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사간 평화적 공존의 틀 : 경쟁과 협조 ]

洪承湧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 선사간 상호협조는 필요한가?
95년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이후 세계 경제변화의 속도는 가속화되
고 있다. 개방과 자유경쟁이 진전됨으로써 무국경 지구촌경제 시대를 맞이
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도 정부의 규제완화와 함께 민간의 장류과 경쟁을 통
한 생존전략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 지향작 산업정책의
조류를 감안할 때 해운시장에서의 선사간 상호협조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
는가가 시대적 화두이다.
각국에서 기업간 담합이나 독·과점 등 경쟁제한적 행위를 규제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해운시장에서는 카르텔(cartel)의 한 형태인 해운동맹(shippin
g conference)이 인정되어 왔다. 해운동맹은 정기선사들간의 공식적 담합에
의한 집단적 독점(collective monopoly)의 한 형태로서, 이러한 경쟁제한
적 협조체제가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논거는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
다. 첫째 해운산업의 특성상 공멸적인 과당경쟁이 초래되기 쉽다는점, 둘째
선사들은 다수의 하주에 희한 불규칙적 수요 변동에 직면하면서도 지속적
인 해운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운시장을 자유경
쟁에 일임하는 경우, 시장공멸적인 운임인하경쟁이 유발됨으로써 해운서비
스를 공급체계가 붕괴되며 특히 성수기에는 해운서비스 수용의 충족이 불가
능하게 되고 동시에 운임폭등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해운시장이 공멸적 과당경쟁(cut-throat competition)으로 치닫기 쉬운 것
은 해운산업의 몇가지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다. 처ㅈ쌔, 해운산업은 자본집
약적 산업으로서 고정비용의 구성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변동비용의
구성비는 낮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운임수준은 평균변동비용 수준까지 하락
할 수 있으므로 해운불황시 운송업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운항
을 계속하게 된다. 둘째, 해운시장은 국제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시장보호
가 곤란하다는 점도 선사간 경쟁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셋째, 해운서비스는
즉시재로서 생산과 동시에 소멸되며 저장이 불가능하므로 공급의 조절이
매우 어렵다는 점도 과당경쟁을 방지함으로써 항로내 운임질서를 유지하고
하주들에게 안정된 해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는 해운동맹이나 선사간
제휴 등과 같은 협조체제의 구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 협조체제 형성의 유인과 반유인

정기선해운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작용하는 범위가 넓으므
로 비교적 소수의 대규모선사들이 해운서비스를 공급하는 과점적(oligopoli
stic)시장구조가 된다. 과점시장은 그 특성상 선사간 담합이 용이한 편이며
, 다양한 형태의 담합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난다. 선사간 담합은 집단적
독점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상호경쟁을 회피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
이다
과점적 시장에서는 참여자가 소수이므로 한 선사의 경영전략이 다른 경쟁기
업의 경영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개별선사들은 경쟁선사들의 경
영전략을 예의 주시하면서 최선의 대안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정기선
해운시장에서는 선사간 상호의존성이 크며 시장참여 선사들은 지나친 운임
경쟁이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에 대하여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이
들은 운임경쟁(가격경쟁)을 지양하고 서비스의 질적 차별화에 의한 비운임
경쟁(비가격 경쟁)을 전개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묵시적 또는 명시적 형
태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해운동맹과 선사간 제휴관계의 형성은 해
운시장의 대표적인 담합의 형태가 된다.
이와같이 선사간 담합 내지 협조체제가 구축되면 개별선사들은 집단적 독점
에 의한 초과이윤의 획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기업간 협조체제는 지속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별선사의 입장에서는 이미 구축된 협조체제를 이
탈할 경우 더욱 많은 이윤의 획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선사간 담합에
의한 운임은 평균비용을 초과하는 수준에서 높게 설정되어 있으므로 담합
을 위반하여 약간 낮은 운임을 적용할 경우 대규모 화물의 집하가 가능해지
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담합에 대한 반유인으로 인하여 해운시장의 협조체
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 협조체제의 형성동향과 전망

해운시장에서 협조체제의 구축은 해운동맹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는
바, 최초의 해운동맹은 1875년 8월에 결성된 캘커타 해운동맹 (UK/Calcuta
Conference)이었다. 따라서 해운동맹의 역사는 100년을 훨씬 넘고 있으나
앞서 지적한 협조체제 형성에 대한 반유인 즉, 협조체제 형성후 보다 많은
이윤을 찾아 이를 다시 일탈하고자 하는 강한 유인으로 인하여 동맹의 결속
력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특히 해상운송의 컨테이너화가 가속
화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맹외선사(outsider)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해운동맹의 시장 지배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1984년 미국 해운
법(The Shipping Act of 1984)의 시행으로 우대운송계약(service contract)
, 독자운임결정권(independent Action)등과 같은 새로운 인임제도가 도입됨
으로써 기존의 동맹체제는 거의 붕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운동맹의 역할
도 과거의 공동운임의 결정, 배선조정 등을 통한 집단적 독점체제의 형성
및 시장지배력의 강화에서 최근에는 하주와 대화의 길을 여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이나 정보교류, 상품분류 및 서비스의 표쥰화 추진 등으로 제한되고
있다.
정기선해운시장은 1994년과 1995년초의 호황기를 거치면서 선사들의 의욕적
인 서비스 확장과 초대형선의 투입 등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해운
동맹은 더욱 유명무실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정기선 서비스의 공급을 위하
여는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며 그만큼 투자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선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파멸적 과당경쟁을 회피하기 위한 협조체제의
형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최근 공동운항 등과 같은 전략적 제휴의 확산
과 특히, 글러벌서비스의 구축을 기본방향으로 한 글로벌제휴(global allia
nce)의 형성은 새로운 형태의 서사간 협조체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와같이 해운시장 특히, 정기선 시장에서는 개별선사들이 독자성을 유지하
면서 시장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협조체제가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선사들의 결속력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과도한 시장지배력이 행사될 경우에는 운임상승과 서비
스의 질적저하가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하주단체를 통한 선
·하주간 세력균형의 도모 및 정부당국의 적절한 감시 등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