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4 09:15

여울목/ 운임공표제 성공적인 정착에 힘 모아야

정부가 해운시장 안정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도입한 운임공표제가 드디어 시행에 들어갔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1일 개정 ‘외항운송사업자 운임공표 업무처리 요령’을 발령했다. 제도 도입으로 선사들은 당장 다음달부터 정부가 지정한 웹사이트에 시장운임을 공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가에서 선사의 운임정책에 개입하는 제도는 비교적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과거 운임정책을 인가제로 운영해 오다 1993년 해운법을 제정하면서 신고제로 전환했으며 규제 완화 기조에 발맞춰 1999년 4월 공표제로 개편했다. 수십년의 세월 동안 정부가 선사들의 해상운송거래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온 셈이다.

하지만 공표제로 전환된 뒤 운임규제정책은 방향을 잃었다. 선사들의 무관심과 공표 업무에 대한 부담, 자율적인 운임 결정 침해 등의 이유로 사문화된 채 17년간 방치돼 왔다.

정부가 폐기되다시피 했던 운임공표제 카드를 다시 꺼내든 건 최근의 비정상적인 해운시장과 무관치 않다. 한중항로에선 기본운임을 안 받는 한편 터미널할증료(THC) 등의 부대비용까지 깎아주는 이른바 ‘마이너스운임’이 횡행하고 있으며 유럽항로에선 운항원가도 나오지 않는 수준까지 운임이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많은 컨테이너선사들이 적자 성적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중국의 강력한 운임신고제 운영도 모티프가 됐다. 중국정부는 지난 2009년 운임신고제를 도입한 뒤 지난해 중일항로에서 운임신고를 제대로 이행치 않았거나 신고된 것과 다른 시장운임을 받아온 선사들에게 총 8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비정상적으로 작동 중인 최근의 국제해운 흐름을 바로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도 운임공표제 도입을 통해 고사 상태에 내몰린 해운시장의 붕괴를 막고 건전한 산업 발전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이 제도는 향후 해운시장이 호황기를 맞을 경우 선사들의 무분별한 운임 인상을 막는 화주 보호 장치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제기되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정부는 지혜로운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선주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운임공표제 설명회에선 제도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날 외국선사 국내법인이나 대리점들은 한국 수출화주와 체결한 운송계약이 아닌 본사에서 현지 수입화주와 진행하는 운송 건의 경우 국내에서 운임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운임 확인이 안 되기에 공표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운임공표제가 선사간 운임 공유를 금지하고 있는 EU나 인도 등 일부 국가 정책과 상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간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가 시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업들의 자율적인 경영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항만시장의 하역료인가제, 해운시장의 운임공표제, 물류시장의 창고등록제 등이 정부가 최근 도입한 대표적인 해운물류 규제들이다.

이 같이 운임공표제에 대한 불만 또는 우려의 시선들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나쁜 제도’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제도에 우려를 나타내는 해운물류업계 관계자들 역시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는 비상식적인 운임이 판치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해운시장을 바로잡기 어렵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정부가 ‘운영의 묘’를 잘 살린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해운물류업계는 운임공표제의 성공적인 정착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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