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2 17:09

기자수첩/ “Are you ready?”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급습

“674층의 고층건물은 커져만 가는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소설가 배명훈의 ‘타워’라는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득 이 구절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타워’에 등장하는 고층건물이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흡사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초기에 200층의 높이였던 건물은 인간의 욕망에 비례하며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며 몸집을 더욱 늘렸다. 바다에 떠다니는 컨테이너선도 인간의 욕망이 커져가듯 몸집을 점점 키우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중국 CSCL로부터 수주한 1만9천TEU급 컨테이너선 기공식을 가졌다. 지난해 머스크라인이 인도한 <머스크 맥키니 몰러>호는 400m를 넘지 않았는데 이번에 현대중공업이 건조하는 컨테이너선은 총 연장이 400m를 넘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 컨테이너선을 위로 세우면 100층 건물은 족히 넘어서는 높이다. 이처럼 해운불황이 찾아오면서 원가절감 즉,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형선의 필요성이 커지고 그 중에서도 연비가 좋은 배를 원하는 선주들이 많아졌다.

‘에코선’이라고도 불리는 대형 컨테이너선은 환경규제에 대한 대응은 물론, 연료비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이 대목에서 항만업계가 초대형선 운항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래의 항만을 가늠해보고 전망하는 ‘항만 국제 심포지엄’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 글로벌 항만운영사인 PSA 인터내셔널의 재무 담당자는 싱가포르 터미널에 대해 35억달러를 투입해 두 배 이상의 시설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몇 년 전만 해도 컨테이너터미널에서 사용되는 장비는 25년 정도의 수명을 예상했지만 최근엔 10년도 채 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주요 항만들은 허브항이 되기 위해 컨테이너터미널 규모를 확대해 초대형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수심을 갖추는 등 갠트리 크레인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세계 5위항인 부산항의 현주소는 어떨까. 현재 부산항은 선석도 많을 뿐만 아니라 수심이 깊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입출항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해 부산 신항에 입항한 1만8천TEU급 <머스크 맥키니 몰러>호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부산항의 항만 생산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싱가포르항은 부산항에 비해 2~3일 짧은 장치기간과 2단 높은 8단의 적재높이, 풍부한 크레인 등으로 인해 컨테이너의 회전율이 빠르다.

빠른 회전율은 요즘 해운물류업계에서 강조하는 비용절감의 바로미터다. 부산항의 생산성이 더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는 닝보·저우산항이나 광저우항 등 중국 항만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더욱 선진화된 시설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판단에 근거한 정부의 항만개발이 전제돼야한다.

터미널간 환적화물의 효율적 운송 시스템(ITT) 등도 더욱 선진화돼야 할 것이다. 현재 해양수산부는 환적화물의 터미널간 이동 수수료인 ITT 비용을 대폭 줄여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부산항을 중간 기착지로 삼은 환적 화물이 들어오면 일단 컨테이너를 내렸다가 항만 내 다른 터미널로 옮긴 뒤 다시 실어야 하는데,이때 발생하는 비용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부산항의 컨테이너 1개당 ITT 비용은 중국 상하이항보다 다소 비싼 수준이기에 인하가 필요하다.

최근 가포신항 등 항만이 지나치게 많이 개발되고 있다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연간 물동량이 처리능력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항만이 넘쳐나고 있다. 무분별한 항만 개발보다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항만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국내항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현명한 항만 개발을 요구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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