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05 10:26

범양상선 M&A 장기화되나?

노조 “M&A정보 공개 돼야” 대화채널 구성요구
산은 “노조 매각주체아니다” 공개거부


범양상선 M&A를 둘러싸고 범양 노조가 데이터룸 봉쇄라는 실력행사에 돌입한 가운데 노조와 산업은행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질 기미를 안보여 M&A중단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M&A가 이스라엘 조디악(Zodiac)이나 일본 NYK 등이 입찰희망사로 참여한 국제 입찰이어서 이를 둘러싼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범양노조는 산은측을 만나 의견좁히기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범양노조는 상위노조인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와 함께 같은날 오전 11시께 산업은행 여의도 본사에 방문, 협상 타결을 시도했다.

산은측은 M&A를 실제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기업금융2실 관계자들이 나와 의견조율에 임했다.

7월 28일 만남도 입장 차이 못좁혀

그러나 한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만남도 결국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노조측은 “노조는 대화의 자격이 있고 산업은행이 이를 무시했다”며 정보공개를 위한 대화채널 구성을 제의했고, 산은측은 “이번 매각이 국제경쟁입찰을 통해 이뤄지는데다 인수의향 업체들과 사적인 비밀을 지키기로 한 만큼 노조에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며 “노조는 이해당사자이긴 하지만 매각의 주체가 아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노조는 그러나 입찰부적격자로 지목한 회사와 관련된 사항은 회의에서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공식적인 입장도 산은측의 입찰적격 8개사 지정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다만 인수희망기업들의 정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노조 입장을 정리하고 추후 우선협상대상자선정에 관여하겠다는 입장.

이와 관련 노조 최호진 부위원장은 “입찰부적격자 문제는 (이번 교섭에선) 별도 문제다. 노조가 입찰적격자중 4개사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산은측이 입찰적격 8개사를 지정한 것은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8개사를 만드는 과정도 (노조와) 논의가 있었다면 이런 일(데이터룸 봉쇄)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산은의 정보독점을 비난했다.

노조 8개요구안 제시…갈등 촉발

지난달 7일 범양상선 육원노조가 산업은행측에 회사 M&A와 관련, 노조가 여기에 적극 참여해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8가지 요구안을 제시하면서 양측 갈등은 촉발됐다.

“M&A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노조는 ▲M&A과정에 노동조합 참여 ▲고용보장방법 명시 ▲동종업계 매각 반대 ▲외국회사 매각반대 ▲직원 복리수준 향상 등을 산은측에 요구했다.

노조는 “80년대초 해운합리화 당시 부실 해운기업들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당시 건전했던 범양상선이 고스란히 떠안음으로써 은행관리 및 법정관리라는 나락으로 떨어졌었다”며 그러나 “임직원들의 노력으로 연체 없이 1조원이 넘는 원리금을 차질없이 변제해왔고 매출액도 당시보다 5배이상 증가한 2조5천억원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는 범양상선 육해상 임직원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윤리경영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따라서 이번 M&A는 반드시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같은달 14일에도 노조는 산은을 방문, 입찰적격자 선정시 배제돼야 할 업체들을 통보해 다시한번 산은의 M&A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노조는 ▲투기성향 회사 ▲고용불안과 국부유출을 가져오는 업체, ▲고용불안을 야기할 업체 등의 기준으로 입찰부적격사로 이스라엘 조디악사와 일본 NYK, 국적선사인 장금상선, 대한해운 등을 지목했다.

산은, “노조는 M&A주체 아니다”

그러나 산은측은 이번 M&A가 국제공개입찰로 이뤄지는 만큼 노조의 요구대로 입찰적격자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산은은 7월 16일 오전 노조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은 입찰 적격 8개사를 선정했다.

선정된 업체는 ▲대한해운컨소시엄, 장금상선 등 국내 해운업체 2곳 ▲ 동국제강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E1컨소시엄, STX 등 국내 비해운업체 4곳 ▲ 이스라엘의 조디악(Zodiac), 일본의 NYK 등 해외 해운업체 2곳 등 총 8개사다.

이들 업체들은 7월 19일부터 31일까지 2주가량 범양상선에 대한 실사를 한 뒤 이중 한개 업체가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힐 예정이었다.

범양 육원노조는 이번 선정에 노조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크게 반발, 같은날 오후 4시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어 데이터룸 봉쇄라는 극단적인 실력행사에 돌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노조 이경국 위원장은 “그간 산업은행이 노조의 의견에 대해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와 정보공유거부가 조합원의 권익에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 실력행사 들어가 “데이터룸 봉쇄”

결국 7월 19일 노조는 데이터룸 봉쇄에 들어갔다.

노조는 같은날 오전 9시부터 회사 데이터룸이 설치된 대한화재빌딩 13층에서 비상임시총회를 개최하고 데이터룸을 봉쇄, 사실상 M&A과정을 중단시켰다.

이에따라 첫날(19일) 실사가 예정돼 있던 대한해운과 금호그룹, 동국제강, STX 등이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돌아갔으며 다음날(20일) E1과 장금상선, NYK, 조디악 등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조 이 위원장은 “지난 6월 매각사실이 공고될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M&A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했으며, 노조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를 할 것임을 분명히 통고했음에도 산업은행은 중요 이해당사자의 일방인 노동조합의 요구를 끝내 묵살하면서 독단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고 이번 데이터룸 봉쇄의 근본원인이 산은측에 있음을 주장했다.

산업은행의 태도에 대해 팀장급 직원들도 공분을 일으켜 7월 15일엔 팀장급 직원 전체가 노조에 가입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봉쇄 10일째인 7월 28일 현재까지 노조는 본사 13층 8개 데이터룸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봉쇄한 상황이다. 전체 노조원을 8개조로 편성, 2시간씩 교대로 봉쇄를 이어가고 있다.

지리한 봉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관계자는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고, M&A대상이지만 회사에 기여한 직원들의 노고가 있다”며 “일방적인 자본의 논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봉쇄의 정당성에 대해 주장했다.

봉쇄과정에서 실사를 온 8개사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8개사들도 나중에 인수사로 선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노조를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 8개사들은 노조가 봉쇄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 곧 발걸음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노조의 일방적인 M&A방해에 대해 산은은 노조의 데이터룸 봉쇄는 범양상선 경영진과 노조가 풀어야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M&A주체가 아니란 기존 입장을 다시한번 확인한 셈이다.

M&A 추후일정 어떻게 되나

노조는 봉쇄 첫날인 7월 19일에 입찰적격사로 지정된 8개사에 해당 기업 경영상태와 재무상태 등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노조는 이들 8개사 자료를 모아 이후 M&A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노조관계자는 이와 관련 “아직까지 내용을 보내온 회사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재무구조 상태, 장기적인 투자 의향 등을 파악해 추후 발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노조는 8개사가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보내오지 않는 것에 대비, 회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직접 해당기업을 방문, 자료를 요구할 계획이다.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기업이 노조의 자료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란 계산에 따른 것.


31일로 실사기간이 끝남에 따라 M&A진행에 대한 추후 일정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노조의 데이터룸 봉쇄가 계속될 경우 M&A의 첫단계인 실사가 이뤄지지 못해 결국 M&A진행 전체가 뒤로 연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M&A 진행에서 전략구성과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산은 M&A실 관계자는 노조와의 협상이 타결을 지어야 이후 M&A가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터룸 실사는) M&A초기단계다. 노조와 협의 안되면 나중에 M&A진행이 너무 힘들어진다”며 “처음에 유화적인 관계로 협의가 돼야 나중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노조가 M&A주체는 아니라도 막강한 노조의 힘을 무시하고선 원만한 M&A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벌크선사인 범양상선 M&A에 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다”며 “우리가 OECD국가이고 해외기업이 참여한 국제입찰이란 점을 감안해달라”고 말해 노조측이 양보해주기를 바랬다.

그는 양측이 극적으로 타결하게 될 경우 2주간의 실사를 거친뒤 최종 오퍼를 받고 이중 한개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본계약에 들어가게 된다고 이후 M&A 스케줄을 밝혔다.

데이터룸 이전문제도 관심

한편 임대 만료에 따라 데이터룸 이전문제도 관심이다. 지금까지 산은과 삼정KPMG측에서 잠시 빌렸던 현재 데이터룸(대한화재빌딩13층)의 임대기간이 31일로 끝났다.

이에 대해 업계관계자들은 현재 데이터룸을 계속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만약 노조봉쇄를 피하기 위해 데이터룸을 옮긴다면 더 큰 저항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2주간의 데이터룸 봉쇄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건물임대료가 공중으로 날아간 점을 감안할 때 옮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대두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이와 관련 “만약 데이터룸을 옮긴다면 이는 M&A진행에서 철저히 노조를 등지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도 생각이 있다”고 말해 더욱 강도높은 실력행사가 이어질 것을 암시했다.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대목이다.

아직까지 노조측은 파업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데이터룸 이전이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것.

노조는 국제입찰인 점과 국내 강성노조로 외국의 인식이 안좋은 상황에서 파업으로 치닫는다면 해운업계내 한국의 이미지 추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과 국내해운업계 여론도 이들에게 불리하게 돌아설 것을 우려, 파업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바 있다.

노조 관계자는 “파업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파국적인 입장은 우리나 회사나 산업은행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그런 상황까지 안 가도록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M&A실 같은 관계자는 데이터룸 이전에 대해 “거액의 임대료를 날린 점을 감안해 이전을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회사 자료가 원천이 돼야하기 때문에 이전보단 현재 장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범양노조의 2주간 데이터룸 봉쇄로 범양상선 M&A는 2주가 뒤로 밀리게 됐다. 하지만 이후 협상에 대한 원만한 타결도 불투명해 M&A 차질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해운업계 유일한 육원노조인 범양 노조가 민주노총 산하인 점도 사태 장기화에 무게를 두게 한다. 데이터룸 봉쇄란 강수를 둔 만큼 이들이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실사 기간이 끝남에 따라 추후 행동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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