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강릉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코카인 밀반입 사건이 발생했다. 옥계항에 입항한 외국 선박에서 약 1.7t에 달하는 코카인이 적발됐고, 피고인들은 모두 외국 선원이었다. 피고인들이 코카인을 건네받은 곳은 페루 인근 공해상이었고, 선박은 코카인을 싣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까지 들어왔다. 한국 법원은 주범인 외국 선원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외국인이, 외국 선박에서, 우리나라 밖에서 손에 넣은 마약에 관해 한국 법원은 어떻게 처벌할 수 있었을까.
선박 범죄, 해상 범죄를 이야기할 때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말은 “선박은 떠다니는 영토”라는 표현이다. 기국주의, 즉 일반적으로 선박의 국적국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도 한국 선박 내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한국 형법이 적용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저 말의 반은 사실과 다르다. 선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모두 같은 잣대로 판단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선박 범죄, 해상 범죄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바다가 공해인지 영해인지, 관계자들의 국적이 어디인지와 함께 사건의 성격도 중요하다.
공해의 경우와 우리나라 영해의 경우 및 외국 영해의 경우를 차례로 살펴본다. 공해는 어느 국가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공간이고, 그곳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그 선박의 국적국 및 가해자의 국적국이 재판관할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공해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이나 그 밖의 항행 사고로 선장·선원에게 형사책임이 생기는 경우라도, 그 선박의 국적국이나 가해자의 국적국 외에서는 형사 절차를 제기할 수 없다. 한국 법원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적이 있다. 외국 국적의 컨테이너선이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한국 어선과 충돌해 어선의 선장과 선원이 사망하고 선박이 침몰한 사건이었다. 충돌한 어선이 한국 선박이고 사망자도 한국인이어서 한국 형법이 적용될 여지가 있었지만, 국제법상 기국주의가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가로막았다. 결국 한국 법원은 한국에 형사재판권이 없다고 보아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다(부산고법 2015. 12. 16. 선고 2015노384 판결).
그런데 공해라고 해서 늘 기국주의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해적 행위는 인류 공동의 적으로 보아 어느 나라든 나포하고 처벌할 수 있는 보편적 관할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약은 다르다. 같은 공해상 범죄라도 마약 거래에는 보편적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고, 각국이 협력해 단속하되 원칙적으로 기국의 동의와 협력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공해에서 건네받은 마약이라도, 그것을 실은 선박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서 강릉 사건에서는 어떻게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했을까? 답은 한국 영해, 더 정확히는 선박이 한국에 입항했다는 사실에 있다. 외국 선박이라도 한국 항구에 입항하는 순간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형법을 적용한다는 형법의 속지주의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 선박이 우리 항구에 들어오지 않고 영해를 그저 지나가기만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른바 무해통항에 해당하는 한, 연안국은 그 선박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원칙적으로 형사관할권 행사를 자제한다. 항행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함이다. 다만 그 범죄의 결과가 연안국에 미치거나, 연안국의 평온이나 영해의 질서를 해치거나, 선장 또는 기국이 도움을 요청하거나, 마약의 불법거래를 단속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통과 중인 외국 선박이라도 연안국이 개입할 수 있다.
| ▲강릉 옥계항에 입항한 선박에서 발견된 다량의 코카인 |
바다의 경계선과 관계자들의 국적, 사건의 성격도 중요한 기준
만약, 한국 선박이나 한국 선원이 외국 영해 또는 외국 선박에서 형사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1차적으로는 그 바다에 대한 영토주권을 가진 국가가 재판관할권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판관할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 한국 선원이면 속인주의에 따라, 한국 선박 안에서 외국인이 죄를 범했다면 기국주의에 따라 한국 형법도 적용될 수 있고 한국 법원도 재판관할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는 재판관할권이 경합할 것이다.
재판관할권이 경합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이다. 남태평양 공해상에서 조업하던 외국 국적의 원양어선에서 중국 선원 6명이 한국 선원 7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선박의 국적국과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의 국적국, 그리고 표류하던 선박을 처음 발견해 수사에 착수한 일본까지, 여러 나라의 재판관할권이 한꺼번에 얽혔다. 여러 나라의 재판관할권이 경합했으나 한국은 외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죄를 범한 경우 한국 형법을 적용하는 보호주의에 근거해 이들을 해상강도살인죄 등으로 한국 법원에서 재판했다. 다만 그 이면에는 관계국들과의 적지 않은 외교적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떠다니는 영토”인 선박의 국적만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게 그려져 있는 바다의 경계선과 관계자들의 국적, 사건의 성격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어쩌면 바다는, 어떠한 경계도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경계가 숨어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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