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결국 파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파산부(정준영 수석부장판사)는 17일 한진해운 파산을 선고했다. 법원은 5월1일까지 채권 신고를 받은 뒤 한 달 뒤인 6월1일 오후 2시 서울법원종합청사 3별관 제1호 법정에서 채권자 집회를 열 예정이다. 파산관재인으로 법무법인 아주 김진한 대표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로써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기업이념으로 설립된 국내 대표 선사는 40년 해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한해운공사까지 포함할 경우 68년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8월 말 법정관리 신청 당시 세계 7위 선사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과거엔 한 때 빅3 선사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1998년 1월1일 발표된 세계 컨테이너선사 선복량 집계에서 세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1위는 덴마크 머스크라인이었고 2위는 대만의 에버그린이었다. 한진해운은 독일 세나토라인을 인수하며 1996년 9위에서 3위로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세계 정기선 시장은 이후 유럽선사들의 각축장으로 서서히 변모해갔다. 머스크라인이 미국 시랜드 등을 인수하며 1998년 28만TEU에서 2000년 60만TEU로 2배 이상 선단을 늘리는 사이 한진해운 선대는 같은 기간 23만TEU에서 24만TEU로 1만여TEU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2000년대 후반 머스크라인이 세계 최초로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선을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스케일 경쟁을 시작하면서 격차는 더욱 커졌다. 머스크라인은 2006년 8월12일 1만5000TEU급 <엠마머스크>를 인도받으며 극초대형선 경쟁에 불을 지폈다.
스위스 MSC와 프랑스 CMA CGM도 비약적인 발전을 일궜다. CMA CGM이 델마스 등 기업 인수 방식으로 외형 성장을 꾀했다면 MSC는 순수한 선대 투자를 통해 점유율을 늘렸다.
유럽선사, 과감한 투자로 한진해운 추월
2000년과 2007년 사이 선사들의 점유율 변화를 보면 정기선 시장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머스크라인은 2000년 12%에서 7년 뒤 16.8%로 점유율을 늘리며 1위를 공고히 했다.
MSC는 2000년 4.4%의 점유율로 한진해운에 이어 5위를 기록하다 2007년엔 9.8%를 차지하며 세계 2위 선사로 도약했다. CMA CGM은 2000년에 시장점유율이 12번째인 2.4%에 불과했지만 7년 후 6.5%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3위로 올라섰다. 2007년 세 선사의 시장점유율은 33%에 달했다.
반면 아시아권 선사들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습을 띠었다. 2000년에 세계 2위였던 에버그린은 7년이 지난 뒤 4위로 하락했다. 점유율도 6.2%에서 5.2%로 줄어들었다.
한진해운은 2000년 4위에서 2007년 8위로 추락했다. 점유율은 4.8%에서 3.3%로 쪼그라들었다. 2000년 15위였던 현대상선은 2007년 18위로 내려 앉았다. 시장점유율도 2%에서 1.6%로 약화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빅3 체제는 더욱 굳어지는 양상이다. 특히 이들 세 선사가 초대형선 도입을 주도하면서 경쟁선사들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2011년 이후 이들 선사의 점유율은 35%를 웃돌고 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난해 9월엔 39.4%를 차지했다.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의 40%를 세 선사가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한진해운은 같은 시기 3%의 점유율로 세계 7위를 기록 중이었다. 9년 전에 비해 점유율은 하락했지만 순위는 한 계단 상승했다.
한진해운의 순위 변화를 통해 한국해운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수 있다. 한진해운이 세계 3위까지 올랐던 때는 해양수산부가 출범하고 정부가 해운산업 투자에 집중하던 시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해운산업 투자에 관심이 줄어들면서 기업들도 침체기를 걷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해운시장이 불황기를 지나고 있다고 하지만 국내 해운산업은 해외 선사들에 비해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선사들과 달리 선박 투자 시기를 놓친 게 패착이었다. 한진해운도 용선료가 최고점을 찍었던 2008~2009년에 선박들을 대거 장기 용선한 게 화근이 돼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반면 머스크라인이나 MSC 등은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을 저리로 대출 받아 초대형 친환경 선박을 적기 투자함으로써 불황기에도 저원가 구조를 배경으로 흑자 경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선 위주의 금융 정책으로 해외선사 지원에 골몰한 금융당국의 몰상식한 정책도 한 원인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한진해운이 운영했던 선박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드류리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직전 운영한 컨테이너선 98척 61만TEU 중 63척 46만TEU는 여전히 운항을 멈춘 채 항구 외곽에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 4척 1만5000TEU는 폐선됐고 31척 13만4000TEU는 경쟁선사에 용선돼 바다를 누비고 있다.
운항 중인 선박은 대부분 해외 선사로 넘어갔다. 한진해운 선박을 인수 또는 용선해 쓰고 있는 선사는 머스크라인과 MSC, CMA CGM, 대만 양밍, 싱가포르 PIL 및 익스프레스피더스, 우리나라 고려해운 SM상선 등이다.
이중 머스크라인은 가장 많은 11척 7만7000TEU를 용선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머스크라인과 MSC는 한진해운이 운항하던 1만3100TEU 선대 중 <한진수호>를 제외한 4척을 2척씩 사이좋게 나눠가졌다. 고려해운과 SM상선은 4300TEU짜리 4척, 6655TEU짜리 8척을 나란히 인수했다.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베셀즈밸류는 현재 매각절차를 밟고 있는 한진해운 선대 중 컨테이너선은 29척 23만168TEU이며, 평가 가치는 9억8600만달러라고 분석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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