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8 09:13

기고/ 항만국 통제와 선박안전법

변호사가 된 마도로스의 세상이야기(7)
성우린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Fire in the galley(주방에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미국 휴스턴항에서 선박의 검사를 위해 승선하였던 미국 해안경비대의 검사관이 갑자기 당시 선박의 3등 항해사였던 필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평소 선원들이 소화 훈련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점검이었다. 필자는 평소에 했던 소화훈련의 시나리오대로 모든 층에 있는 선원들이 듣도록 “Fire(불이야)!”라는 소리를 지르며 조타실로 올라가 선내에 전체 방송을 했다.

그러자 그 검사관은 자기 쪽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초기진화를 하지 않고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을 지적하였다. 그 때부터 선내의 소화기 및 소화전의 사용부터 소화복 착용에 이르기까지 강도 높은 훈련이 반복되었다. 아침 10시에 시작된 소화훈련 점검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미국 해안경비대의 선박검사관들은 선박의 안전관리 담당자인 필자를 불러 선박의 각종 안전장비의 유효기간을 점검하고 작동여부를 확인했다. 미국에 입항하기 전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를 한 덕분인지 이에 대한 지적은 받지 않았다.

당시 미국 검사관들의 엄격한 검사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힘든 하루를 보냈고, 그들이 도대체 어떠한 법적 근거로 대한민국의 선박에 이와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바로 ‘항만국 통제(Port State Control)’라는 제도이다. 선박의 기국(Flag State)이 아닌 항만국(Port State)이 직접 외국선박에 안전 등과 관련하여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수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항만국의 통제가 가능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선박은 기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되어 외국항에 기항하였을 때에도 항만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보아, 선박이 각종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책임이 기국에만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선복량과 물동량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신생 해운국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중 일부 국가들은 실질적으로 그러한 기국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국가들은 기준미달선(Sub-Standard Vessel)을 양산시키고 그 결과로서 기준미달선이 연루된 대규모의 해양사고를 일으키게 됨으로써 연안국 또는 항만국의 해양안전과 해양환경에 엄청난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안전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기준미달선 등에 대하여 자국 항만 또는 수역 내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선박이 외국항에 기항하였을 때 해당 항만국의 검사관이 승선하여 그 선박이 국제협약에 따라 적합하게 건조, 정비 및 운용되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결함사항(Deficiency)이 발견된 선박에 대하여 억류(Detention) 등의 제제조치를 가하게 되었고 이를 ‘항만국 통제’라 한다.

한편, 우리나라 선박안전법 제68조 제1항에서도 “해양수산부장관은 외국선박의 구조·설비·화물운송방법(‘화물운송방법’ 관련하여 선박안전법 개정으로 2018. 5. 1. 시행 예정) 및 선원의 선박운항지식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선박안전에 관한 국제협약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인 항만국 통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동법 제69조 제1항에서 “선박소유자는 외국 항만당국의 항만국 통제에 의하여 선박의 결함이 지적되지 아니하도록 관련되는 국제협약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선박안전법에서 이와 같이 항만국 통제를 법률로서 규정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입법이라고 판단된다. 항만국에서 외국 선박의 억류 등 제재조치를 가하는 경우 외국 선사나 화주 등의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선사나 화주 등에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양사고는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선박안전법에 따라 국내항에 기항하는 외국 선박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항만국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의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경험을 쌓았다. 하선한 이후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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