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경규제 강화로 올해 글로벌 조선시장의 호재가 기대되는 가운데, 국내 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장기적인 전략을 앞세워 선주들의 발주 물꼬를 터야 큰 폭의 호전이 가능할 거란 조언이 나왔다. 그동안 관망세로 버텨온 선주들로부터 발주를 이끌어내려면 조선사들의 구체적인 미래 전략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박사는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의 추격을 뿌리치고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하려면 국내 조선사들이 강점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환경규제에 해운 ‘울고’ 조선 ‘웃고’
양 박사는 글로벌 환경 규제가 올해 조선·해운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다가오는 환경 규제로 조선사는 수혜를 누리는 반면, 해운사는 비용 부담으로 몸살을 앓으며 상반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점쳤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의회는 2022년까지 해운업을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에 포함하는 내용의 환경 규제를 표결을 통해 통과시켰다. EU 의회의 조치로 2022년 1월1일 이후 EU 회원국이 관할하는 해역의 모든 항만에 기항하는 5000GT(총톤수) 이상의 모든 선박은 배출량을 줄이거나 ETS를 구입해야 한다.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나선 EU는 향후 허용 기준, 배출권 구매 의무 산정 등의 구체적인 사안은 회원국들과의 협의를 거쳐 법제화할 예정이다.
국제해사기구(IMO)도 2023년부터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대비 30% 감축해야 하는 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EEXI)를 실시할 예정이라 친환경선박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내년 ETS와 2023년 EEXI 시행으로 선주들이 발주를 늘리며 조선사들의 수주량이 크게 개선될 기대감이 높다는 것이 양 박사의 설명이다.
그동안 발주를 망설였던 선주들이 연료 효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친환경 선박 도입에 나서면서 조선업계엔 기회가 되겠지만, 선주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주들로선 유럽항만에 입항하려면 ETS를 구매해야 하고, EEXI에 대응하려면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 운용 중인 배출량 감소를 목적으로 선박의 속도를 줄이는 건 운항 정시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해법이 될 수 없다. 결국 선주들로선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친환경 선박을 발주해야 한다는 얘기다.
EU 항만에 기항 중인 선사들이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제유조선선주협회는 ETS가 해운업으로 확대되면서 EU 항만에 기항하는 전 세계 선박들에게 연간 총 35억유로(약 4조8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 박사는 시행 초기엔 큰 충격은 없겠지만 향후 수요가 몰리면서 ETS 구매 가격이 올라가고, 친환경선박 도입이 필요할 경우 해운업계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으로 관측했다.
특히 그는 머스크 MSC CGM-CGM 등의 글로벌 선사들이 경쟁사를 따돌리기 위해 환경 규제를 기회로 삼을 수 있어 국적선사들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韓조선 올해 수주 전년比 20% 이상 증가 전망
ETS와 EEXI 등의 환경 규제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올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선박 수주량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 박사는 올해 전 세계 발주량이 전년보다 늘어난 3500만CGT에 달한다고 가정할 때,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량이 지난해 819만CGT에서 20% 이상 증가하며 1000만CGT를 넘어설 것으로 점쳤다. 지난해 4분기 예상한 전망이 유효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동안 관망세로 버텨왔던 선주들이 강력한 환경 규제를 목전에 두고 발주를 늘리면서 수주량이 증가할 거란 분석이다.
“올해 약 1000만CGT의 수주량을 예상하지만 조금 더 내다보면 1200만~1300만CGT까지도 내심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올해 수주량 증가가 기대되는 선종은 지난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곳간을 든든하게 책임진 LNG 운반선과 탱커로 꼽혔다. LNG선은 모잠비크와 카타르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30~40척의 발주가 전망돼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관측했다.
또 다른 효자 선종인 탱커는 국내 조선사들에게 호재로 다가오고, 중소형선 비중이 높은 벌크선은 중국 조선소로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
컨테이너선은 양 박사가 주목한 선종으로 5000~9000TEU급 중형선박을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초대형과 피더선 위주의 발주는 활발히 이뤄진 반면, 중형선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따라서 노후선박 대체 수요가 높은 중형 컨테이너선을 조선사들이 또 다른 먹거리로 삼아야 한다는 게 양 박사의 주장이다.
“1만3000TEU급 선령은 아직 낮은 반면, 5000~9000TEU급은 15~20년 이상인 선박이 상당해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료 효율성이 굉장히 중요한 선형이라 기술력을 요구하는데 중국이 아닌 우리 조선사들이 수주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신조선가 변동은 조선사들의 수주잔량 확보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조선사들은 건조 단가를 올리는 게 수월해진다.
양 박사는 올해 조선사들이 1200만~1300만CGT 규모의 일감을 수주하면서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부터 신조선가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800만CGT를 건조·인도하고 1200만~1300만CGT 일감을 따내 2400만CGT가량의 수주잔량을 확보하면 글로벌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이 선가를 올리는 게 쉬워질 거란 얘기다.
선가 인상은 국내 조선사들의 영업이익 개선뿐만 아니라 일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자재업계에도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조선사들이 뱃값을 깎으면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기자재업체나 하청업체들의 어려움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2월 초 조선 빅3의 수주잔량은 2000만CGT이 채 안 됐다. 향후 잔량이 늘어나면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인 우리나라가 시장에서 키를 쥐고 있으니 과감히 먼저 선가를 올릴 필요가 있다.”
선주들 혼란 가중…韓조선은 단기 대응만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조선업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 일본의 행보도 국내 조선사들이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조선사들을 향한 양 박사의 우려는 매우 컸다. 중국 일본이 한국 조선업 추격에 고삐를 죄고 있지만 정작 우리 조선사들은 대응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중국 일본 정부의 행보는 그동안 재무적으로 여력이 없었던 국내 조선사들로선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스가 정부는 올 들어 이마바리조선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에 1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인 JMU는 한국 중국 조선을 추격하고자 지난해 말 선박을 공동으로 설계·제작·판매하는 합작사 ‘니혼십야드’(NSY)를 설립했다.
일본의 행보가 주목되는 건 대형화주와 선사, 금융기관과의 연계로 서로가 이득을 보는 써클을 만들어 상생·발전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화주-종합상사-조선소-선사로 연결되는 ‘호혜의 써클’이 언제든지 한국 조선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양 박사의 견해다.
그는 “사실 다 같이 합을 맞추는 게 쉽지 않고 일본 내에서도 클러스터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있지만 무너지는 제조업을 살리려고 하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을 시장에서 퇴출하고 우수한 조선사를 지원하는 ‘화이트 리스트’를 가동해 오며 한국 조선업 타도에 나선 중국 정부의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양 박사는 ‘중국 제조2025’ 계획을 토대로 조선업을 국가 중대 산업으로 육성 중인 중국 조선업을 국내 기업들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몇십 년 동안 장기전략을 세워 조선업 육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집중해서 한국을 뛰어넘겠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국내 조선사들이 예의주시해야 한다.”
양 박사는 글로벌 환경규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일본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려면 기술력이 월등한 우리나라 조선업이 장기적인 전략을 앞세워 선주들의 발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마케팅 전략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발주를 저울질하고 있는 선주들의 관망세가 2016년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운시장 장기 불황에 섣불리 투자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가운데, 환경규제 강화로 선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LNG 추진선박으로 환경규제 대응이 가능하지만 향후 암모니아 메탄올 수소 등 친환경 무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으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재무적 부담이 큰 선주들로선 어느 하나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글로벌 조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은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선주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항 전략을 짤 수 있도록 글로벌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이 마케팅 전략 등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몇 년 후에 어느 선박이 나올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 선주들도 그 전략을 함께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르시핑 포시도니아 국제조선해양박람회 등 해외에서 열리는 설명회에 가보아도 한국 조선사들이 향후 전략에 대해 언급을 안 하더라. 굳이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아도 수주가 되니까 자만심이 생긴 것 같다.
한국 조선사들은 다들 단기 대응만 하는 것 같다. 장기 전략이 없는 것 같아 우려가 굉장히 크다. 환경규제 강화는 우리 조선업에겐 기회다. 중국 일본과의 격차를 벌리려면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1등인 우리나라가 움직여야 선주들도 반응할 것이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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