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2 14:29

기자수첩/ 해운산업이 지하경제인가

박근혜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세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복지 재원 마련 등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세수 확보 주요 수단으로 후보 시절부터 밝힌 바 있다. 세정당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중점 공략 대상으로 대재산가, 고소득자영업자, 대부업자 등 민생침해 분야, 역외탈세 등 4곳을 지목했다.

헌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박근혜정부의 세수 확보 정책과 맞물려 해운업계가 때 아닌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이른바 국세청이나 관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가 그것이다.

세정당국은 해운업계를 역외탈세의 온상으로 점찍은 듯하다. 시도상선의 권혁 회장에 의해 촉발된 세정당국의 해운업계 압박은 갈수록 수위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D사와 S사가 철퇴를 맞았으며 대양상선은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은 뒤 올해 초 폐업 수순을 밟기도 했다.

얼마 전엔 해운사로 등록돼 있지 않은 또 다른 D사가 300억원이 넘는 탈세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세정당국에 검거돼 해운업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비록 탈세 혐의에선 비켜나긴 했지만 한 중견 해운사가 지난해 특별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최근엔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성장세를 보인 폴라리스쉬핑이 국세청의 타깃이 됐다.

세정당국의 해운업계 옥죄기는 물론 일부 해운 경영인들의 세금 포탈이 도화선이 됐지만 정부의 해운산업 몰이해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크다. 세계 해운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편의치적에 대한 오해가 그것이다.

편의치적은 선사들이 선원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세금을 줄이기 위해 보유 선박을 해외 조세피난처(tax heaven)에 등록하는 제도다. 가장 중요한 이점은 선원비 등의 비용 절감이다. 임금부담이 적은 외국선원의 고용이 가능하고 선박수리를 할 때에도 비싼 자국내 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 회피 등 경제 외적인 이익에다 소득세나 영업세 등 세제상의 효과도 크다.

세정당국은 편의치적 자체는 위법이 아니지만 세금 포탈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엔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위법성을 어떻게 가리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편의치적은 이미 세계적인 관행으로 정착했고 그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라는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처럼 정부당국이 조세피난처에 세운 SPC(특수목적법인)를 근거로 불법이란 멍에를 뒤집어씌울 경우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운사들은 세정당국의 표적이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편의치적에 의한 선박 확보는 곧 세금포탈이란 등식으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쯤 되면 “현 정부에선 해운산업을 양성화해야할 지하경제로 보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해운산업의 중요성은 그동안 숱하게 거론돼 왔던 터라 다시 언급하는 게 민망할 정도다. 반도체 자동차 IT에 이은 국내 4대 외화가득원, 전쟁 등 비상사태시 군수물자 수송, 조선업 등 연관산업의 성장촉진 등 해운산업의 중요도는 이미 이론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국내 해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안된다는 점에서 해운산업의 무궁무진한 성장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신정부의 해운 정책은 해양수산부 장관 임명에서부터 삐걱거리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견선사 한 임원은 “고용창출이나 외화가득율 등을 따져 볼 때 해운산업의 국가 기여도는 매우 큰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최근 선사들은 정부의 압박에 눌려 선박 도입도 눈치 보며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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