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를 잉태했던 남북유럽간 거시경제 불균형이 완화되는 리밸런싱(rebalancing)이 진행 중이다. 아일랜드는 경상수지가 만성적인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 2010년부터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2일 LG경제연구원의 이창선 연구위원이 발표한 LGERI 리포트에 따르면 경기침체에 따른 수입수요 위축이 작용한 것이지만, 일부 남유럽 국가의 경우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독일과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남유럽 국가들이 유로 출범 이후 생산성에 비해 임금과 물가가 급등함으로써 경쟁력을 상실한 것과 정반대로 임금, 물가 하락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로 출범 무렵과 비교해 남유럽 국가들과 독일간의 경쟁력 격차가 아직도 여전하다. 위기국가들의 경쟁력이 회복되더라도 수출 증가에 따른 소득 및 재정수입 증대를 통해 재정건전화를 이루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수출 및 제조업 비중이 크게 낮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리밸런싱 과정에서 수반된 경기침체, 고실업 등이 향후 남유럽의 지속적인 개혁을 어렵게 할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 있는 남유럽과 달리 프랑스가 미래의 유로존을 위협할 요인으로 우려되고 있다. 유로출범 이후 경쟁력 약화, 제조업 위축 등 많은 면에서 북유럽에서 멀어지고 남유럽에 가까워진 데다 최근 경제구조 개혁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국들의 구조개혁에 따른 고통을 줄이고 근원적으로 유로존 체제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은행동맹, 재정동맹의 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간 첨예한 의견 차이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독일이 선뜻 양보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유로존 체제가 안정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 남유럽 경상수지 적자 크게 줄어들어
유로존 재정위기의 배경으로 지적되는 남북 유럽간 경상수지 불균형은 위기 이후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완화된 모습이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위기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 축소가 뚜렷하다. 아일랜드가 그 선두에 서 있다.
유로화 출범 이후 아일랜드 역시 여타 남유럽 위기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2010년부터는 흑자로 전환됐다. 올 상반기에는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2.6%에 달했다. 경상수지가 최대 적자를 기록했던 2008년에 비해 GDP 대비 8.3%포인트 개선됐다.
그리스의 경우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 상반기 중 7.1%를 기록 중이다. 여전히 남유럽 국가들 중에서 최대 적자국의 위치에 있지만, 최대 적자이던 시기에 비한다면 경상수지 개선 폭은 GDP 대비 7.9%포인트에 달한다.
그리스에 버금갈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던 포르투갈은 상반기중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3.5%로 줄어들었다. 개선 폭은 위기 국가들 중에서 가장 큰 9.1%포인트이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에 비해 덜하지만 스페인 역시 비교적 큰 폭으로 경상수지가 개선을 보이면서 상반기 적자 규모는 GDP 대비 3.5%를 기록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던 이탈리아는 상반기 중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 대비 1.9%에 불과하다.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의 축소는 더딘 편이다. 독일의 경우 올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GDP 대비 6.1%에 달해 최대 규모였던 2007년의 7.4%에 비해 불과 1.4%포인트 줄었다.
>>> 임금하락으로 남유럽 국가들 경쟁력 개선
과거 유로화 출범 이후 남북유럽간 국제수지 불균형이 확대되었던 것은 남유럽 국가들이 임금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상승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된 탓이다. 생산성이 증가하는 범위 내에서 임금이 책정됐던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남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생산성에 비해 명목임금이 빠르게 증가하며 단위노동비용이 높아졌다.
위기 이후 남유럽 국가들은 경쟁력 회복과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해 임금과 물가가 크게 하락한 내적절하(internal devaluation) 과정을 지속해 왔다. 과거 사실상 환율이 고정된 상태에서 임금, 단위노동비용, 물가의 상대적 상승이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과 반대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남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이 경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경쟁력 회복을 위한 조정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가별로 차이가 크다.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경우 명목임금이 2008년 이후 하락세로 전환됐다. 아일랜드, 그리스와 함께 구제금융 체제하에 있는 포르투갈도 위기 이후 명목임금은 증가세가 멈춘 상태이다
.
위기의 강도가 덜한 스페인, 이탈리아는 위기 이후에도 명목임금 상승세가 유지됐지만 상승 폭은 이전에 비해 크게 둔화됐다. 특히 유로존 전체 또는 독일 등의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임금상승 속도가 크게 낮아졌다.
생산성 변화까지 고려한 단위노동비용도 조정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아일랜드가 대표적으로 2012년 2분기 현재 단위노동비용은 최고치였던 2008년 4분기 수준에 비해 17% 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가 아직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을 뿐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도 단위노동비용 하락세가 진행 중이다. 다만 독일과의 단위노동비용 격차는 위기 이후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단히 크다.
물가의 경우는 위기 이후에도 남유럽 국가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로존 평균 또는 독일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일랜드만 예외적으로 위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유로존 여타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위기 이전 남유럽 국가들이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높은 물가상승률을 유지했던 것에 비한다면, 물가 면에서도 불균형 과정은 조정된 셈이다.
다만 조정과정이 대단히 더딘 편이다. 임금 하락이 물가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존재하는 데다 임금 외에도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 리밸런싱, 남유럽 경기침체 및 고실업 수반
환율을 조정하는 대신 임금과 물가의 하락이라는 내적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은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내적절하는 필연적으로 민간과 정부부문의 긴축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일랜드 만이 플러스 성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남유럽 재정취약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의 경우는 5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위기 이전 수준에 비하면 GDP가 거의 75%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경기침체와 더불어 실업의 고통도 심하다. 지난 10월 독일의 실업률이 5.4%를 기록하는 등 북유럽 국가들이 5%대의 실업률에 머무르고 있는데 비해 남유럽 국가들은 실업률이 10%를 훨씬 넘고 있다.
특히 그리스와 스페인은 20% 중반 수준의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재정긴축의 고삐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노동시장, 상품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개혁 조치들이 잇달아 시행되면서 고용시장의 빠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로 인해 재정취약국의 개혁 조치들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
남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긴축정책은 내수위축을 통해 성장을 저해하여 결국은 목표로 하는 재정수지 개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건전화의 목표치가 계속 어긋나면서 더욱 강한 긴축이 요구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방안은 수출을 통해 플러스 성장을 이뤄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경쟁력 개선도 결국 이를 의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비용과 실질실효환율 면에서 경쟁력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수출이 늘어나고 국민소득이 개선되는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의 경우 수출이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낮은 수출비중(2011년 가준, GDP 대비 24%)과 제조업비중(GDP 대비 7.5%)으로 인해 GDP를 늘리는 효과가 크지 않다.
남북유럽간의 리밸런싱은 남유럽의 노력만으로는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북유럽국가들의 노력이 가세할 때 리밸런싱의 속도가 높아지면서 남유럽의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이 덜해질 수 있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재정건전화의 강도를 낮추는 한편, 경제구조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된다.
>>> 유로체제의 제도적 보완 더디게 진행
유로 출범 이후 남북유럽간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는 남유럽의 과다소비와 낮은 경쟁력, 북유럽의 과다 저축, 높은 경쟁력에 기인한다.
소비 측면에서 리밸런싱이 크게 진전된 상태이고 경쟁력 격차의 해소는 아직 진행 중이다.
남북유럽간 경쟁력 격차가 크게 좁혀지지 않고 취약국의 재정건전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심국가에서 취약국가로의 재정이전을 통한 영속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
독일은 유로존 붕괴를 원하지 않지만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무한정의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자 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 선진국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강한 성장세를 유지해 온 독일 경제도 2000년대 초반에는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허약했다. 독일 경제가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3년 사회당 소속의 슈뢰더 총리에 의해 단행된 ‘아젠다 2010’이라는 전후 최대의 광범위한 경제구조 개혁조치에 기인한다. 골자는 하르츠 Ⅰ~Ⅳ 라는 노동시장 개혁안이다.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찾아주기 및 교육 훈련 강화 등과 함께 임시직 고용과 해고가 보다 용이해지며 당시 유럽 내에서 대단히 경직적이던 독일의 노동시장은 이후 유연성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당시 10%를 넘던 실업률이 현재 5%대로 떨어진 것은 이때의 노동시장 개혁 효과로 지적된다. 물론 질 낮은 임시직 고용이 늘어난 것 때문이라는 논란도 있으나, 고실업에 시달리는 남유럽보다 사정이 훨씬 나은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독일식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로서는 국민적 반발이 거셀 수 밖에 없다. 또 개혁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뒤따르는 고통의 강도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유로존 체제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은행동맹, 재정동맹의 진전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 금융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공동예금보장기구나 부실금융기관 처리기구는 공동감독기관 설립 이후에나 논의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재정동맹도 회원국의 재정규율을 강화하는 신재정 협약이 가동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재정 취약국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동의 유로본드 발행, 재정이전 등과 같은 재정통합은 아직 공식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유로 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독일에 부담이 될 과감한 양보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실질적으로 은행, 재정동맹이 내년에도 크게 진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로존 체제가 안정되기까지는 아직도 길고 험난한 길을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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