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16 09:27

"고향인 금강산 찾아 민족의 한 달래며 목놓아 울었다"

인물 포커스- 우성해운 홍용찬 사장

"예전에는 대리점에 종사하는 것이 각광받는 직업중의 하나로 그에 응당 하는 보수도 꽤나 괜찮은 편이었지요. 그에 비해 요즘에는 직원들에게 능력에 걸 맞는 대우를 해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올해로 30년째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성해운의 홍용찬 대표이사는 서울대 경제연구소, 무역연수원 해운론 강사, 외대 대학원 해운경영학과 강사, 해무사 고시 출제위원, 경실련 설립 발기인, 시민 단체 공동 신문인 시민의 신문 운영위원장, 서울대 상대 총동창회 상임 부회장 등 그를 칭하는 타이틀도 세월의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다양하게 불리어 졌다.
해운과 동고동락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홍용찬 사장은 현재 우성해운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3녀 1남을 둔 어엿한 가장으로 남부러울게 없지만 고향인 금강산에서 목놓아 울며 민족의 한을 달래기도 했다. 사무실 한켠에 걸려있는 등반사진 속의 모습처럼 평생 산을 오르는 심정으로 완급을 조절하면서 삶을 살아왔다는 홍 사장을 만나 해운업계에서 겪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들어 보았다.

두둑한 수고비가 출항 늦추는 역효과 불러일으켰으니...

홍 사장의 첫 번째 이야기는 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하주들은 先 B/L을 운송회사에 요청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자금이 궁한 때라서 영세하주뿐 아니라 종합상사가 된 대형화주들조차 심한 경우 물건을 생산하기 전에도 L/C만 개설되면 先 B/L받아 은행에서 네고하고 원자재를 싣는 경우가 다반사였을 때였다.
당시 무역회사 내에는 미리 선박회사에서 B/L을 받아오는 것이 유능한 사원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한 번은 현재 모 재벌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생산완료가 아직 안 된 화물의 B/L을 막무가내로 부탁해 영등포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화물이 생산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서 B/L을 끊어주었다. 단지 업무상 만전을 기하기 위해 직접 공장에 가서 스타핑(stuffing)에서부터 트럭이 출발하는 것까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트럭운전사들에게 늦지말고 아침 일찍 도착시켜 달라는 뜻에서 밥값을 두둑하게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덧 자정이 지나 통금 때문에 귀가하지는 못했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근처 여관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문제는 다음날에 터졌다. 선적예정 화물은 7X40'였는데, 7대의 트럭 중 6대의 트럭은 예정대로 도착했지만, 나머지 1대가 문제였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때는 1FEU만 실어도 여직원 한달 봉급은 족히 주고도 남을 정도로 7FEU는 시세로 꽤 괜찮은 물량이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트럭운전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신 후 한잠 자다가 아침결에야 깨서 겨우 출발하고 있다는 행방을 알아냈다. 이유인즉슨 그 전날 두둑하게 쥐어 준 위로금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주머니도 든든하겠다. 야경도 괜찮겠다, 달밤에 한잔 생각나는 것은 당연지사... ' 결국, 그 트럭 운전사는 얼큰하게 술에 취해 한 잠 늘어지게 잔 후 출발해 약속시간에 맞춰 당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탈한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바이어에게 부랴부랴 해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못다 이룬 교수의 꿈을 해운관련 강의에 바치다"

홍용찬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연구소에 남아 교수의 길을 가고 싶었다. 소시적부터 가정교사를 그만 둔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남을 가르치는 일에는 이력이 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미국의 최고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해야만 서울대교수가 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업을 이어나가던 그에게 이러한 사실은 두터운 현실의 벽이었고 한동안 좌절의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꿈을 접게 된 첫 번째 고통이었지만 그로 인해 해운업과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이때부터 '해운'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정복하기 위한 그의 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하주나 바이어 접대로 술을 마시는 날을 제외하곤 밤을 세우기가 일쑤였다. 몇 년을 이렇게 투자하고 나니, 무역연수원에 해운강의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4∼5년동안 정말 성실한 자세로 열강했고 업계 내 입 소문이 퍼진 탓인지 무역협회, 은행, 해운연수원 등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교수로서 못다 한 꿈을 아낌없이 펼쳤다.
그러다가 1983년에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해운경영학과를 개설했는데 초대 정기선 해운경영론 교수로 발탁되면서 만 10년간 강의를 맡게 되었다. 해운에 대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선후배 동료들이 당시 그의 학생들이었고 매 수업시간마다 긴장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면서 해운과 경제이론을 접목시키기에열심히 노력했다고 홍 사장은 회고한다.
"한창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날개를 달고,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무렵, 더러는 바이어 방문 시즌이 되면 1달 이상 가족들과 집에서 한끼도 함께 먹은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이어와 약속이 몰려 있을 경우에는 아침에 밥을 3번 이상 먹은 적도 있었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상권의 수출물량은 섬유류, 전자제품, 신발, 장난감, 가방, 타이어 등이 주종을 이루었고 바이어들 중에서는 유대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대다수가 성실하고 정직해 신뢰가 갔다는 홍 사장의 전언이다.
그들과 자꾸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까 히브리어가 웬만한 중학생 영어수준으로 구사할 줄 아는 홍사장은 그들의 정직성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해무사 자격고시 출제위원 경력

그는 곤혹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냐는 기자의 물음에 제 1회 해무사 자격고시 해운경영론 출제위원으로 위촉받았을 때였다고 답했다. 해운경영론은 전공필수 과목인데 자신이 출제위원으로 있다는 소식을 접한 주변의 선후배, 동료의 부탁을 뿌리치기가 난처했다는 것이다.
"시험문제나 아님 힌트만이라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러나 시험문제를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어 발설한다면 공평성에 어긋날 것이라는 생각에 철통같이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라고 홍사장은 말했다. 자신의 논문, 강의자료를 복사한 유인물 외에는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고. 그렇다고 문제를 그 범위에서 출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전 실패로 해운인 야구대회 패하자 금연 각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요즘 말대로 표현하면 매니아였다. 야구 뿐 아니라 바둑, 등산 등 몇가지 취미를 가져서 틈나는 대로 산을 찾았는데 이것이 스트레스를 풀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다고… 또한 그는 97년도에 지금의 지송배 바둑대회에서 아마추어 16강에 들 정도로 공인 6단의 바둑 실력도 수준급이다.
82년부터 시작된 해운인 야구대회의 열성 참가회원이었던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운동장에 데려가 공을 던지게 해 본 후에야 결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스포츠 신문 1면을 곧잘 장식하는 박찬호의 인기만큼이나 해운인들만의 축제인 야구대회에 대한 열성도 남달랐다. 첫해 경기의 결승전은 서울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오전에 고려해운과의 경기가 있었는데 상대팀에는 야구선수출신이 있는 등 막강한 팀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승리를 거뒀고, 팀원들의 피로를 풀어주고자, 사우나에 갔다. 너무 푹 잘 쉰 탓일까.
오후에 조양상선과의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조양상선이 강적이기도 했지만, 사우나에서 너무 진땀을 뺀 탓인 것 같았다. 6:5로 경기에서 패하고 준우승을 했다. 83년도는 토너먼트가 아닌 리그전 형태로 게임형식이 변했는데, 당시 강팀은 해운항만청,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이었다. 6월 6일날 펼쳐진 3번째 약체 삼익해운과의 게임에서 자기팀의 실력을 과신해 지고 말았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홍 사장은 작전 실패와 자만으로 인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이 날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제일 고통스러운 벌이 무얼까 고민하다가 "담배를 끊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사흘 동안만 한시적으로 끊기로 마음먹었으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이기자는 의지력으로 하루 이틀 견디었고 지금까지 영영 끊게 되었다고 한다.
글·원효선기자

에필로그

해운을 하면서 보람이라면, 우리나라 해운 산업이 미천했을 때의 한국 운임은 일본에 연동되어 경쟁국인 대만, 홍콩에 비해 동일 품목에 대해 비싼 운임을 치루었는데 ZIM을 동맹 탈퇴시키면서 운임을 조정으로 수출 신장에 기여했다는 점과 다행스럽게도 네 아이가 모두들 전국 학력 경시대회에서 수석을 해보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기대가 있다면, 애비가 왜 문과를 택하게 했는가를 헤아려 주고 이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일본이 미국 경제에 짓눌리는 것은 기술수준이 못 따라서가 아니라 늘 財Tech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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