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30 16:00

더 세월(5)

저자 성용경
4. 긴박한 순간들(2)


#3층 식당 오전 8시 55분

9반 K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일반승객들보다 학생들이 먼저 식사했다. 배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식탁 위의 식기가 떨어지자 친구들이 소리쳤다.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은 쾅 하는 굉음을 들었다.

#4층 객실통로 오전 8시 55분

아래층에 있던 선원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왜 저렇게 뛰어갈까. 조금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바다를 보았다. 바다에는 컨테이너와 쓰레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4반 P군은 휴대폰으로 객실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 배가 기울었다.

- 죽기 싫다

- 동생은 수련회에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 샘은 괜찮으시대?

- 침몰하면 안 돼.

- 아, 기울어졌어.

- 야, 나 좀 살려줘.

- 진짜 침수되는 거 아냐?

- 쏠리는 거 장난 아니야. 자꾸 이쪽으로 쏠려. 못 움직여.

-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침몰해?

그 사이 안내방송에서는 반복해서 “움직이지 말라”고 되풀이했다. 선실 안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예”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구명조끼를 입으면서도 대화를 그치지 않았다.

- 갑판 위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 선생님들은 다 괜찮은 건가 

선생님을 걱정하기도 했다. 선교에서는 선박직원들이 제주VTS로 계속 구조 요청을 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학생들은 천진난만하다.

- 아까보다 괜찮아진 것 같다.(서로 다독거린다)

- 안정되고 있다.

- 응, 아까보다 괜찮아진 것 같아.

- 배가 왜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어진 거야?

- 이거 뉴스에 뜨는 거 아니야?

- 나(침대에서) 진짜 내려가고 싶거든. 여기 무섭거든. (동영상이 찍힌 객실은 2층 침대 4개가 있다)

- 페이스북에 올리면 재밌겠다.

이때 안내방송이 들렸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4반 P군은 두 번째 동영상을 찍었다. 9시부터 9분간의 분량이다. 한 학생의 농담 섞인 말도 들어 있다.

- 사랑한다.

- 야, 방문 못 열어. 안에서만 열 수 있어. 밖에서는 못 열어 아예.

- 누구 구명조끼 좀 꺼내와 봐.

- 절대 움직이지 말래.

이 시각 선교에서 1항사 K는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사고 상황을 보고했다. 한편 4층 객실에서는 안전을 염려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진짜.

- 진짜 침몰해?

- 구명조끼 던져.

- 으아, 구명조끼 던지래.

- 야, 구명조끼 입어, 너도.

한 학생이 구명조끼 두 개를 복도 쪽으로 던졌다.

아이들의 대화.

- 이제 없어.

- 여기 구명조끼 한 개 없어요?

- 내 것 입어.

- 너는?

- 나? 가져와야지.

- 갔다 와. 

- 선장은 뭐하길래.

- 뭐가 걸린 것 같아. 진짜 타이타닉 된 거 같아. (타이타닉 주제곡 흥얼거린다)

- 제발. 살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 사랑해요.

- (교사로 추정)옷 다 입었어? 그쪽 다 입었는지 확인해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

- 예. 다 입었어요.

- 침몰 안 할 거야. 안 해야만 돼.

-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아들이 고합니다. 이번 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엄마, 아빠 사랑해요. 동생아 너만은 절대 수학여행 가지 마. 오빠처럼 되기 싫으면 알았지? 제발 살려줘, 살려줘. 마지막이야. 나 지금 기울어진 거 보이지? 고마워.

- 갑판에 있던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 밖으로 떨어진 거 아니야?

- 갑판에 창문도 없잖아. 그러니까 더 위험하다는 거지.

안내방송이 들렸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예‘ 라는 대답이 들렸다. 

오전 9시 7분경 세월호는 진도VTS와 교신해 “침몰 중이니 해경 빨리 좀 보내달라”고 구조를 요청한 상태다. 선내 안내방송은 여전히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를 반복했다. 선내는 조금씩 불안감이 감돌았다. 

- 아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 구명조끼 입으란 거는 침몰되고 있다는 소리 아냐?

- 선생님들도 다 괜찮은 건가?

- 카톡 왔어. 샘한테서. 

- 뭐래?

- 애들 괜찮냐고.

- 선생님도 (괜찮은지)여쭤봐.

- 선생님 지금 카톡 안 보고 계셔.

동영상은 9시 10분경 끊겼다. 이로부터 약 25분 뒤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조타수 등 선원 15명은 승객을 남겨둔 채 배에서 전원 탈출했다. 배는 조금 지나자 휙 기울었다.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면 30분 이내 승객 전원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고, 구출한 해경은 전부 1계급 특진도 하고, 선원들은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을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수수께끼답지도 않은데 풀리지 않는다. ‘긴박한 순간들’은 계속된다.

#3층 객실 오전 9시 5분

갑자기 배가 요동치면서 왼쪽으로 급격히 기울자 승객들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단체 회갑여행을 가는 어른들도 휘청, 단체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휘청했다. 객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꿈쩍도 안했다. 배가 기울면서 여닫이문에 중력이 가해져 문을 잡아당겨서 열기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 어른 두 명이 몸을 그 틈으로 밀어 넣고 3층 로비 쪽으로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은 3층 베란다 쪽으로 빠져나가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라는 방송을 들으며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내에는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침몰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승객 L은 언제든지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앞서 베란다로 나가던 한 승객이 편의점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문에 부딪혔다. 피를 흘리는 게 보였다.

“가만히 있으세요.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스피커에서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대부분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머물렀다. 물이 들어오는데도 어떻게 대피하라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 구명조끼를 나눠주는 승무원이 있었다.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에는 카톡을 통한 메시지가 오갔다. 교감은 카톡을 통해 ‘자리 지키고 있어라. 선생님들은 카톡 통해 학생들에게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38명의 제자가 있는 D담임선생님은 단체 카톡에 얼른 말을 걸었다.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 있어. 다들 괜찮니?” 

제자들은 이름을 각자 말하면서 괜찮다고 신호했다. 학생들은 되레 선생님을 걱정했다.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구명조끼 입으셨나요?” 

단체 카톡은 9시 45분 이후로는 아무 얘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 살아서 보자.

- 이따 만나자.

- 부디.

- 제발

서로에게 보낸 간절한 문자만이 이들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무서워 빨리 와.”

‘구명동의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구명동의, 구명복, 라이프재킷, 구명조끼는 다 같은 뜻인데도 사람들은 자기 입에 익숙한 대로 말한다. 객실의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나눠 입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걱정했다.

- 구명조끼 입어 얘들아.

- 지퍼가 안 잠겨.

- 나도 지퍼가 고장났어.

- 밖에 애들 구명조끼 안 입었어.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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