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하역료 덤핑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터미널 운영사간 과열경쟁이나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부산 북항의 몰락원인도 결국 잘못된 기준 위에서 수립해 온 정부의 항만정책에서 비롯됐다.
이에 업계는 하루빨리 항만투자비절감 및 하역시장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컨테이너부두 개발계획을 조정하고 낮게 책정된 하역능력 재산정 작업을 벌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역능력 조정시 종합적 검토 필요
향후 부산항 물동량은 연평균 4.5% 성장할 것으로 전망, 오는 2030년에는 38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산항의 상향된 적정하역능력 적용시 약 1800만TEU의 하역능력 추가확보가 필요한 셈이다.
적정하역능력이란 선박·화물 대기비용과 항만건설비 등 서비스 비용의 총비용이 최소일 때 항만서비스를 적정수준으로 보고, 그에 해당하는 하역능력을 적정하역능력으로 정의한 것이다. 터미널 운영사의 수익관점에서 최대처리능력과는 다른 개념으로, 항만경쟁력 제고와 총비용 최소화를 동시에 고려한 공익적 관점의 하역능력이다.
동명대학교 항만물류학부 박남규 교수는 “하역능력 기준 설정시에 선사, 운영사, 항만공사 및 정책 당국의 입장을 종합·고려해야 하며 하역능력 상향 조정시에 선사·화주 서비스 및 항만 경쟁력 차원에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항만 하역능력 측정시 환경변화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부두별 생산성 평가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부산항은 하역능력 상향 조정시에도 중심 항만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계 2위항인 싱가포르항의 파시르 판장터미널은 투아스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2027년까지 6500만TEU의 적정하역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현재 파시르 판장터미널의 하역능력은 1800만TEU로 향후 4700만TEU의 하역능력을 확보키 위해 추가시설을 개발할 계획이다.
싱가포르항이 부산항에 비해 하역능력이 높은 이유는 싱가포르항의 ▲짧은 장치기간 ▲높은 적재높이 ▲선석당 평균 크레인수 ▲적은 운영사 수 등으로 싱가포르항은 장치기간이 짧은 환적화물이 85%인데 반해 부산항 환적화물은 45%에 불과하다.
하역능력과 관련해 현재 싱가포르항의 선석수는 총 52개, 선석연장은 16km로, 안벽크레인은 선석당 4개다. 하역능력은 선석당(1선석 350m) 77만TEU(전체 3500만TEU)로 부산항의 적정하역능력인 60만TEU보다 높다. 최근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항만의 적정하역능력은 선석 수, 크레인 투입대수, 특히 장치장의 크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국 항만들은 선석당 적정하역능력보다 선석당 실제처리량이 대부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칭다오항 치엔완(QQCT)터미널의 경우 11개 선석에 장치장 폭이 1500m이며, 적정하역능력은 59만TEU로 산정해 적용 중이다.
톈진항도 5개 터미널에 적정하역능력은 30~65만TEU로 산정됐으나 실제 처리량은 47만TEU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위 항만인 상하이항 또한 선석당 적정하역능력은 50만TEU지만 선석당 실제처리량은 70만TEU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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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의 적정하역능력과 관련해 박 교수는 “기존부두의 경우엔 선석당 40~48만TEU, 신규부두는 46만TEU를 조정, 각각 55~70만TEU 60만TEU로 하역능력을 상향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선박대형화, LPC(Lift per call) 증가에 따른 TGS 확장, 인근 터미널 활용, 생산성 높은 장비 추가 투입 및 교체, 장치장 자동화, 하역장비 추가 투입 등 변화된 여건을 반영한 하역능력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사 및 터미널 운영사 입장에서의 하역능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역능력을 올릴 경우 선사 입장에서는 선박이 대기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체선·체화 비용이 증가하지만 운영사 입장에서는 선석공급이 제한돼 TOC별 물량확보가 용이하다.
반대로 하역능력을 내릴 경우 선사 입장에서는 체선·체화비용이 감소하지만 운영사 입장에서는 신규 선석 공급에 따른 TOC별 물량유치에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적정하역능력 조정도 좋지만 이에 앞서 낮은 하역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는 “적정하역능력을 높여 아무리 많은 물동량을 처리해봤자 하역료가 낮으면 운영사들은 다 죽어나간다”며 “적자가 나면 적정하역능력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부산 신항의 항만개발도 좋지만 우선적으로 북항 컨테이너 터미널을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등 안정화 작업을 거친 후에 항만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항을 기항하는 선사 관계자는 “적정하역능력을 높이고 줄이는 것을 떠나 입항하는 선사입장에서는 터미널 운영사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기를 원한다”며 “수심 문제로 선박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최근 부산 신항에 체선현상이 부쩍 늘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해수부나 항만공사에서 준비하지 못한 수심문제로 제 시간에 출항을 하지 못해 항비, 접안료를 더 내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항만정책이 하역료 출혈경쟁 불러와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컨테이너항만 건설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8월 오거돈 대한민국해양연맹 총재를 포함해서 부산지역 국회의원 김무성 의원과 임기택 부산항만공사(BPA) 사장 등이 항만시찰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후 그 결과를 정책으로 반영하기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당시 시찰단은 “싱가포르 신항은 선석당 하역능력을 100만TEU로 잡고 항만을 건설하는데 반해 부산 신항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0~46만TEU로 잡고 항만을 건설해 항만이 과도하게 많이 건설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컨테이너항만 건설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 |
토론회를 개최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부산항의 하역료가 다른 국가의 항만보다 너무 싸기 때문에 국가적 손실이 막심하다”고 밝히며 “그런데도 지금 부산 신항 뿐만 아니라 각 지역항의 컨테이너 부두 확장계획이 지금 거론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하루속히 시정해서 현재 진행 중인 부산 신항 공사에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우리나라 항만의 선석당 하역능력 기준의 문제점과 항만공급 수준 및 향후 계획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에서 김인용 현대부산신항만 대표이사는 “하역요율이 낮기 때문에 인원구조조정이나 야드를 줄여서라도 이익을 맞춰보려고 노력 중”이라며 “현재 적정하역능력이 낮은 것은 사실이며 적정하역능력을 개선할 때 하역요율도 함께 고려, 조금 높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밝혔다.
또 그는 “현재 늘고 있는 항만개발을 당분간 미루고 트리거 룰에 맞춰 항만개발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리거 룰은 장기계획인 항만기본계획을 바탕으로 매년 물동량 예측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추진시기 등 항만 개발계획을 조정하는 제도다.
해양수산부 이철조 항만정책과장은 “적정하역능력은 주기적으로 최신현황을 반영하고 내년에는 항만별로 여건을 심층적으로 분석, 적정하역능력을 재검토해 항만기본계획 수정용역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항 운영사들의 경영실적이 안정화 될 수 있도록 하역료를 개선해 하역시장의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수부는 하역능력 재검토 결과에 따라 현재 기초공사 중인 부산항 신항 2-5단계 컨테이너 부두 개장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2-6단계의 경우 이번 하역능력 재평가 결과에 따라 착공시기를 연기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해수부의 선석당 하역능력 산정 오류가 앞으로 북항 몰락을 보다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향후 추이에 따라 해수부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신항의 물량 수급이 안정화되고 북항재개발 2단계 사업이 시작되면 자성대 부두 물량이 북항 내 다른 부두에 넘어가 북항 물동량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신항 선석이 과잉 공급되면서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며 “신항의 선석당 하역능력을 잘못 선정한 것이 결국 북항의 몰락을 돌이킬 수 없게 한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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