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섬이 산재해 있는 남해나 서해와 달리 동해엔 섬이 거의 없다. 울릉도와 독도만이 동해 해상을 사이 좋게 지키고 있다. 특히 울릉도는 제주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섬 여행지다. 하지만 항공편이 없어 접근성은 많이 뒤처진다.
해운조합이 지난달 말 진행한 울릉도 독도 체험 행사는 오랜 시간 동해 섬 여행을 선망해 온 기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6월28일 오후 5시30분 서울역에서 KTX에 몸을 실은 섬 여행 체험단은 포항역에서 다시 셔틀버스로 환승해 저녁 9시40분께 영일만항에 도착했다. 어둠이 짙게 내린 항구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승선 준비를 했다.
울릉도와 뭍을 연결하는 배편은 총 5척 정도다. 포항에서 2척, 묵호와 후포 강릉에서 각각 1척씩 운항한다. 포항에선 울릉크루즈의 2만t급 <뉴씨다오펄>호와 이달 취항한 대저해운의 <엘도라도익스프레스>호가 울릉도 바닷길을 항해하고 있다.
하나가 외항을 항해하던 대형 여객선이라면 다른 하나는 3시간 안팎의 빠른 항해 시간이 장점인 쾌속선이다. <뉴씨다오펄>은 매일 밤 11시50분, <엘도라도익스프레스>는 아침 10시20분에 포항 영일만항을 출발한다.
2만t급 대형여객선 매일 운항
섬 여행 행사에 참여한 일행은 <뉴씨다오펄>호를 이용해 울릉도를 찾았다. 이 선박은 울릉도를 운항하는 유일한 대형 여객선이다. 227개의 객실에서 1200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다.
과거 군산과 중국 스다오 구간을 오가던 배다. 운항 시간은 긴 편이지만 국제항로를 취항한 배답게 동해의 높은 파고에도 흔들림이 적다는 건 큰 장점이다. 배 멀미가 심해 울릉도 여행이 부담스러운 여행자들에겐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인 셈이다.
자정을 앞두고 포항신항에서 닻을 올린 여객선은 6시간을 웃도는 시간 동안 동해 밤바다를 항해해 이튿날 오전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했다. 객실에서 선잠을 잔 뒤 이른 아침 눈을 뜬 기자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은 채 먼 바다를 달려온 여행자를 반기는 울릉도와 첫 대면했다.
사동항 여객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아침 식사를 한 일행은 9시10분으로 예정된 독도 탐방에 앞서 도동 해안 산책로를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가이드 역할까지 겸임하는 관광버스 기사분은 울릉도엔 사동 도동 저동 등 총 3개의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이 중 도동리는 군청이 소재한 울릉도 행정구역의 중심지라고 설명했다. 울릉읍 서면 북면 등 울릉도를 구성하는 3개의 행정구역 중 세 개의 여객선 터미널은 모두 울릉읍에 위치해 있다.
가이드는 울릉도는 제주도 면적의 2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데다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땅값이 평당 5000만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서울의 명동 같은 도동리마저 좁은 택지에 집들이 계단식으로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동산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안 산책로는 도동 여객터미널에서 시작해 해안 절벽을 따라 수km가량 조성돼 있다. 바다와 절벽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질러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무암 바위로 형성된 천연 터널도 이채롭게 다가왔다. 저동 구간까지 포함해 행남 해안 산책로로 불린다.
국토 최동단 외로운 섬 독도
해안길 도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사동항으로 이동해 독도행 쾌속선 <썬라이즈>호에 올랐다. 가이드가 소개해 준 도동리 한 약국에서 사 먹은 강력한 멀미약의 효과인지 배에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멀미가 심한 기자는 차라리 자는 게 낫겠다 싶어 눈꺼풀을 끌어당기는 강한 힘을 거부하지 않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에 어슴푸레 잠에서 깼다. 얼마 후 독도에 도착한다는 방송이었다. 때맞춰 조용한 선내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서유석의 <홀로아리랑>을 시작으로 정광석의 <독도는 우리땅> 안치환의 <외롭지 않은 섬> 송창식의 <내 나라 내 겨레> 등 독도를 주제로 한 가요들이 드넓은 동해 바다에 울려퍼졌다.
사동항을 출발한 지 1시간 4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빗물이 흘러 내리는 창문 밖으로 독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특히 배 안쪽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독도를 보려고 창쪽으로 몰려 들었다.
독도는 겉보기엔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섬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동단에서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맞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해지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스피커에서 “높은 너울 때문에 독도에 접안하지 못하고 선회 관람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여행객들은 독도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선미로 나갔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독도 방문을 맞아주었다.
선교를 나와 여행객들 사이에 섞인 선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 규정이 강화되면서 날씨가 안 좋으면 독도에 접안하지 않는다. 10번 독도를 방문하면 2~3번 정도 입도한다”고 말하며 독도 땅을 밟지 못해 아쉬워하는 여행객들을 달랬다.
화산 분화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
독도와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사동항으로 돌아온 일행은 이후 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울릉도 관광에 나섰다. <1박2일>과 <불타는 청춘> 촬영지로 유명한 학포마을을 지나 오후 첫 행선지인 울릉도 서면의 명소 향목전망대에 도착했다.
고도 150m의 산 정상에 있는 향목전망대로 가는 길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산 중턱까지 오른 뒤 10분 정도 걸어가면 전망대에 당도한다. “대한민국 10대 비경인 대풍감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말처럼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 서쪽 해안 전경은 깊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어 수국이 유명한 개인 정원인 예림원과 누리소통망(SNS) 사진 코스로 유명한 테마 공간 울라를 찾았다.
예림원은 한 개인이 만든 정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수국과 수많은 미술품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다. 정원 온실에 경북 청도 출신인 예림원 주인은 국내외 서예대전에서 입선한 서예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20여년간 해양경찰로 일한 이력이 반갑게 다가왔다.
울릉도 고릴라의 줄임말인 울라는 송곳산 고릴라 바위를 형상화한 조형물 이름이다. 울라 뒤로 멀리 고릴라 바위가 보인다. 울라 테마공원은 독특한 사진을 원하는 MZ 세대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울릉크루즈 직원이 설명했다.
울릉도의 또 다른 볼거리는 해안을 따라 거대하게 치솟은 기암괴석들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답게 거북바위나 삼선암(세 선녀 바위) 같은 기괴하게 생긴 암석들이 절경을 이룬다. 물론 여행자들에겐 사진 촬영 명소로 제격이다. 우리 일행도 삼선암을 배경으로 울릉도 여행의 추억을 담은 뒤 첫 날 일정을 마쳤다.
둘째 날엔 쎄시봉 가수 이장희씨 기념관인 울릉천국 아트센터를 들렀다. 이씨가 제공한 부지에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야외 공연장과 기념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기념관은 1~2층 음악 갤러리와 3층 카페로 구성돼 있다. 갤러리엔 이씨의 젊은 날 사진과 쎄시봉 동료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울릉천국 관람을 마친 뒤 일행은 아쉬움 가득한 울릉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사동항으로 이동해 12시30분 출항하는 <뉴씨다오펄>호에 승선했다. 현지 여행 일정이 하루 남짓밖에 되지 않아 울릉도 곳곳을 돌아보지 못했지만 먼발치로나마 독도를 실물로 ‘영접’했다는 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추억이었다.
아울러 울릉도가 근사한 관광지란 걸 몸소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다. 2025년께 공항이 개장하면 제주도 못지 않은 국제적인 관광지로 도약할 거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제4회 섬의 날 기념행사가 8월8일부터 11일까지 울릉도 일원에서 열린다. 섬의 날 기간에 맞춰 배 타고 떠나는 울릉도 여행의 매력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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