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1 18:30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인증기준안 마련에 가속을 붙이고 있는 ‘종합물류업 인증제’가 중소물류업계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리면서 제도도입에 거친 험로가 예상된다.
건설교통부는 지난달 29일 한국교통연구원(KOTI, 옛 교통개발연구원) 지하 강당에서 종합물류업(종물업) 도입에 관한 공개공청회를 열었다.
300여명의 방청객들이 운집한 이날 공청회는 서상범 박사가 ‘종물업 인증기준 시안’을 발표한 후 각 학계 및 업·단체에서 초청된 10명의 전문가들이 지정토론자로 나서 종물업에 대한 해당업계의 의견을 말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업·단체에서 나온 토론자들은 종물업이 물류업계의 구조를 뿌리부터 뒤흔들 중대사안임을 감안해 인증기준에 대한 세세한 지적에서부터 2자물류기업 배제, 하주세제지원 반대, 나아가 종물업 도입 자체에 대한 반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견들을 쏟아냈다.
특히 대표적인 중소물류업체들인 복합운송업체와 화물운송주선업체들은 종물업 도입을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보고 강한 반발을 나타냈다. 일부 방청객들은 “위헌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거나 “파업을 할 수도 있다”는 등의 거친 표현으로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가감없이 토로했다.
한편 하주측은 2자물류업체를 배제해선 안되며 하주에 대한 세제지원은 필요하다고 말해 물류업계와 상반된 입장에 있음을 밝혔다.
◆종물업이 우수물류서비스로 이어지나= 참석한 전문가들중 일부는 종물업이 과연 우수한 물류서비스 이어지는지에 대해 정확한 점검과 검토가 있어야하며 필요하면 시범운영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선사 대표로 나선 선주협회 김영무 상무는 종물업이 업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예측모델을 먼저 제시한 후에 이를 토대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입여부에 관한 합의가 있은 후에 인증기준에 대한 논의가 뒤따르는 것이 순서”라며 “종물업자가 어떤 모델로 될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가 시행될 경우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산업이 발전하면서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것이 특징이고 해운업계도 운송, 하역, 보관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를 하나로 뭉치는 종물업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영태 전국화물자동차운송주선연합회(주선연) 전무도 "종물업을 시범운영해보고 결과를 보도록 하자"며 검증 이후에 제도도입을 추진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신석호 한국유통물류진흥원 물류사업팀장은 “종물업이 우수한 물류서비스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더 연구돼야 할 것”이라며 “사후관리시스템을 통해 하주에 도움이 되는 물류서비스를 하는지 조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종물업 도입 이후의 관리에 대해 지적했다.
◆복운업, 화물주선업 '업계고사 위기감' 고조= 예상대로 종물업 도입에 대한 중소물류기업들의 반발은 거셌다.
이날 토론회의 하일라이트는 단연 복합운송협회 정계성 이사(가야쉬핑 대표)였다. 정계성 이사는 작심하고 나온 듯 종물업 인증제 도입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정 이사는 “정부가 탁상공론으로 행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포문을 연 뒤 “화촉법은 프레이트 포워더와 복합화물터미널만 규율하는 법인데 여기에 종물업법을 도입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침을 놨다.
이어 “종물업은 글로벌 기업이 모델이었는데 오히려 국내시설, 국내 물류비만 치중해서 인증기준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종물업 도입 이후에도 포워더가 업종영위를 해나갈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갖고 있는지에 대해 따져 묻기도 했다.
그는 “국회가 지난해말 중소물류기업에 대한 도산방지책을 도입하는 차원에서 화촉법을 통과시켰는데 이에 대한 방안은 지금 마련중이냐, 소액물류비는 인증제 혜택에서 제외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냐”고 물었다.
또 인증기준과 관련 “자격증 등이 많이 요구되는데 노하우나 글로벌 물류를 수행하는데는 오히려 일반 포워더 직원들이 이들 자격사보다 훨씬 낫다. 평가항목, 기준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데 하드웨어가 있어야만 경제(운송)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이사는 용어의 부적절성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매출계약서, 법인세 실적, 주선업등은 법률상에 없는 용어로 이를 공동부령에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인증시안에 나오는 물류컨설팅이란 용어의 정의도 명확치 않다. 이런 기준이 많이 나오게 되면 정부 입맛대로 인증을 할 소지가 많다”고 주장했다.
전략적제휴와 관련해선 “공동브랜드를 필수요소로 요구하는데 SCM등 운송업은 얼라이언스(alliance) 형태로 이미 제휴를 맺어오고 있으며 얼라이언스에선 공동브랜드가 존재치 않는다”며 “전략적 제휴에서 연결제무재표도 아니고 통합회계보고서를 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 명확히 해달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의 이같은 주장에 이날 공청회를 찾은 많은 중소물류기업 방청객들은 박수로서 호응을 보냈다.
한영태 주선연 전무는 “큰 나무만 있으면 산사태가 난다”고 대기업 위주의 종물업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종물업은 각 분야에서 전문화 돼 있는 물류업체에 대한 친시장 정책이 아니라 관시장 정책 도입”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주지원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이는 대형할인마트는 할인해주고 수퍼는 할인 안해주는 격”이라며 “중소물류기업 영업이익률이 2.8%에 불과하다. 2% 세제지원해주면 게임 끝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소물류업자도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물류업계 이끌어왔다. 도로운송의 80%가 운송주선업자들이 하고 있다"고 중소물류기업들의 존재이유를 설명한 뒤 “그린벨트를 화물차고지로 용인해달라”고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요구했다.
◆물류업계·하주 '2자물류 인식 정반대'= 2자물류업체를 종물업 인증에서 배제하는 문제에 대해선 물류업계와 하주업계가 정반대의 입장임을 이번 공청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항만물류협회 한규용 부장은 “3자물류기업 배제기준이 낮아져서 당초 취지에서 많이 퇴색했다”며 “기준을 상향시켜서 2자물류화물이 3자물류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증기준과 관련 “일관운송, 종합물류가 기준이 되기 위해선 다양성에 대한 배점이 상향돼야 한다”며 “고객수도 ‘1년이상 고객’만 만족하면 만점을 주는 것으로 하고 있는데 고객도 매출에 따라 대형, 중소형 고객으로 나뉜다. 매출을 고려한 고객수 인증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야적장이나 CY는 수출화물의 주요물류시설이다. 배송창고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인증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해 항만물류업체들의 권익보호에 나섰다.
(주)한진 김종수 상무도 "2자물류 배제한다고 했는데 여과조건이 낮은게 아니냐?"며 "기준인 3자물류 매출비중을 50%→30%→20%로 계속 하향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주 대표로 나온 김길섭 하주협의회 국장은 토론자중 유일하게 2자물류업체를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국가물류인프라 측면에서 대기업들의 2자물류기업 설립은 필연적이고 종물업 사업자가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지 의심스럽다”며 “종물업에서 2자물류를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또 논란의 핵심에 있는 하주세제지원 부분과 관련해선 “인센티브제가 시행돼야 하주들의 3자물류기업 이용률을 높일 것”이라며 “하주기업은 경영여건이 악화 돼 있어 원가절감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2원화 운영 지적도= 이번 공청회에선 종물업의 원활한 도입과 갈등해소를 위해 업종별 혹은 기업 크기별로 기준을 달리해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주)한진 김종수 상무는 “종물업 인증제가 갈등을 낳고 있는 것은 ▲대형기업과 중소형기업 ▲3자물류기업과 2자물류기업 ▲서비스형 중심과 인프라(시설, 운송)형 중심등을 '하나의 잣대'를 기준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별 인증제, 혹은 시설/서비스형으로 인증제를 별도 운영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는 많은 업체들이 서비스형 중심으로 인증하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서비스형 업체들은 대형화가 0점이 돼도 인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학계, 당위성 인정·합리적 기준도입 지적= 연구소·학계 출신 토론자들은 종물업의 기본 취지와 도입 자체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 인증기준 혹은 인증 방향등 제도가 원활히 시행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분위기였다.
김태승 경기개발연구원 부원장은 “한시적인 운영이라는 점과 인증제도라는 점에서 종물업은 특별한 업태를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특정항목만 가지고도 인증되는 시스템은 지양돼야 할 것”이라고 말해 서비스형 기업은 대형화가 0점이어도 인증될 수 있는 현 기준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백종실 평택대학교 교수는 “선사, 항공사, 하역업체에 불리하게 기준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국제물류업체가 육성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물류업계의 종물업 반발과 관련해 “세제지원 2%를 하주기업이 아닌 물류기업쪽에 해준다면 반발이 적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청석, 비난 여론 '시끌'= 지정토론이 끝나고 이어진 방청객들의 질의 시간에선 종물업에 도입에 대한 비난성 의견들이 빗발쳤다.
한 화물운송주선업자는 “전문성을 가지고 40여년간 일해왔는데 그간 정부가 물류에 지원해준게 뭐가 있느냐? 터미널등도 우리가 민자유치해서 운영해왔다”며 “종물업 도입 할 시간에 물류관련 법령이나 정비하라”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물운송자동차연합 회원은 “인증기준에서 지입차량을 '확보'로 하고 있는데 그럼 지입을 합법화하는 거냐?”고 법적인 문제에 대해 물은 뒤 “종물업 도입이 계속되면 파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화물연대파업보다 더 심각한 물류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복합운송업체 관계자는 “20~30개 대기업만 사는 정책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이냐”며 “종물업이 물류하도급 체제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존 중소업자가 인증(가능) 업체의 명의로 계약서만 바꿔서운송하는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며 업계의 위기감을 전했다. 또 “중국물류시장을 얘기하면서 중국물량 운송한다고 세제지원해주느냐”며 “내륙물류만 지원하는 것 아니냐”며 종물업이 국내물류중심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복합운송업자는 “이후에 이같은 공청회를 더 가질 계획이냐”고 묻고 “정부가 인증제 도입을 계속 추진하면 헌법소원을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지종철 서기관은 “종물업은 우수업체를 인증해 자가물류를 3자물류로 끄집어내기 위한 제도”라며 “문제는 2% 세제지원 부분인데 이는 재경부와 제도도입할 때 다시한번 논의해볼 계획이다”고 말했다.
◆'선박 300DWT가 차량1대', 기업군 임의선택 안돼= 한편 이번 공청회에서 정부는 인증기준안중 ‘운송수단’ 항목에서 당초 ‘차량1대=1천GT’로 정했던 선박 기준을 ‘차량1대=300DWT’로 수정했다.
또 많은 기업들이 인증이 보다 용이한 서비스형 업종으로 몰릴 수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인증 신청시 유형을 선택하지 않고 신청기업을 수송중심, 보관중심, 서비스 중심기준에 의해 모두 평가하고, 세가지 기준에 의한 평가점수중 가장 높은 점수를 해당기업의 평가점수로 인정한다”는 기준을 새롭게 마련, 물류기업들의 편법인증을 막을 방침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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