTO) 중 하나인 APM은 현재 전 세계 자사 터미널 중 23개국(34개 터미널)에서 VG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PM의 중량검증 서비스 비용은 유료이며, 지역별 터미널별로 차등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VGM 비용은 컨테이너 1대당 약 90유로(한화 약 11만원)이며, 스웨덴 예테보리에서는 약 450크로나(약 5만8300원)를 화주에게 부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DP월드도 벨기에 앤트워프항에서 계근대를 활용한 컨테이너 측정을 수행하고 있으며, 제벨알리에서는 약 18달러(약 2만원)의 VGM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추가장비(지게차·계근대) 및 계측 시간, 인력투입 등으로 타 지역과 비교해 매우 높은 245캐나다달러(약 20만3000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밖에 싱가포르 PSA와 허치슨포트홀딩스 역시 해당 국가의 법·규정에 맞춰 VG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비용은 시스템 형태에 따라 무료에서 수백달러까지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개정을 통해 실시된 VGM은 선박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화주가 화물 선적 전 해당 컨테이너 중량을 검증해 선사에 알려야 한다. 총중량은 등록된 계량증명업소 및 계측장비를 활용하는 ‘방법1’과 컨테이너 내에 실릴 화물과 고정장비, 컨테이너 자체의 중량 값을 합산해 전자문서로 전송하는 ‘방법2’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
만약 화주가 이를 제공하지 않거나 해당 정보가 오차 범위(±5%)를 초과한 경우 선사가 컨테이너 적재를 거부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고 있는 터미널들의 대응방법과 부과요금은 제각각이다. 미국 동부·서안 주요 항만에서는 인정받은 계측기를 사용해 중량을 측정하고 있으며, 플로리다를 제외한상당수 터미널에서 무료로 VGM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대부분 별도의 계량전문회사에서 중량 측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차이가 있었다. 중국 화주들은 박스에 적힌 무게를 더해 총중량을 확인하는 방법2를 대부분 선호하고 있으며, 외부업체들이 부과하는 VGM 가격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50위안(약 8200원) 40피트 컨테이너(FEU)당 100위안(1만6500원) 수준이었다.
영국에서는 계근대를 활용한 '방법1'이 화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계측 방법이었다. 영국 화주들은 무게가 오차가 날 경우 20파운드(약 2만8000원)의 패널티를 물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 화물을 계근소로 돌렸다. 이밖에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도 VGM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컨테이너 1대 계량에 약 10분이 소요되고 있지만 점차 개선 중에 있으며, 멕시코는 베라크루즈 만사니요 등 주요 항만에서 VGM을 실시하고 있다. 요금은 항만별로 다르나 평균 30달러(약 3만3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해운사들도 선박안전 확보를 위해 VGM 시행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CMA CGM은 검증 실패로 컨테이너가 선적되지 못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화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자체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을 활용하면 화주는 VGM 등록·확인을 손쉽게 할 수 있으며 컨테이너 정보를 입력, 처리현황을 파악해 사전에 대응할 수 있다.
세계 최대선사인 머스크라인은 자사의 통합포털에서 EDI(전자문서교환) 형태로 VGM 정보를 전송받고 있다. 이밖에 UASC 현대상선 MSC APL 하파그로이드 등은 자체 플랫폼이 아닌 해운물류 IT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트라(Inttra)를 기반으로 VGM을 처리하고 있다. UASC는 VGM 문제로 컨테이너가 선적되지 못할 경우 TEU당 570달러를, 오차를 벗어날 경우 100달러를 화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하파그로이드 역시 인트라 플랫폼의 이메일이나 문서 등으로 자료 제출 시 25달러의 추가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계측소 부족·화주 물류비 부담 등 현안 산적
해운물류업계가 VGM 조기정착에 노력하고 있지만 도입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항 인천항 등 주요 수출항만에서 VGM이 이행되고 있다. 방법1보다는 방법2를 선호하는 화주가 많아 사전에 VGM 정보 제공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방법2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은 계측의 정확도 확인이 어려운 단점이 있어 자칫 요식 행위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화주들의 불편사항도 여러 차례 논의되고 있다.
공 컨테이너(Tare weight) 무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 부족, 측정 신뢰성 등에 대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또한 선사별 VGM 제출기간 및 시한이 제각기이어서 표준시스템 구축이 어렵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계측소 부족 문제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전국에 등록된 계측소는 2000여곳에 달하지만, 실제로 컨테이너 박스무게를 잴 수 있는 사업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컨테이너 총중량 정보를 해운선사에게 제출해야 하는 대부분의 화주는 전자문서 전송이 가능한 ‘방법2’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주들의 물류비 부담도 불가피하다. 화주들은 VGM 시행 이후 터미널에 반입되는 화물 도착일을 하루 이틀 앞당기며 생산일정을 조정했다. 매번 스케줄에 맞춰 생산을 진행했던 화주들의 부담이 커진 것. 또 정확한 무게를 신고해야하기 때문에 무게 증가로 인한 추가비용을 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화주들은 VGM 부대요금 징수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화주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 지난해 세계화주포럼에서 전 세계 화주를 대표하는 단체들은 컨테이너 총중량 검증제 부대요금 징수 반대를 결의했다.
국내 물류업계에서는 무엇보다 VGM에 대한 화주들의 인식도가 아직도 낮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VGM 개정을 최근에 알게 됐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고 있는 화주들이 허다하다. 시행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VGM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줘야할 정도로 제도에 대해 모르는 화주들이 상당히 많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선박안전법' 개정안 국회통과
최근 국내에서 더욱 원활한 VGM 시행을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초 열린 국무회의에서 '선박안전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된 것. 이번 개정안은 선박 소유자에 국한됐던 '선박 복원성 유지의무를 지는 자'의 범위를 해당 선박의 선장이나 해당 선박을 실질적으로 점유·사용하는 자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화주가 수출용 컨테이너 화물의 총중량에 대해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미제공시 약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선장이 선적을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을 법에 명시했다. 특히 그동안 고시로 규정했던 '컨테이너 총중량 검증의무'를 이번 개정 시 법률에 직접 반영해 이행의 실효성을 제고했다는 평가다.
업계는 선박 운항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VGM 시행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선박운항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국내 이행근거가 더욱 명확히 마련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개정안이 국회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를 통과하면 빠르면 상반기 중으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등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검토됐던 이번 개정안 통과로 선박안전성 강화뿐만 아니라 국내법 수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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