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7 10:45

판례/ 선하증권상 중재조항의 효력

金 炫 법무법인 세창 대표 변호사 (국토해양부 고문 변호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부산지방법원 2008.10.8.선고 2007가합 20559 판결


【원 고】 동국제강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푸른 담당변호사 정철 외 1인)
【피 고】 윤스마린 주식회사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경 담당변호사 김창준 외 6인)
【변론종결】 2008. 9. 10.
【주 문】 1.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이 사건 소를 모두 각하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8.24자에 이어>

1. 문제의 제기

선하증권상에 기재된 중재합의조항이 있는 경우, 원고가 이러한 중재합의에 위반하여 소제기를 한 데 대하여 ①피고가 중재합의 조항의 존재는 재판청구권 포기한 의사표시와 같아 소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 ②이러한 중재합의의 효력을 판단하는데 외국법원에 대한 전속적인 국제관할 합의의 유효요건을 그대로 적용하여야 하는지, ③중재합의조항을 운송인이 아닌 운송인의 보조자에도 중재조항이 확장 적용되는지 등이 문제가 된다.

2.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가. 사실관계 및 쟁점

(1) 대한민국의 제철업, 수출입업 등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인 원고는, 일본의 소외 동국 코포레이션(이하 ‘소외 동국’이라 한다)으로부터 FOB(선측인도)조건으로 철제화물을 수입하기로 함에 따라, 2007. 5. 3. 소외 디케이에스앤드 주식회사(이하 ‘디케이에스앤드’라 한다)와 사이에, 디케이에스앤드에게 원고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철제 슬랩을 피고 나카하라 쉬핑 파나마 에스 에이(이하 ‘피고 나카하라 쉬핑’이라 한다) 소유인 별지 목록 기재 선박(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을 운항하여 해상운송할 것을 의뢰하는 내용의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2) 한편, 이 사건 선박의 용선자인 디케이에스앤드는 피고 윤스마린 주식회사(이하 ‘피고 윤스마린’이라 한다)와 사이에, 원고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슬랩을 해상운송하기 위해 디케이에스앤드가 이 사건 선박을 용선함에 있어 피고 윤스마린을 이 사건 선박의 운송인으로 정하는 내용의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3) 위와 같은 각 해상운송계약에 따라 피고 윤스마린은 2007. 9.경 원고로부터 철제 슬랩 348개(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 한다)를 일본의 미주시마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포항항까지 해상운송하여 줄 것을 의뢰받았으며, 이에 따라 같은 달 22. 일본의 미주시마항에서 소외 동국이 선정한 일본의 하역업자가 이 사건 선박에 이 사건 화물의 적재 및 고정 작업을 수행하였다.

(4) 피고 윤스마린은 2007. 9. 22. 이 사건 화물이 이 사건 선박에 선적된 후 운송인 피고 윤스마린의 명의로 송하인 소외 동국, 수하인 한국산업은행의 지시인, 통지처 원고로 각 기재된 선하증권 3매(증권번호MIP0150-01, MIP0150-02, MIP0150-03, 이하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이라 한다)를 소외 동국에게 발행·교부하였다.

(5) 이 사건 선박은 2007. 9. 22. 07:30경 일본의 미주시마항을 출항하여 대한민국의 포항항을 향하여 항해하던 중, 같은 달 23. 08:00경부터 같은 달 24. 04:00경 사이에 악천후를 만났고, 이로 인하여 이 사건 선박이 심하게 흔들리게 됨에 따라 같은 달 23. 11:15경 북위 34-42.63도, 동경 130-10.76도 해상에서 우현 선미 갑판 위에 십자 형태로 적재되어 있던 이 사건 화물 중 99개가 갑판 위에서 떨어져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6) 이 사건 선박의 선장인 소외 3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목적항인 포항항까지의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007. 9. 23. 18:30경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인 일본의 쓰시마섬 남해안으로 피항하여 이 사건 선박을 정박하였으며, 기상이 호전될 때까지 위 선박의 상태를 점검하고 남아 있는 화물을 재고박하는 작업을 하였다.

(7) 이 사건 선박은 2007. 9. 24. 10:00경 포항항을 향하여 정박장소를 출항하였고, 부산항을 경유하여 2007. 9. 28. 13:15경 포항항 2부두 정박지 15호에 도착하였는데, 양하과정에서 이 사건 화물 중 99개가 유실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8) (가) 원고측이 의뢰한 주식회사 한리해상손해사정은 2007. 10. 1.경 이 사건 사고로 인한 화물손상에 관하여 검정한 결과, ① 이 사건 화물의 양쪽에는 2m 정도의 빈 공간이 있었는데 위 공간이 목제 깔개 등으로 적절히 떠받혀 있지 않았고, ② 이 사건 화물의 전체를 감싸는 고박방법을 사용하였다면 안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됨에도 고박용 걸개 고리를 이용하여 고박한 것으로 인하여, 이 사건 화물 중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나) 피고 윤스마린측이 의뢰한 주식회사 협성손해검정사정사는 2007. 10. 1.경 이 사건 사고로 인한 화물손상에 관하여 검정한 결과, 이 사건 화물 중 일부가 유실된 원인은 이 사건 선박이 항해하던 중 기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9) 한편,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은 관련 선적서류와 함께 일본은행에 매입된 후 신용장개설은행인 한국산업은행에 매도되었으며, 원고는 위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위 각 선하증권을 매수하여 현재 이를 정당하게 소지하고 있다.

(10) 원고는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유실된 철제 슬랩99개의 시가 상당의 손해에 대하여 계약상 책임 및 불법행위 책임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나. 판결의 요지

[1]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기재된 중재조항은 거래 당사자들 간의 합의로서 재판청구권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과 같고, 선하증권의 소지인으로서는 위 당사자들 간의 합의에 의하여 분쟁해결방법이 중재절차로 제한된 채권을 인수한 것이다. 선하증권의 성질상 위와 같은 중재조항에 효력을 인정하기 위하여 별도로 선하증권의 소지인의 동의 내지 그에 대한 통지가 필요하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규정되어 있는 외국중재합의의 효력을 통상 인정하고 있으므로, 소지인이 중재조항의 기재에 관여할 수 없었다는 사정이나 위와 같은 중재조항을 단지 선하증권의 ‘이면’에 규정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중재조항이 선하증권 소지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거나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여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2] 외국중재합의는 국제거래관계에서 통상적으로 그 유효성이 인정되고 있고, 사실상 외국에서 중재절차를 수행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점만으로 외국중재합의가 사실상 소지인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침해되는 권리를 구제받는 길을 봉쇄함으로써 운송인의 의무나 책임을 면제하는 특약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다.

[3] 선하증권 이면의 일본중재약정은 선하증권 소지인을 구속하며, 히말라야 약관에 따라 선주는 운송인의 중재위반주장을 원용할 수 있다고 한 사례.

다. 평석

(1) 중재조항의 존재가 소의 부적법 사유인지

중재계약은 중재조항이 명기되어 있는 계약 자체 뿐만 아니라, 그 계약의 성립과 이행 및 효력의 존부에 직접 관련되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쟁에까지 그 효력이 미치고,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하여 계약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경우에 그 불법행위책임의 존부에 관한 분쟁은 계약내용의 이행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쟁으로서 중재합의가 규정하는 중재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 판례가 “이 사건 화물을 유실하였음을 전제로 한 분쟁을 대상으로 하고, 이러한 분쟁은 계약책임이든 불법행위책임이든 운송계약의 이행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서 이 사건 중재조항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하면서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기재된 중재조항은 거래 당사자들 간의 합의로서 재판청구권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한 것과 같아, 중재조항의 존재는 소극적 소송요건해당하므로 이 사건 소제기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2) 외국법원에 대한 전속적인 국제관할 합의의 유효요건이 이러한 중재합의의 효력을 판단하는데도 적용되는지
국제재판관할의 합의의 유효요건으로 판례는 ①국내재판권에 전속하지 않는 사건일 것, ②합의한 외국법원이 당해 사건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질 것, ③당해 사건이 그 외국법원에 대하여 합리적인 관련성이 있을 것 등 세가지 요건을 갖추었을 때에 유효한 전속적 합의로 보고 있다. 다만 전속적 합의가 현저히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경우는 무효가 된다.

본 건에서 원고는 ① 이 사건 중재조항에서 분쟁해결장소로 지정된 일본은 이 사건 분쟁과 합리적 관련성이 없고, ② 선하증권의 소지인인 원고로서는 이에 대한 통지를 받는 등 관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위 중재조항이 원고의 재판청구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약정임에도 이를 이면에 기재한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여 공서양속에 반하는 법률행위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한데 대하여, 법원은 “소송에 있어서의 관할합의와는 달리 중재지는 당사자 또는 사안과 합리적인 또는 기타 어떠한 관련성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므로,”라고 판단하여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쟁해결 방법으로 소송이 아닌 중재조항을 두었다면, 그 중재조항에 따라 문제되는 분쟁을 해결하여야 하고 소송에서 국제관할의 유효요건에 관한 문제는 중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판례는 타당하다고 본다.

(3) 중재조항이 운송인이 아닌 운송인의 보조자에도 확장 적용되는지

선하증권 이면에 운송관련자들은 운송인이 주장할 수 있는 책임제한 등의 항변을 원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른바 “히말라야 약관(Himalaya clause)”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약관의 효력이 문제된다.

이에 대하여 중재조항이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운송인의 보조자)에게는 당사자가 서명한 서면에 의한 중재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선하증권상의 이면약관은 표준양식을 운송인이 그대로 차용한 것에 불과하며 제3자는 그 내용을 검토하는 등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등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선하증권 소지인과 제3자 사이에서는 중재합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으나, 판례는 본 사안에서 “이 사건 각 선하증권 이면약관 제5조 제2항은 선하증권상의 운송인의 방어방법과 책임제한에 관한 사항을 운송인의 보조자에게도 확장하여 적용함으로써 형평을 기하고자 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중재조항을 통하여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의 발행인인 피고 윤스마린과 그 소지인인 원고 사이에서 위 각 선하증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모든 분쟁에 관하여 재판 외의 분쟁해결절차에 의하기로 하였다면, 운송인의 보조자인 피고 나카하라 쉬핑과의 관계에서도 위 각 선하증권으로 인한 분쟁에 관하여는 위 중재조항을 확장 적용함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고”라고 하여 이른바 히말라야 약관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타당하다고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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