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호 사고 이후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관련 기관의 수장으로 진출하는 건 사실상 금지됐다. 이른바 ‘해피아’ ‘관피아’란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까닭에 공무원들은 기관장 공모가 있어도 지원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설령 지원하더라도 해수부 측에서 ‘비토’하는 실정이어서 공무원 출신 인사들의 해수부 산하 기관장 입성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관들의 수장 공백사태가 장기화돼 업무 차질을 빚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인천항만공사와 울산항만공사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주요 해수부 산하 기관은 몇 달 째 후임자를 뽑지 못하다 지난달 비로소 민간인 출신으로 구성된 기관장을 맞이했다. 인천항만공사는 전임 사장의 임기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나서야 사장 인선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 임기 만료 3개월 전에 공모 절차가 시작되지만 올해는 공무원 출신들을 후보에서 배제하면서 사장 인선에 난항을 겪었다.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울산항만공사도 각각 지난 4월과 6월 전임 기관장들이 사퇴한 뒤 몇 달 동안 그 자리를 비워둬야 했다. 장기간 수장 공백 사태를 맞으면서 이들 기관은 현안 업무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발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 기관장 공모에서 해수부 공무원 출신 인사들은 철저히 배척됐다. 해수부 공무원을 퇴직한 뒤 정치권에 뛰어든 J씨는 인천항만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 중도 사퇴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는 인천 출신인 데다 오랫동안 해운물류 행정을 맡아온 전문가여서 인천항만공사 사장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공무원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 한국선급의 회장 인선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졌다. 차관 출신인 L씨가 회장 공모에 응모했지만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선박 전문가지만 해수부 공무원 출신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까닭에 지원 당시부터 발탁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한국선급도 전영기 회장 사퇴 이후 7개월간 회장 없이 운영되다 최근 후임자 인선을 진행 중이다.
해양환경관리공단 이사장 인선은 안갯속이다. 이 기관은 이사장 임기가 지난 3월 만료됐지만 아직까지 후임자를 뽑지 못해 임기가 만료된 이사장이 직무를 계속 이어가는 상황이다. 지난달 16일부터 22일까지 이사장 공모를 진행했지만 이사장추천위원회는 민간인 출신으로만 이뤄진 4명의 후보자들 중에서 적임자를 찾는데 실패했다. 공단은 다음달이나 돼야 재공모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대통령 임명을 거치는 최종 이사장 선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공모에서 적임자를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궤를 같이 해 요즘 해양수산부 내에서도 인사 적체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에 갈 데가 없자 ‘자리보전’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까닭이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원장 공백 사태를 빚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해수부내 정서와 무관치 않다. 지난 8월 윤학배 전 원장이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2달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련의 해수부 산하 기관의 기관장 인선을 두고 관련 업계에선 지나친 공무원 배제가 불러온 폐단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무원 출신 배제에만 골몰해 해당 기관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되는 게 과연 온당한지 묻는 의견들이다.
지나친 공무원 위주의 낙하산 인사는 막아야한다. 하지만 실력을 갖춘 관료 출신의 전문가를 기관장으로 선임하는 것까지 금기시돼선 안 된다. 능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일하게 하는 게 잘하는 인사다. 공무원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기관장 인선에서 불이익을 받는 역차별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