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해운업계의 대표적 현안은 해운보증기구 설립과 톤세제 연장이었다. 해운보증기구는 당초 기금 형태로 설립이 추진되다 정책금융기관의 보증보험 자회사 방식으로 설립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해양선박금융종합대책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정 짓고 정부 출연 2700억원(산업은행+수출입은행), 민간 2800억원 등 전체 55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해 해운보증기구를 연내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책금융기관 출자액에 대해선 “정부가 신속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톤세제는 올해 말 일몰될 예정이었으나 새로 출범한 최경환 경제팀이 2019년까지 5년간 연장키로 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됐다. 세월호 사고 등 대형 악재 속에서도 현안과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자 국내 해운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운보증기구 설립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 우려를 사고 있다. 정부 부처간 엇박자로 당초 계획했던 재원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금융위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해운보증기구 관련 예산으로 300억원만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첫 해 출자하기로 했던 자본금 규모(1000억원)의 30%에 불과한 금액이다. 예산안이 증액 없이 정부안대로 확정될 경우 해운보증기구는 출범 이후 업무수행이 불가능한 식물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다. 해운보증기구 설립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에 1000억원의 예산을 요구한 이후 현재까지 기재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와 예산증액 등과 관련한 장·차관급 회의를 공식적으로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출자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산은지주의 출자여력 부족 등 여러 현실적 여건을 이유로 예산 지원규모를 150억원씩 분담해 출자한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선 자본금 규모를 이달 말 열리는 이사회에서 의결한 뒤 다음달 초 금융위원회에 보험업 예비허가를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해운보증기구는 설립 추진 과정에서 재원과 법적인 문제 등으로 그 규모와 역할이 크게 축소됐다. 당초 2조원대로 요구됐던 자본금은 4분의 1 수준인 5500억원으로 줄어들었으며 기능은 선박금융의 종합지원에서 대폭 후퇴해 후순위 대출보증 한 가지로 쪼그라들었다. 해운업계가 요구해 온 선박은행(Tonnage Bank), 잔존가격보증(RVI) 등의 금융 기능은 제외됐다. 정부는 후순위 대출보증만으로 기능을 한정할 경우 줄어든 자본금으로도 충분히 해운산업 지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운보증기금의 밑그림을 그린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는 불황기 보증비율 상승, 담보인정비율(LTV) 보증 유지 등 등을 고려해 해운보증기구가 한계 해운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최소 1조원의 자본금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규모를 크게 줄이긴 했지만 해운보증기구의 설립을 확정했다. 이는 곧 해운산업의 국내 경제 기여도를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운 불황의 골은 예상보다 넓고 깊다. 국내해운사들의 신음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해운보증기구가 설립되고서도 재원이 없어 해운업 지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은 심도 깊은 협의를 통해 당초 계획한 첫해 출자금액 1000억원 이상의 출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선출자 등 재원 확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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