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1 09:22

한국 조선 ‘일감절벽’에 장기휴업 현실화

기자재업계·소형조선 등 협력업체 줄도산 우려

일감 부족 여파로 국내 조선사들의 독(Dock) 가동 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극심한 수주난으로 일감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생산 중단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온 것.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감부족에 두 손을 들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된 독 가동 중단은 대형조선소까지 번졌다.

최근 현대미포조선은 35만t급 건조능력의 1개 선거(船渠)를 12월까지 3개월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현대미포는 지난해 신규 수주량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탓에 4개 중 1개의 뱃도랑에 임시휴업 결정을 내렸다. 이 조선사의 수주잔량은 200만CGT(수정환산톤수)대가 붕괴됐다. 7월 말 기준 139만9천CGT(65척)의 수주잔량을 기록, 전년 대비 30.8%나 급감했다.

떨어진 가동률로 고정비를 줄이고자 대형조선사들도 가동 중단에 나섰다. 총 8개의 독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지난 7월 선박 진수를 끝으로 플로팅(해상) 독을 폐쇄했다. 6월 육상 1개 독 가동 중단에 이은 추가 조치다. 삼성중공업의 수주잔량은 427만4천CGT(85척)에서 333만1천CGT(69척)로 1년새 100만CGT에 가까운 일감이 빠져나갔다.

현대중공업 역시 군산조선소와 울산조선소에서 각각 1기 2기의 독 가동을 중단했다. 총 11기 중 3기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선거 가동 중단은 1972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지난해 2개의 독을 매각한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하반기 1~2개의 독을 추가로 정리할 계획이다.

독 재가동 당분간 없어…장기휴업 전망

나머지 조선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주 잔량이 대형조선사에 비해 적은 까닭에 작업장을 앞서 문 닫은 조선사들이 상당하다. 대부분 중소조선사들은 1~2개의 뱃도랑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 호황 당시 부푼 꿈을 안고 시설을 늘렸던 조선사들은 현재 제구실을 하지 못한 야드를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만 짓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현재 5개 중 4개의 독이 휴업 상태다. 지난 7월까지 3개의 독이 운영됐지만 현재 1개의 독에서만 건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1년 반 동안 수주가 전무했던 탓에 가동 중단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개 독만으로 현재 확보한 일감 소화가 가능한 셈이다.

STX조선해양은 채권단의 구조조정 방안에 따라 중소 특화조선사로 몸집을 줄여나가고 있다. 대형조선사들과 수주경쟁을 해왔던 해양플랜트, 중대형컨테이너선, LNG선 등의 수주를 중단하며 과잉공급과 저가수주를 떨쳐내겠다는 전략이다. 조선소 측은 “현재 중단된 독이 있지만 조선시황이 살아나 수주물량이 확보된다면 재가동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선조선이 운영 중인 독은 풀가동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 내년까지 일감을 확보한 덕에 2개의 독에서 건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대선조선은 피더 컨테이선과 화학제품운반선 등의 일감을 주로 확보해둔 상태다. 타 조선사와 달리 큰 처리능력의 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애초에 독을 늘려놓지 않았던 까닭에 고정비 지출이 타 조선사에 비해 덜한 편이다. 대선조선 관계자는 “현재 RG발급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고 일감도 어느 정도 확보해둬 시설들이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조선은 현재 1개의 독을 통해 회사의 살림이 꾸려지고 있다. 요근래 탱크선을 잇따라 수주한 덕에 2년치 일감을 확보했다. 남은 하반기에도 추가 건조계약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 조선사는 조선업 호황 당시 3기의 독으로 선박 건조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모기업 대주그룹의 경영악화로 2008년 착공한 건조설비 공사가 이듬해 중단됐다. 공사가 중단되자 3번째 독 또한 운영계획에서 빠졌다.

대한조선은 우선 당장은 한 기의 공간에서만 건조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성동조선해양도 3기 중 2기의 독이 가동을 멈춘 상태다. 성동조선해양은 올해 현대산업개발에 독 1기를 약 1100억원에 매각했다. 성동조선해양은 약 38만2천CGT의 일감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내실을 다지는 차원에서 재가동에 섣불리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시황이 올해보다는 나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지만 한 번 멈췄던 독을 언제 가동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휴업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조선사들은 수주계약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설비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최근 여러 군데서 건조문의가 들어오고 있지만 강재 원자재의 가격 상승 등 외부적인 변수로 계약이 쉽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저가수주 등을 피하고 무리한 수주는 가급적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회사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감 부족으로 조선사들이 시설 규모를 축소하자 하청(협력) 기업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조선기자재업계와 소형조선사들이 울상을 짓는 이유다. 한 조선소가 3개월 작업을 중단하면 협력사들은 그 이상을 쉬어야 해 피해가 크다. 협력사들은 현재 강제로 장기간 무급휴가를 보내며 생존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금력이 대형기업과 비교해 떨어지기 때문에 먹거리가 없으면 업종 전환이라도 해야 할 노릇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블록을 제작해 대형조선사에 공급하고 있는데 쉬고 있는 야드가 늘고 있어 일감이 줄어들까봐 앞날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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