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세월>호 관련 법안들이 위헌소지가 크다는 헌법학자의 판단이 나왔다. 한국해법학회와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세월호 관련 법안에 대한 특별세미나’에서다. 법안들이 처벌이나 규제에만 집중돼 있어 헌법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해운관련법 개정안 70여건 계류중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세월>호 관련 법은 70여건에 달한다. 우선 선원법은 선장과 선원의 구조 의무를 강화하고 위반시 처벌을 강화한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선장이 구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경우 10년 이상 유기징역(이명수) 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이목희)을 받도록 법안, 선장뿐 아니라 해원(선원)까지 인명구조를 의무화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윤명희) 또는 최고 15년까지 징역(이찬열)에 처한다는 법안 등이 올라와 있다.
선장의 형량이 현행 5년 이하에 비해 최고 2배 이상 높아졌다. 항공법도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규정하고 있어 산업간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박인숙 의원이나 백재현 의원 류지영 의원 김승남 의원 등은 출항 전 선장이 안전검사를 하도록 하는 선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인숙 의원은 나아가 선장의 직접 지휘 구간을 확대하는 조항도 넣었다.
이노근 의원은 여객선 선장과 선원이 운항 중에 제복 착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박남춘 의원은 선원 교육을 정부에서 5년마다 수립토록 했으며 유기준 의원은 선원에게 비상훈련 참가 의무를 지웠다.
해운법 개정안도 다수 발의됐다. 운항관리자가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이찬열)하거나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윤명희)을 받도록 한 법안이 눈에 띈다.
▲고려대 김인현 교수 |
박남춘 의원이 발의한 해운법 개정안은 운항관리자의 자격을 1급항해사 또는 3급항해사 이상으로 승선경력이 3년 이상인 자로 높이도록 했다. 여객운송사업자의 승선신고서 관리를 강화하고 위반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법안도 발의됐다.
선박의 나이와 관련해선 최민희 의원은 선령을 25년 이하로, 유기준 의원은 선령 상한을 20년으로 규정토록 했다. 유기준 의원은 또 일정톤수 이상의 여객선내에 안전관리 전문인력을 배치토록 하고 고의나 중과실로 해양사고를 낸 자에겐 새롭게 면허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해운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해사안전법 개정안의 경우 선장의 자료 제출이나 보고, 선박 점검을 강화하거나 취중 선박운항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제출됐다. 처벌은 최고 3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상향 조정됐다. 백재현 의원은 선장이 관제통신을 듣지 않아 해양사고가 났을 땐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을 받도록 했다.
박남춘 의원은 해사안전법 개정안에 일정규모 이상의 연안여객선에도 국제안전관리규정(ISM코드)을 도입해 내항여객선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넣었다. 최규성 의원의 법안은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을 제시했다.
선박안전법 개정안은 여객선의 증개축 금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특히 이찬열 의원은 여객선의 건조검사 또는 선박검사를 받은 후 증축 개축의 금지를 명문화했다.
김관영 의원은 선박검사관 경력의 공무원은 퇴직한 지 2년 이내엔 선박검사원이 될 수 없도록 했다. 또 3급 이상의 일반직 공무원으로 해양수산행정에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중앙심판원 심판관이나 수석조사관 자격을 부여한 조항을 삭제했다.
수난구호법 개정안의 경우 현행 국제여객선에만 부과돼 있는 여객선비상수색구조계획서 신고 의무를 내항여객선까지 확대(심윤조)하거나 조난 사고 시 선장과 승무원이 구조 조치를 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최고 무기징역(백재현)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여객선사 체질 강화 법안도 필요
선장 출신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대부분의 법안들이 규제 측면이 강하다”고 논평했다. 처벌이 크게 강화되면서 선원직 기피현상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는 외항선보다 하루 적은 내항선원의 유급휴가 개선, 여객선 승선근무예비역제도 도입 등 “열악한 환경의 여객선사 체질을 강화하고 선원 복지를 강화하는 조장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차도선 쌍동선 등 구조적으로 안전한 선박을 최대한 고려해 선령 제한 등의 규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대 김승대 교수 |
헌법학자인 부산대 김승대 교수는 “발의된 법안들이 범죄의 실태와 죄질의 경중, 행위자의 책임, 처벌 규정의 보호법익, 형벌의 범죄예방효과 등에 비춰 전체 형벌 체계상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형벌 본래 기능과 목적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현저히 일탈한다”고 위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다양한 행위 유형을 하나의 구성요건으로 포섭하면서 법정형의 하한을 무겁게 책정해 죄질이 가벼운 행위까지 모두 엄히 처벌하는 건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선장 의무를 강화한 법안들에 대해 “선장은 이미 선박의 운항에 관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이며 기존 법령에 의해 많은 의무가 부과돼 있다”며 “기존 책무와 비교 검토해 불필요한 중복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이 요구하는 과잉금지 원칙상의 피해의 최소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괄 금지 위주 법안 문제 커
그는 출항전 감항성 검사 및 기록 의무 중 서면 작성 업무 부과 등은 안전운항에 실질적 관계가 없으면서 업무량을 늘려 오히려 안전운하에 위해가 될 수 있어 과잉금지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또 선박의 직접 지휘구간 명시, 선장의 선박평형수 유지 의무 등은 중복 규율과 부적절한 과잉규율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선장과 선원의 제복착용 의무는 적절하지만 일괄적인 의무부과와 과태료 부과는 입법 목적을 넘어서는 과잉규제로 책임과 처벌의 비례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봤다.
출항 전 훈련 규정에 대해선 출항 직후도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또 선박의 선령제한이나 여객선 증개축 금지 등 전면적 금지 또는 일괄 제한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위헌 입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선박검사관의 취업제한도 위헌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해운업계 유착비리를 우려하는 제도로 보이지만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검찰 총장 및 국가인권위원의 퇴직 후 공직제한 조항이 위헌 결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해양교통안전공단 설립도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업무 중복을 불러와 경영자유의 부당한 침해를 근거로 한 헌법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칙과 기준에 맞지 않는 처벌 강화
최석윤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처벌 강화가 정당화되려면 법정형 결정의 원칙과 기준에 부합하고 범죄학적 연구결과, 비교법적 검토결과, 판례 등과 같은 자료에 근거해야 하지만 법정형의 편차가 큰 개정법률안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또 형사법학자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는 중형 주의 형사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해양대 최석윤 교수 |
특히 선박 사고시 선장이 여객이 나간 후가 아니면 선박을 떠날 수 없도록 강제한 이목희의원의 선원법 개정안에 대해선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부적절한 데다 정책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에 떠밀리거나 실효성보다는 입법자의 성공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급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차분히 검토한 내용을 담은 합리적 개정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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