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벌크선 시황이 중소형선 중심으로 회복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산업진흥센터 이석주 과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벌크선 시황 전망 세미나에서 “중소형선의 공급 증가 압력 완화와 신흥 경제권의 급속한 석탄 수요 증가, 주요 농업국의 곡물 생산량이 시황에 긍정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 과장은 클락슨 자료를 인용해 올해 벌크선대는 8억6000만t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에 비해 3% 정도 증가한 수치다. 증가율로만 놓고 보면 지난해에 비해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관측됐다. 중소형선 둔화가 배경이다.
3만t(재화중량톤)급 안팎의 핸디사이즈는 지난해 2.5%에서 올해 1.5%, 5만t급 안팎의 수프라막스 선대 증가율은 2.4%에서 2.2%로 각각 증가율이 하락한다는 관측이다. 반면 대형선 증가율은 다소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6%였던 파나막스선(7만t급 안팎)은 올해 3.4%, 지난해 3.4%였던 케이프사이즈선박(18만t급 안팎)은 올해 3.6%로 각각 증가율이 상승할 것으로 점쳐졌다.
발주량을 놓고 봤을 때도 대형선이 중소형선에 비해 공급 증가 압력이 높다. 벌크선 신조 발주량은 2010년과 2013년에 1억t을 넘어선 뒤 시황 폭락으로 크게 위축됐다.
2010년에 파나막스가 신조시장을 주도했다면 2013년엔 친환경 선박 발주 붐을 배경으로 수프라막스와 케이프사이즈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6만2000t급 울트라막스 선박은 케이프와 맞먹는 규모로 발주되며 공급 증가를 부채질했다. 이들 신조선들이 대거 인도되며 시장을 요동치게 한 뒤 신조 발주는 2016년까지 급감했다.
하지만 2017년과 2018년 2년간 광산프로젝트와 연계한 초대형 광탄선(VLOC) 발주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케이프 시장의 공급 상승이 첨예화되는 모습이다. 현존 선대 대비 발주잔량 비율을 보면 수프라막스와 핸디는 각각 7% 4%에 그치는 반면 케이프사이즈와 파나막스는 각각 15% 10%로, 두 자릿수 점유율을 차지한다.
수요공급 증가율 둔화…핸디벌크선 공급 둔화폭 커
벌크선 수요는 지난해 2.9%에서 올해 2.5%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케이프사이즈의 주요 화물인 철광석 물동량은 올해 14억8100만t을 기록한다는 관측이다. 지난해의 14억7300만t에 견줘 대동소이한 수치다.
다만 발레 광산댐 붕괴 여파로 브라질산 철광석이 지난해 388만t에서 올해 370만t으로 5% 감소하는 반면 호주산 철광석은 836만t에서 863만t으로 3% 늘어나면서 해운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톤-마일 기준 물동량은 감소세를 띨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호주보다 운송거리가 3배 이상 먼 브라질은 톤-마일 기준으로 전 세계 철광석 물동량의 45%를 담당했다.
올해 발레의 철광석 물동량 감소폭은 2000만~3000만t으로 추산됐다. 지난달 초 댐 붕괴 사고로 연간 8000만t 정도의 철광석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우려가 다소 잦아든 모습이다.
이 과장은 지난달 19일 브라질 법원이 연산 3000만t으로 최대 규모인 브루쿠투(Brucutu) 광산의 운영 재개를 명령함으로써 물동량 감소 압력이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브루쿠투 광산댐은 지난 1월 붕괴된 페이장광산과는 달리 상류형(upstream)이 아닌 하류형(downstream) 공법으로 지어졌음에도 브라질 정부는 지난 2월9일 안전을 우려해 폐쇄조치 했다. 하지만 현지 법원은 폐쇄 조치 한 달여 만에 발레의 손을 들어줬다.
새롭게 개장한 브라질 북부 S11D광산의 2000만t 증산 프로젝트도 시장에 긍정적이란 해석이다. 반면 중국의 조강생산량 중 고철을 원료로 이용하는 전기로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는 점은 철광석 물동량 성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중대형 선박으로 주로 수송되는 석탄 물동량은 올해 2% 늘어난 12억6400만t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수입지역 기준으로 유럽 감소, 중국 정체, 신흥국 증가의 패턴을 보일 거란 분석이다.
유럽은 정책적인 석탄발전 설비 축소, 중국은 자국 석탄 생산량 증가와 무역 분쟁 여파로 각각 석탄 수입을 줄이는 모습이다. 반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4개국의 석탄 수입량 합계는 10% 성장하며 1억2000만t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 4개국은 1억5000만t 정도인 우리나라를 조만간 제칠 것으로 관측된다.
곡물(대두 포함) 수송량은 올해 4% 늘어난 5억t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이 과장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중국이 남미산 대두 수입을 늘리면서 남미 전체 곡물 수출량이 500만t 가량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흑해 지역 곡물 생산과 수출량이 급증하는 반면 가뭄에 시달리는 호주의 곡물생산은 줄어드는 점은 톤-마일 측면에서 해운시장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스크러버 설치로 공급감소 효과 예상
이 과장은 올해 벌크선 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미중 무역분쟁과 선박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들었다. 미중 무역분쟁이 순조롭게 해소될 경우 예상보다 빠른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장기화할 경우 곡물 거래 등에 영향을 미쳐 시장 상승 동력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또 환경 규제를 앞두고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장치) 장착을 위해 수리조선소에 입거하는 선박이 늘어날 경우 선복 공급 감소 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시황 전망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대한해운 김기완 대형선팀장은 “케이프사이즈의 평균 정기용선료 손익분기점이 일일 1만5000달러지만 현재는 5000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발레 댐 붕괴 사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선사들은 자사의 스크러버 설치 계획도 전했다. 폴라리스쉬핑 박이수 이사는 포스코 계약에 운항하는 선박은 스크러버를 설치하기로 화주 측과 계약했고 발레 철광석 운송에 투입될 32만5000t급 신조선 18척도 기본적으로 스크러버를 설치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림코퍼레이션 오윤석 상무는 “가스선과 화학제품선(케미컬선) 석유제품선(CPP선) 같은 소형선은 경제성이 낮게 나와서 설치를 안하기로 했고 파나막스벌크선 5척은 스크러버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30억원 안팎의 대형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데다 일부 국가에서 개방형 스크러버를 금지하는 추세라 아직까지 설치시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락슨 진기봉 상무는 “스크러버는 대형선 위주로 설치되고 있다. 초대형유조선(VLCC)는 올해 25% 내년에 35%가 장착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말부터 내후년까지 스크러버 설치가 증가하다가 그 이후엔 고유황유와 저유황유 가격차가 작아지면서 장착률도 함께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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