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10 18:31

유전자 변형식품 둘러싼 EU-미 무역분쟁 격화

WTO의 유전자 변형식품 수입제한규정 위법 판정으로 명암 갈려



WTO가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해 유통을 단속하는 EU의 관련규정이 잘못된 것이라 판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유전자 변형식품을 둘러싼 미-EU간 무역분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WTO의 이번 결정은 유전자 변형식품을 대거 생산해 유럽 등지로 수출하다 EU정부의 2003년 수입제한 결정 이후 수출길이 막혀 있던 미국,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의 수입허용 입장을 지지하는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재배와 유통을 놓고 미국과 유럽, 기업과 환경단체의 입장은 확연히 갈라진다. 생명·과학·기술·환경 등 여러 이슈가 얽히면서 ‘인간복제’ 만큼이나 거센 윤리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이 바로 GMO이다.

◈ 미국 = GMO는 1986년 미국의 칼진(Calgene)사가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개발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대두와 옥수수는 벌써 몇 년 전에 GMO 품종이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물량의 절반을 넘겼고, 세계 인구의 60%가 주식으로 삼는 벼도 GMO 품종이 속속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1994년 칼진사의 토마토 에 판매 허가를 내줌으로써 GMO의 ‘안전성’을 공식 선언했다. 미국은 GMO 옥수수와 콩, 토마토, 감자 등도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 유럽과 일본 = 이들은 GMO의 유통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GMO에는 반드시 표시를 하게끔 강제 라벨링을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은 아예 GMO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콩, 옥수수, 감자, 토마토 등 4개 작물을 표시 의무대상으로 정해 라벨링을 의무화했다.

◈ 개도국과 빈국들 =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해 5월 “GMO가 특히 세계 최빈국들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 적한 바 있다. GMO가 제3세계에 들어가면 전통적인 영농방법이 붕괴되고 농업의 외부 종속이 심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앙골라, 에티오피아, 말라위, 잠비아 등은 식량위기를 겪으면서도 GMO 수입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개도국, 빈국들도 나라마다 입장은 다르다. 농업 대국인 브라질은 GMO 콩의 주요 생산국. 룰라 대통령은 GMO 문제에서만큼은 반미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국 농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인도는 GMO를 내세운 서방기업들의 농산물 시장 공략에 맞선 농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곳 중의 하나다.

◈ 바티칸과 환경단체들 = GMO를 둘러싼 논란 중 하나는 생명윤리를 거스른다는 주장이다. 로마 가톨릭은 줄기세포 연구와 GMO 개발 등 생명공학연구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국내에서도 불교단체들이 GMO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그린피스 등 환경운동 단체들은 1998년 몬샌토가 종자 판매수익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낸 '불임 종자(2세대 산출이 불가능한 종자)', 이른바 '터미네이터' 종자를 내놓자 대대적으로 항의해 시판을 중지시킨 전례가 있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은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하거나 유전자를 구성하는 핵산을 세포 내에 직접 주입하는 등의 현대 생명 공학기술로 만들어 낸 농작물 및 그것을 재료로 한 식품을 말한 다. 필요에 따른 유전자만 계획적으로 변형시켜 재조합하거나 본질적으로 종을 넘어서는 재조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품종 개량과 차이가 있다.

논란의 핵심은 안전성이다. 찬성론자들은 현재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GMO가 전통적인 농산물과 안전성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식품 및 그 재료의 품질이나 생산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세계 인구 증가에 따른 전지구적 식량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병·해충 등에 강한 작물을 재배하면 농약이나 비료 사용이 줄게 돼 결과적으로 환경오염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강제로 다른 종류의 유전자를 섞은 GMO는 그 안전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인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해충 저항성, 제초제 저항성을 가진 GMO 유전자가 퍼지면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GMO 유전자가 꽃가루에 실려 유기농이나 재래식 경작지로 번져 나가 재배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큰 논란 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반대론자들은 또 GMO에 대한 허용은 결 국 GMO에 관한 특허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을 필두로 한 특정 기업에 세계 경제를 종속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유럽의 제한을 잘못된 것을 판시한 WTO의 결정이 EU의 관련 규정을 수정케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작물의 다량 생산을 위해 유전자변형기술의 채택을 고려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는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금번 WTO 결정으로 유전자변형식품이 안전할 뿐만 아니라 생산비용을 감소시키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라는 미국측 입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WTO의 이번 보고서는 2004년 이후 계속된 유전자 변형식품의 수입금지에 대한 역외국가의 비난으로 인해 가열돼 왔던 유럽내 자체 논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 후반 EU 식품안전국은 8개의 유전자 변형식품 금지조치에 대한 과학적 평가를 내릴 전망인데 이를 기회로 EU가 유전자 변형식품 수입제한조치를 해제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있다.

WTO 제소 및 판결은 Monsanto와 Syngenta와 같은 큰 회사에 의해 제기됐는데, 이들 회사는 새로운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승인절차의 지연과 EU 정부 차원의 제한조치에 좌절해 왔다. 결론적으로 이런 문제가 WTO의 심사까지 가게된 것은 매우 불행한 진전으로 보인다. 실상 WTO 판넬은 유전자 변형식품의 안정성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요청받은 것이 아니라 EU가 유전자 변형식품을 수입제한하는 규정을 만들 때 절차적으로 타당했는지에 대해 판별해 달라는 방식으로 소원을 제기받은 바 있다. 과다한 수입제한 규정은 의심할 바 없이 보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하며 EU는 세계에서 가장 제한적인 식품표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의 밀가루제분협회 Jones씨는 유럽 소비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대변하고 있다. "WTO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규칙을 승인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영국과 유럽의 소비자는 GMO 식품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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