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3일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농협중앙회 최원병 회장이 택배사업 진출 의사를 밝히면서 촉발된 물류업계와 농협중앙회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와 물류업계 관계자들은 20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농협의 택배업 진출 반대성명 발표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물류업계 대표를 비롯해 기자단 4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한덕식 전무는 “농협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택배사업에 진출하면 중소택배사는 줄도산 할 것이다”며 “청와대, 농림부 등에 탄원서 및 연대성명도 제출하고, 택배차량 255대에 현수막을 부착해 시위에 나섰지만, 농협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박재억 회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자사규모 290조, 44개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공룡 농협이 단가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농협이 민간택배시장에 진출할 경우 민간택배사와의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협이 택배사업 진출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우체국 택배의 토요일 물량은 택배시장 전체 물량 중 0.006%에 불과하다. 고작 0.006% 메우고자 거대 자본을 투자해 3년 안에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니 제7홈쇼핑에 적극적이던 농협의 속내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뒤이어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택배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이다. 문어발식으로 진출하는 것은 일감몰아주기에 해당한다”며 “농협이 택배업에 진출하면 과당경쟁이 불가피하다. 농협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농부들의 생산품을 조금 더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저온창고를 확대해 민간택배업체와 윈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농협이 택배업에 진출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이며, 현재 법적인 부분은 정부에서 많은 검토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준공공기관의 성격을 띠는 농협이 민간업체와 경쟁하는 것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농협택배, ‘문제없다’
서울대학교 농경지사회학부 및 농협대학교 소속 일부 교수들은 물류업계의 주장을 전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들은 우체국이 토요일 휴무를 하면서 농민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강조하며, 농협이 농민들의 편의성을 고려해 사업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농협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긴 하지만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경제적 환원 측면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농경지사회학부 B교수는 “농협을 규모가 크다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 농협의 각종 비리문제 등은 별도로 떼놓고 봐야한다”며 “농협은 협동조합이고, 전국의 농민들이 출자해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농민들이 직접 생산부터 가공, 유통, 가공을 한다면 효율성이 높을 것이다”면서, 시장에 진입하기도 전에 장벽을 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캐나다를 비롯해 외국의 경우 비료, 물류, 정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 돼 있다”며 “국내에서도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해 농협에 베니피트(혜택)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농협법을 적용받아 차량 증차가 자유로운 부분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어 “외국은 소규모 영세한 업체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예외로 적용한다.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의 수준도 영세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일부 베니핏(혜택)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하면 양측에 혜택이 많을 것이다”며 “농협이 택배업에 진출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못하면 퇴출될 것이다”면서 농협의 택배업 진출을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못박았다.
농민들이 조직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역시 농축산물 직거래 확대와 농업인 택배불편 해소를 위해 농협의 택배사업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통해 우체국을 선두로 모든 택배사가 농축산물 택배비를 대폭 인상시켜, 농가 택배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kg이상 농축산물의 택배단가는 지난 2013년 대비 1~3천원 인상된 5천원에서 8천원 수준이어서 현장농업인들의 한 숨 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014년 농축산물 가격은 풍작으로 인해 제자리 내지 하락되는 상황에서 택배비만 20~40%까지 상승했다. 또한 65세 이상 농업인이 전체 농가의 50%를 차지하고, 연평균 소득이 500만원 미만인 농가 비율이 50%나 되는 상황에서 택배단가 인상은 농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아울러 한농연은 직거래 확대를 위해 농어촌 등 취약지역에 전국망을 갖춘 농협이 택배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서 법률적,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최근 우리나라는 중국과 베트남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함에 따라 외국의 저렴한 농산물의 국내 유입이 불가피해졌다. 이 때문에 대다수 농민들은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측되며, 결국 우리나라 농업의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태다.
농협택배, 명분은 ‘농민’
농협중앙회 TF(태스크포스)팀 관계자는 농협 택배 진출과 관련해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농협이 내세우는 농협택배의 명분은 농민의 물류비를 낮춰 수익을 증대한다는 것이다.
TF팀 관계자에 따르면 농촌지역의 택배비는 5~7천원 수준이며, 올해 1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부 지역의 경우 택배 픽업도 어려운 실정이며, 과다한 물류비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관계자는 “농협이 진출하면 지역 조합이 협력을 해줘야 한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력을 통해 지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택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보다 택배비를 인상하지 않을 계획을 알렸다. 궁극적으로 물류비를 낮춰 농민들의 수익을 증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택배업 진출의 방법에 대해서는 “인수합병 가능성이 높지만, 최근 택배시장에 변화가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
우체국 토요배송 재개할까
농협의 택배업 진출에 대한 찬반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지난해 토요일 배송을 중단한 우체국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우체국이 토요일 배송을 다시 재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토요일 배송을 중단한 이후로 물량이 크게 감소한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내부적인 검토를 통해 토요일 배송을 다시 시작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 중이다”며 “현재 내부적으로 의견이 엇갈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집배원들 사이에서도 토요일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트레이증권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11월 택배시장 전체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5.9% 성장했지만, 우체국은 같은 기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8월부터 실시한 토요휴무제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우체국 택배의 8월 물동량은 전년 동월 대비 5% 가량 증가했지만, 9월부터 11월까지 평균 20% 정도 물동량이 감소했다.
농협의 택배업 진출에 대해서는 달갑지 않다는 뜻을 보였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농협과 우리의 성격이 비슷하다보니까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농협의 택배업 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우체국이 내부검토를 통해 토요일 배송을 실시할 경우, 농협은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 택배업 진출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토요배송’에 대한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