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6 09:09

판례/ “100일 후 도착한 화물의 교훈”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8.23자에 이어>

다. 피고의 주장에 대한 판단

1) 정액배상주의 적용 여부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에 관해 정액배상주의를 규정한 상법 제137조는 임의규정으로서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달리 정할 수 있는바, 위 인정사실 및 앞서 든 각 증거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용선계약을 체결하면서 처음부터 발전용 유연탄을 운송물로 정했고, 계약의 내용으로 장기간의 계약기간과 최소한의 운임 보장에 합의하는 등 안정적이고 계속적인 유연탄의 운송은 이 사건 용선계약의 목적이 된 점, ② 발전용 유연탄은 장기 보관시 자연발화의 위험성이 있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보관하기 곤란하고 운송이 지연될 경우 해상운송과정에서 염소에 노출돼 훼손될 가능성이 높은 점, ③ 발전소 가동을 중단할 수 없는 원고로서는 발전용 유연탄이 멸실·훼손된 경우와 인도지연이 발생했을 때 모두 긴급하게 대체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므로, 이 사건 용선계약에 관해는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의 경우 모두 위험에 대한 대처방법이 유사하고 발생가능한 손해도 상당 부분 중첩될 것으로 보이는 점, ④ 피고는 발전용 유연탄의 위와 같은 특성뿐만 아니라 유연탄 수급 문제로 발전소 가동이 중단될 경우 원고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피고의 채무불이행시 그 유형과 무관하게 대체품의 조달이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 사건 용선계약을 체결했던 것으로 보이는점, ⑤ 원고와 피고는 위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해 운송의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가 적정한 수송선박을 확보할 의무를 부담하면서 적정선박 미확보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원고의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고(이 사건 용선계약서 제5, 6조), 선박고장의 경우 피고가 불가항력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등(이 사건 용선계약서 제22조 제1항) 운송인이 운송지연에 관한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로 합의한 점, ⑥ 피고가 적정선박을 확보하지 못해 원고에게 발생하는 손해에는 대체선박을 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원고에게 발생한 운송물의 인도지연으로 인한 손해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점, ⑦ 이 사건 선박은 출항 직후의 고장을 비롯해 두 차례의 고장이 발생해 장기간 수리를 요하게 됐고, 결국 이로 인해 이 사건 운송이 지연됐으므로, 피고가 적정한 수송선박을 확보하지 못해 이 사건 운송이 지연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는 점, ⑧ 이 사건 용선계약서에는 운송물의 인도지연과 달리 훼손에 관해는 명시적으로 피고가 모든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을 규정(제4조 제11항)하고 있는바, 발전용 유연탄의 훼손과 인도지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의 양상이 유사하고, 발전용 유연탄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간 인도가 지연돼 발생하는 손해가 훼손된 상태에서 적시에 도착한 때에 발생하는 손해보다 작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원고와 피고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운송물의 적시 운송에 관해 합의했음에도 운송물의 훼손에 한정해 피고의 책임을 제한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계약당사자들인 원고와 피고는 적어도 이 사건 운송과 같이 선박의 고장으로 인해 발생한 운송물의 인도지연에 관해는 상법 제137조의 정액배상주의 원칙의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합의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2) 특별손해의 고의 및 예견가능성 존재 여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24, 30 내지 36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는 석탄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서 발전연료인 유연탄의 적시 공급의 필요성과 연착으로 인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원고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선박의 고장사실을 전달받은 2019년 8월12일경 곧바로 피고에게 유연탄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발전소 중단 등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고 대체품을 구하기도 어렵다는 취지로 회신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착에 따른 문제점과 추가 비용 발생사실을 피고에게 알린 점, ③ 이 사건 운송의 운송물인 유연탄은 원고의 열병합 발전소에 사용될 예정이었고, 피고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는바, 일반적으로 발전소는 연료를 조달해 중단 없이 가동돼야 하고 가동이 중단될 경우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발전용 유연탄의 운송이 지연될 경우 대체품인 유연탄을 조달해 발전소를 가동하는 조치는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발전소 운영자의 대처방법에 해당하는 점, ④ 피고는 이 사건 용선계약 체결 이후 8년 이상 유연탄을 운송해 왔고,원고의 유연탄 운송 의뢰 횟수와 빈도, 운송량 등 피고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원고의 유연탄 수급 현황과 재고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로서는 이 사건 운송의 지연으로 원고에게 대체품의 구매 및 보관, 운송과 관련해 앞서 인정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3) 손익상계 여부
피고는 또한, 원고가 스왑 방식으로 조달한 22,000톤을 제외한 나머지 대체 유연탄 60,780.80톤에 대해는 해상운송을 수행하지 않아도 돼 764,734,908원 상당을 해상운송료에 관한 이익을 얻었으므로 위 돈은 원고의 손해액에서 공제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피고의 주장처럼 원고가 위 764,734,908원 상당에 관한 해상운송료를 지출하지 않게 됐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이익은 원고가 대체품 판매자와 별도로 계약을 체결해 얻은 이익으로서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이 되는 피고의 운송 지연으로 인해 얻은 이익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이득이 배상의무자인 피고가 배상해야 할 손해의 범위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대법원 2017년 11월29일 선고 2016다244743 판결 참조), 피고의 이 부분 주장도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피고는 원고와 사이에 이 사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가집행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 이 사건에 관해는 민사소송법 제213조 제1항에서 규정한 가집행 면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나, 피고의 주장내용과 관련 증거인을 제1호증의 기재를 면밀히 살펴보더라도 이 사건에 관해 위 조항 본문에서 정한 ‘가집행의 선고를 붙이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주문에서 가집행을 할 수 있음을 선고하기로 한다).

재판장 판사 김형석 판사 박상인 판사 김태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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