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5 14:14

근로기준법 개정 쓰나미…항만물류업계 인력배치 ‘골머리’

9월부터 근로자 11시간 의무휴식…벌크부두 인력충원 고심
운송업, 늘어나는 인건비에 근로시간 규제겹쳐 규모축소 고려
법적용 늦는 물류창고 분위기 ‘잠잠’…임금인상 더 큰 문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강력한 노동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항만물류업계가 인력배치 문제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물류업계는 벌크부두의 하역인력, 화물 운송인력, 물류창고의 화물재작업 인력을 두고 충원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 2월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및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크게 6가지로 ▲주당(7일 기준) 실근로시간 한도 68시간서 52시간으로 단축 ▲30인 미만 사업장 한시적 특별연장근로 허용 ▲휴일근로 중복할증 불인정 ▲공휴일 유급휴일화 ▲근로시간 특례업종 26개서 5개로 축소 ▲연소근로자 근로시간 한도 축소 등이다.

육상·수상·항공운송업과 기타 운송관련 서비스업은 업계 특성상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을 특례로 인정받았다. 사측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진행하면 주 12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나 휴게시간은 변경이 가능하다.

항만업계가 고심 중인 조항은 ‘최소연속휴식시간’이다. 특례업종이 유지되는 업종은 근로시간 단축 규제에서 자유로운 대신 오는 9월부터 최소연속휴식시간을 11시간 의무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가 근로를 마친 시점부터 다음 근로일까지 연속으로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하는 것으로, 개정된 근로기준법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도 명시돼 있다.

가령 새벽 1시에 퇴근하면 정오까지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는 70~80시간 근무에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다음 근로일까지 11시간 의무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이 제도는 노사 합의사항이 아닌 사용자 의무사항으로, 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기로 합의했다면 이 조항을 반드시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근로기준법 제110조에 따라 사업자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담해야 한다.

물론 노사가 특례업종 적용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다. 근로자 측이 특례업종 적용을 거부하면 당장 근로시간 단축안을 따라야 하는 다른 산업계와 같은 규제를 적용받아, 300인 이상의 기업은 오는 7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기업은 2020년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의 기업은 2021년 7월부터 개편안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장 인력도 2배 가까이 추가 고용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들은 52시간만 근로하면 추가수당을 받지 못하다보니 특례업종 적용을 선호하는 측과 아닌 측으로 나뉘고 있다. 업계는 4~5월부터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벌크부두, 현장감독 인력배치 어쩌나

벌크부두를 운영하는 항만업계는 이번 개편안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근무형태는 교대근무자와 상주하면서 작업이 있을 때만 연장근로를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교대근무자는 대부분 2조(주간·야간)2교대로, 12시간을 근무하고 있어 11시간 의무휴식에 큰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상주근무자는 부정기선 특성상 선박이 많이 몰리면 작업량이 많고, 선박이 없으면 유휴인력으로 남아 추가 인력을 고용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상주근무 인력 중 핵심으로 꼽히는 현장감독(포맨)의 추가고용이 문제다. 치프 메인 서브로 나뉘는 포맨 중 메인포맨은 11시간 휴식이 적용되면 2교대로 움직여야 한다.

현재 벌크부두에서 작업 중인 포맨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수일 동안 작업하고 있으며 메인포맨은 한 명만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명의 메인포맨이 작업 선박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업하는 것이다. 대신 기업 측이 연장근로수당과 야근수당을 보상책으로 지급하고 있다.

전문직인 포맨의 특성상 파견근로나 도급제 도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계약직은 2년 이상 고용할 수 없고, 도급제는 모든 업무권한을 근로자에게 전담하다보니 기업 측이 업무를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는 추가 근무에 따른 수당을 주고 싶어도 새롭게 신설된 의무휴식시간 조항으로 인해 납기일을 못 지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항만업계의 관심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1근무일’에 대한 해석이다. 하역업의 특성상 업무를 시작하는 ‘시업’과 마치는 ‘종업’의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노사의 단체협약상 채택한 시업-종업을 기준으로 하는지, 아니면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9시 출근 6시 퇴근으로 보는 게 맞는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업계는 1근무일을 하역작업을 시작한 시점부터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는 하역작업이 휴게시간을 포함해 2박3일간 이뤄지면 2박3일이 1근무일로 적용되고 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1근무일을 기존대로 인정하면 11시간 의무휴식을 지킬 필요가 없어 인력을 추가로 고용할 필요는 없어진다.

한 업체 관계자는 “2교대로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경우도 고민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선박이 들어오면 2교대가 괜찮지만 부정기선은 작업할 때와 안 할 때의 업무량 차이가 극명해 기업으로선 추가고용이 부담스럽다”며 “기업이 근로자를 추가 고용하면 근로자당 업무량이 줄어들어 추가수당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과연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일부 업계는 특례업종이 한시적으로 적용될 것을 고려해 52시간만 근무하게 될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 추가 인력 투입 여부, 추가인력 채용에 따른 수당 감소 등이 노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운송서비스, 자차비율 줄이고 용차 늘릴 것

하역과 함께 이뤄지는 운송업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장에서는 새벽에 하역작업을 마치고 운송이 이뤄지고 있다. 11시간 의무휴식에도 화주에게 운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다 보니 결국 인력을 충원하거나 용차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항만물류업계는 자차비율을 늘리기보다 용차비율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매년 인건비와 유류비가 오르고 있지만 화주에게 제대로 된 운송료를 못 받고 있어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운송업무는 대부분 도로가 한적한 새벽에 출발해 화주의 공장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무휴식을 적용하면 도로지체가 심각한 시간대에 기사들이 움직여야 한다”며 “제시간에 운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우리로선 자차서비스를 대거 줄이고 운송만 전담하는 용차업계에 물량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의무휴식에 따른 근로환경 변화를 화주들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따라 촉박한 일정에 작업을 마치려면 인력을 추가 투입해야 하고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 하지만 작업비용이 늘어나도 화주들이 제값에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드물다. 화주들로선 작업일정을 늘리거나 추가비용 지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항만물류업계는 정부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탄력근무를 2주일 동안 할 수 있으며 노사가 서면합의하면 최대 3개월까지 적용할 수 있다. 특정 주는 52시간을 초과하더라도 다른 주는 일을 적게 하는 구조로 주당 평균 52시간만 지키면 된다.

현재 정부는 장시간 근로를 문제 삼아 탄력근무제 도입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제시한 상황이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많다는 점도 근로시간 단축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항만물류업계를 포함한 경제계는 탄력근무 시간을 해외 선진국처럼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탄력근무를 도입하면 기존에 받는 수당이 줄어들 수도 있어 거부하고 있다.

컨테이너부두·물류창고, 인건비 급증이 더 큰 문제

컨테이너부두는 벌크부두와 달리 교대 근무가 잘 이뤄지고 있어 의무 휴식시간 11시간 규제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대부분의 컨테이너부두가 상당부분 자동화돼 있고, 컨테이너가 규격화돼 있다 보니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벌크화물 작업과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물류창고가 속하는 보관 및 창고업은 이번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지만, 주당 실근로시간 한도는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다.

개정안 부칙조항에 따라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2019년 7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각각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6월 말까지 현행대로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으며 그해 7월부터 2022년 12월31일까지는 노사합의에 따라 최대 60시간만 근무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창고업계는 잠잠한 모습이다. 부산신항 배후단지에 창고를 갖춘 중소업계의 정규직 창고인력은 1만평 기준 평균 10명대로, 용역인력을 합치면 30명이 대부분이다.

업계는 당장 근로시간 단축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안도하면서도, 향후 업무환경을 고민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야근하거나 특근할 경우가 많다보니 향후 주당 근로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일요일에는 작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들 업계에게는 오히려 인건비 상승이 큰 고민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본급을 적게 주는 대신 상여금 비중을 높여서 급여를 지급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정규직 근로자도 최저임금 기준에 저촉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앞으로는 기본급을 많이 올리고 상여금을 줄이는 방식으로 맞춰나간다는 계획이다.

한 터미널업체 관계자는 “현장근로자는 현재 휴식시간을 포함해 12시간을 일하고 있다. 시간당 급여가 대통령 공약대로 단계적으로 1만원까지 오르게 되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인건비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매년 급증하는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버거운데 창고 운영에 따른 고정비와 운송비까지 비용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물류창고가 너무 많다보니 화주들은 제값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창고가 없으면 물류창고를 갖추기보다 창고를 가진 업체에 물건을 맡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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