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KMI는 지난 1984년 2월 한국해운기술원으로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우리 해운은 오일쇼크와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불거진 심각한 불황에 직면해 있었다.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에 따른 운임하락으로 많은 선사들이 사업을 하면 할수록 손실을 보는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적자 규모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선박가치는 하락했다.
국내 해운사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선박은 해외에서 억류되기 일쑤였다. 해운업계의 부실이 금융권까지 확산되자 정부는 결국 1982년 말 해운업에 메스를 꺼내들었다. 이른바 ‘해운산업합리화’ 대책이었다.
해운산업합리화는 정부 주도하에 해운사를 통폐합하는 게 목적이었다. 국내 해운업계를 슬림화함으로써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정부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해운사를 대형화하고자 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수년에 걸쳐 진행됐으며 그 결과 63곳에 이르던 해운사는 20곳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해운산업합리화를 진행하면서 정부는 해운산업을 전문 연구하는 싱크탱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해운산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통해 이론 토대를 구축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토록 하자는 인식이었다.
그렇게 출범한 곳이 바로 해운기술원이다. 연구소는 1988년 해운산업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꿨으며 1997년 수산과 해양을 포괄하는 현재의 종합 해양산업 연구소로 거듭났다. 1999년엔 감독관청이 해양수산부에서 국무총리로 변경되면서 위상이 한층 강화됐다.
현재 해운시장 상황은 KMI 설립 당시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선사들의 난립과 무분별한 경쟁으로 해운산업은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수입원인 운임은 바닥권을 맴돌고 있으며 선박가격은 투자원금을 보전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급락하며 선사를 부실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국내 톱 벌크선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며 양대 선사들도 몇 년째 이어진 적자 성적을 이기지 못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KMI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KMI는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호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KMI를 설립했지만 설립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국내 유일의 해운산업 전문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배가됐다고 볼 수 있다.
30돌을 맞아 KMI는 한국 해운의 백년대계를 위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부활한 해양수산부와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해운 뿐 아니라 해양산업 수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 해야 한다.
KMI 김성귀 원장은 16일 열린 바다와 경제 조찬포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5위권의 해양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10위권 이하인 수산업과 해양환경·과학 해양레저·문화 등의 전반적인 발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의 말처럼 KMI는 우리나라 해양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정책대안과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또 해운산업의 불황 탈출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 개발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다 같은 해운불황기에도 불구하고 유럽선사와 일본 선사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내 해운기업들의 경영전략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취임 당시 해운산업 경고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해운사 경영자들의 그릇된 인식을 계도하고 합리적인 기업 경영의 나침반이 되겠다는 의미다. 해운불황 탈출과 해양강국 도약을 위한 KMI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기대해본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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