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선박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손해배상(클레임) 규모가 대폭 늘어나자 선주배상책임보험(P&I보험) 회사들이 몸집 키우기에 나선다.
영국 노스오브잉글랜드(NOE)와 스탠더드는 내년 2월 통합회사 출범을 목표로 합병 절차를 밟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각자의 강점과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재정 확대와 고객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통합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해상보험 카르텔인 P&I클럽국제그룹(IG) 회원사인 NOE와 스탠더드는 올해 5월까지 회원사 의견 수렴 절차를 마무리하고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어 8월부터 단일 조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통합회사 설립일은 내년 보험 갱신일인 2023년 2월20일이다. 합병안이 이사회를 통과한 지난 14일 이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스탠더드 제레미그로스 대표는 “(합산) 300년 동안 공유된 P&I보험 유산을 기반으로 해양부문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꾀하고 향후 직면할 도전을 정확히 예측해 전 세계 회원과 선주에게 높은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NOE 폴제닝스 대표는 “최근의 수차례 성공적인 합병으로 회원사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양사 통합을 계기로 디지털화 규제 지속가능성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통합하면 가입선단 4억t(총톤), 비상준비금(Free Reserve) 8억달러의 세계 최대 P&I조합으로 출범하게 된다.
영국 보험중개회사인 에이온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IG 회원사 13곳의 가입톤수와 비상준비금은 각각 18억5400만t, 55억4810만달러다.
이 중 노르웨이 가르(Gard)가 가입톤수 3억5600만t, 비상준비금 12억6200만달러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NOE는 2억4800만t 4억5000만달러(약 5500억원)로 2위, 스탠더드는 1억4900만t 3억6000만달러(약 4400억원)로 6위에 각각 올라 있다.
두 회사는 1800년대 후반 약 20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설립했다. 노스오브잉글랜드가 1860년 뉴캐슬어폰타인에서 설립된 뒤 24년이 지나 스탠더드가 런던에서 P&I보험 서비스를 시작했다.
IG 멤버는 영국 NOE 스탠더드 런던P&I 브리태니어 스팀십뮤추얼 십오너스 웨스트오브잉글랜드 UKP&I 8곳, 노르웨이 가르(Gard) 스컬드 2곳, 스웨덴 스웨디시클럽, 미국 아메리칸클럽, 일본선주책임상호보험(JP&I)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양사는 “클레임이 대형화하고 복잡해지면서 지급보험금이 증가해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며 최근의 시장 환경 변화가 합병에 영향을 끼쳤음을 시사했다.
이들의 진단처럼 선박 대형화로 해난사고 배상액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보험사들은 심각한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IG 회원들은 모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조합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호보험료(Mutual call)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사고 규모가 워낙 막대하다보니 보험료 인상만으로 손실 규모를 메울 수 없는 처지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최근 4년간 발생한 해난사고 중 배상액이 수억달러를 넘어서는 초대형 사고만 4건에 이른다. 2019년 9월 미국 조지아주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7700대급 자동차선 <골든레이>호 전복사고(
사진)는 손해배상청구(클레임) 금액이 최대 8억4200만달러(약 1조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5억달러의 보험금이 집행된 2012년 <코스타콩코르디아> 침몰 사고 이후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이번에 합병을 추진하는 노스오브잉글랜드가 <골든레이>호의 보험사다.
2020년 7월 모리셔스 해상에 1000t의 기름을 유출한 20만t(재화중량톤)급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와카시오> 좌초사고는 4억7800만달러(약 5800억원) 안팎의 배상금이 발생할 것으로 집계된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수에즈운하를 차단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에버기븐>호 좌초사고를 놓고 수에즈운하청은 배상금 5억5000만달러(약 6700억원)를 요청했다. 두 선박의 보험사는 각각 일본 JP&I와 영국 UK P&I다.
이 밖에 지난달 16일 화재사고를 당한 뒤 이달 1일 침몰한 6400대(CEU)급 자동차운반선 <펠리시티에이스>호의 손해액도 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이 선박은 세계 4위 해상보험사인 영국 브리태니어에 가입해 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