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상운송시장이 지난해 12월18일부터 전자식운행기록계(ELD) 장치 의무 설치에 나섰다. 현지 육상운송기사들은 값비싼 ELD 설치비용을 운송료에 대거 반영하면서 피해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국내 주요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은 내륙운송료가 크게 오르면서 물류비용 증가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해상운임이 지난해보다 다소 낮아지면서 전체적인 물류비용은 증가하지 않았다고 안도했다.
해운물류업계에 따르면 ELD는 차량의 운행시간 거리 위치정보 등을 기록하는 일종의 디지털 장부로, 지난 2015년 12월 차량운송안전국(FMCSA)이 모든 상용차에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법으로 만들었다. FMCSA의 방침에 따라 미국 내에서 운행되는 모든 상용차는 지난해 12월부터 기존 종이장부 대신 ELD를 의무적으로 설치했다. 과거 기사들은 종이장부에 업무내용을 수기했지만 이젠 ELD가 기사들의 업무량(근무시간)을 자동 반영한다. 단말기는 FMCSA가 공인한 기종 내에서 선택이 가능하며 ELD와 유사한 성격의 단말기를 장착한 차량은 기기 업그레이드를 위한 2년간의 추가 유예기간이 적용될 예정이다.
FMCSA와 미국 교통부는 이번 ELD 장치 의무화로 운전자의 과도한 업무를 줄일 수 있게 됐고, 교통법규 위반을 디지털데이터 기반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특히 ELD 장치 효과로 대형 상용차 관련 교통사고 사망자는 연평균 26명, 부상자는 562명씩 각각 감소할 거란 전망을 내놨다. 또 ELD로 종이장부를 대체하면 사업자들의 번거로운 서류작업이 간소화돼 연간 10억달러(한화 약 1조712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거로 기대하고 있다.
美 운송업계, 비용부담에 반발
하지만 현지 육상운송기사들은 이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ELD 장치 의무화가 모든 운송 사업자와 기사에게 설치비용 부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운송사는 차량 한 대당 ELD 장착과 유지관리에 연간 최소 495달러(약 53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영세한 운송사들은 이 정책이 실효성 없이 비용만 늘리는 조치라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ELD는 차량의 물리적 운행 데이터만 자동으로 기록할 뿐, 운전기사의 근무시간 집계는 사람이 직접 입력해야 한다. 중소 육상운송업계는 화주가 근무시간의 축소 입력을 강제할 수도 있어 단순 ELD 의무화로 운전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건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300만명의 트럭 기사들은 일일 근로시간이 14시간으로 조정됐으며, 실제 차량운송시간은 11시간에 묶이게 됐다. 기사들은 나머지 남는 3시간을 터미널 하역작업과 휴식에 써야 한다. 근무시간이 14시간을 초과하는 순간 그에 따른 페널티가 발생하다보니, 기사들이 운송도중 길가에 차를 세워야 할 수도 있다. 기사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선 터미널이 수송할 컨테이너를 미리 하역해야 해 물류비 추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 해운전문지 JOC는 ELD 장치 의무화로 올해 육상운송시장 공급이 2~5%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화주에 끼칠 영향은 상당할 거라고 분석했다. JOC는 여론조사 결과 운송사의 53.5% 중 33.7%만 규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머지 46.5%는 규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11%는 FMCSA의 규제안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LD 장치를 단속할 주(州) 단속관들은 ELD를 장착하지 않은 기사들을 위해 4월1일까지 운행중지 조치를 연기하는 대신 ‘ELD를 장착하지 않은 차량’에 일종의 경고장을 발행할 예정이다.
▲전자식운행기록계(ELD) 장치 의무화가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됐다. ELD는 차량의 운송거리와 시간을 자동 인식해 종이장부를 대체하게 됐다. |
육상운송료 최대 20% 인상
미국으로 화물을 수송하고 있는 국내 주요 포워더들은 육상운송료가 최근 크게 오르면서 비용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ELD 설치비용도 거리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운송거리가 약 322km(200마일) 이하면 100~150달러(약 11만~16만원), 그 이상이면 300~400달러(약 32만~43만원)의 비용이 부과되고 있다.
장거리 수송에 활용되는 팀트럭킹(team trucking) 요율은 LA-애틀랜타 기준 약 1400달러(약 150만원) 인상됐다. 팀트럭킹은 2~3명의 기사가 운전을 교대하며 화물을 운송하는 구조다. 순수 운송료도 편도에 10~30달러(약 1만~3만2000원)가 추가 반영됐다. 운송거리가 멀수록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런 비용 인상분을 국내 수출 실화주들이 대거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으로 자동차부품(CKD)을 수출하는 실화주들은 관세지급인도조건(DDP)의 무역조건을 따르고 있다. DDP는 수입국 내 지정된 목적지까지 물품을 도착시키는 조건으로 수출 실화주가 수입국 창고까지 수송하는 데 발생하는 모든 물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수출물류시장은 자동차부품 외에도 많은 수출화물이 DDP 조건을 따르고 있어 내륙운송료가 인상될수록 물류비용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서배너항과 현대차 공장이 위치한 앨라배마주까지 거리가 편도 280마일(평균 5~6시간 소요)에 달해 비용부담이 상당할 전망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서배너-앨라배마 구간의 육상운송요율은 15~20%까지 인상될 거로 보여 가장 비용 증가분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년 1월1일 선사와 맺는 연간계약운임(SC)이 지난해보다 크게 하락하면서 전체적인 물류비용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상운송료 인상의 부담을 선사와 포워더가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자동차부품 해상 수송운임은 지난해 대비 약 30% 가까이 떨어졌다. 내륙운송료가 크게 올라도 약 5~10%는 물류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내륙운송료가 크게 올랐지만 납기일과 공급망 관리에 소홀할 수 없어 수출물량은 줄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미국 정부가 인권보호라는 명분으로 트럭기사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터미널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빼내는 작업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8~10시간밖에 남지 않아 공컨테이너도 반납할 수 없게 됐다”며 “실제 기사들이 매출부진에 못 이겨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트럭이라도 나와야하는 것 아니냐”며 ELD 설치를 비판했다.
다만 일반 컨테이너화물이나 냉동냉장(리퍼)화물은 자동차부품과 달리 선사로부터 운임할인을 받지 못해 내륙운송료 인상분이 물류비에 고스란히 반영될 거란 전망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화물도 물류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수출이 DDP 조건으로 거래되는 것처럼 한국 수입화물은 공장인도조건(EXW)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내륙운송료 인상분을 수입실화주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EXW는 수입실화주가 현지 수출·수입통관 등 모든 물류비용을 책임지고 화물을 인도받는 조건이다.
미국 육송시장은 근로시간 제한에 공급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본격 성수기에 돌입하면 공급부족에 따른 물류비용 증가가 불가피할 거란 전망들이 나온다.
현지 업계는 공급부족으로 육상 계약운송요율이 6~10% 인상될 거로 보고 있으며 일각에선 최대 20%까지 운송료가 오를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트럭스톱닷컴의 타인 보렌 국장은 “다가오는 성수기에 육상운송료가 최대 2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학계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향후 육상운송시장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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