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04 13:42

기자수첩/ 600달러의 늪에 빠진 호주항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요 근래 잠깐 지갑에 여유가 생겨 이리 저리 사고 싶은 물건을 몇개 샀더니 금방 또 재정이 바닥을 드러냈다.

최근 정기선 시장을 들여다 보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 건 기자의 주머니 사정뿐만이 아닌것 같다. 2006년 머스크라인의 <엠마 머스크>호를 시작으로 1만TEU급 대형선이 등장하면서 정기선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겪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만8000TEU급으로 선박이 커지면서 선복량은 더 늘어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동서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은 올리면 떨어지는 운임 때문에 매달 운임인상(GRI)을 시도해야만 했다. 올해는 작년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선사들이 휴항을 통해 선복 조절에 나섰다. 선사들의 조치로 유럽항로는 1000달러, 북미서안과 동안은 각각 2000달러, 4000달러대의 양호한 운임 수준을 보이고 있다.

동서항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호주항로는 울상이다. 호주항로는 선복량 증가로 인한 운임 하락을 가장 뼈저리게 겪고 있는 지역이다. 동서항로에 1만TEU급 선박이 투입되면서 기존에 동서항로를 기항하던 3000~4000TEU 선박들이 호주 노선으로 캐스케이딩(전환배치)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호주항로의 운임은 600달러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항운거래소가 집계한 8월22일자 상하이-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노선의 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656달러로 집계됐다. 그나마 일주일 후인 8월 29일 TEU당 755달러로 상승했으나 호주항로의 운임은 상반기 내내 600달러 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운임 상승은 상하이발 운임이 원체 낮았던 탓에 일시적으로 올라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사들은 1000달러는 돼야 호주항로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호주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은 당초 6월까지였던 비수기 프로그램을 8월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매주 결항을 통해 선복을 조절하고 있으나 연이어 투입되는 3000~4000TEU급 선박들 때문에 선복 공급 과잉은 계속되고 있다. 선사들의 휴항에 따른 선복 조절은 그야말로 ‘솜방망이’에 불과한 셈이다. 선사들 사이에선 “어차피 결항을 해도 운임은 떨어지니 이제 결항을 하지 않겠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오가고 있다.

3~4년전만 해도 2000TEU급 선박이 주로 투입됐던 호주항로에는 3000~4000TEU급 선박이 잇따라 기항하고 있다. 11월부터 CMA CGM과 차이나쉬핑, OOCL, PIL이 새로 공동 운항을 시작하는 아시아-호주 뉴질랜드 노선에는 4250TEU급 선박 7척이 투입된다. 선사들 사이에선 곧 호주항로의 5000TEU급 선박이 투입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에버그린, 양밍, PIL, 시노트란스가 공동 운항하는 CAT 서비스의 개설을 비롯해 선복량 증가로 몸살을 앓았던 호주항로는 올 해도 쉽사리 치유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들은 10월 15일 계획하고 있는 GRI에 승부를 걸었다. 아시아-호주 노선 물량에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10월1일부터 10일까지 국경절 연휴를 맞는다. 선사들은 중국 연휴가 끝난 후 물량이 늘어나면 그 바람을 타고 운임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월 운임 인상적용 여부에 따라 4분기 운임이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호주 노선의 물량은 몇 년째 정체를 겪고 있다. 10월 GRI를 통해 반등을 노린다지만 호주노선의 운임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장기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GRI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운임을 올리고 싶다면 선사들 역시 대형 선복 투입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선사들의 적당한 공급만이 호주항로를 600달러의 늪에서 구할 수 있다.

< 이명지 기자 mj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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