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난해 12월2일부터 해운법 개정을 통한 해운부대업 등록갱신제도가 시행됐다.
등록갱신제도는 시행한 날을 기준으로 해운부대업을 등록한 지 3년이 경과된 업체는 1년 내에 등록증을 갱신해야 한다는 것을 기초 골자로 잡고 있다. 유효기간을 3년으로 해 계속 영업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등록을 다시 해야 하며 갱신하지 않은 업체는 등록대장에서 말소된다는 것. 등록갱신제는 ‘2013년 1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등록 완료’라는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법의 개정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박근혜 정부를 맞아 조직이 개편되는 해운 당국과 등록갱신제를 통한 발전을 꾀했지만 이를 달성 못한 유관 협회 모두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업무 위탁 좌절 맛본 협회 ‘망연자실’
1995년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말미암아 산업·무역은 세계화 일로로 접어들었고 국경 없는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이에 즈음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해운대리점업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규제 완화 전까지는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 하에서 대리점업체의 영업 승인이 결정됐었다. 특히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이하 총대리점협회)의 회원사라는 확인증이 있어야 등록이 가능했었기에 당시의 총대리점의 입지는 막강했었고 허가를 받은 업체가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95년도 이후 해운대리점 등록업체수가 1천여개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면서 일부 업체에서는 대리점수수료를 덤핑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례가 자주 발생했고, 아직까지도 업계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부작용이 만연한 실정이다. 이를 정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해운부대업의 등록갱신제도다. 해운법 개정 내용을 두고 국토해양부와 대리점협회는 3년 동안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지난해 말 이 줄다리기의 결판이 났다.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입장이 있지만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곳은 역시 총대리점협회였다. 등록갱신제 도입이 거론되던 시기 초반부터 총대리점협회와 한국해운대리점협회(이하 지방대리점협회)는 회생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등록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협회를 통하게 함으로써 등록갱신제가 협회의 입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법 개정이 마무리돼가던 때 규제개혁위원회가 ‘협회로의 업무위탁이 불가하다’고 이의제기함으로써 제동이 걸렸다. 이에 협회는 “당초 추진해온 방향에서 벗어나면 결국 또 다른 규제만 발생하게 되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규제개혁위원회는 이 내용을 수용치 않았고 협회 측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총대리점협회건 지방대리점협회건 3년간 매달렸던 일이 허망하게 끝나자 깊은 상실감에 빠져있는 분위기다.
총대리점협회의 경우 2011년 초 177개 회원사에서 2012년 170개, 2013년 157개로 점차 회원수가 줄고 있다. 지난해 케이라인, 시노트란스, 시그린익스프레스의 신규가입에도 불구하고 16곳이 제명돼 격차가 벌어졌다. 해가 갈수록 회원사가 줄면서 급기야 지난해 회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러니 등록갱신제와 맞물린 ‘회원사 늘리기’ 미션은 더욱 절실했던 것이다.
하지만 업계 분위기는 이를 결코 곱게 보지는 않았다. 협회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제한적이라고 할지언정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할 게 아니라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는 개념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협회가 등록갱신제의 일부 업무를 맡아 하면 협회도 활력이 생기고 정부는 일을 덜 수 있다는 이론은 이상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애초 협회의 목적 자체가 ‘제도를 통한 협회 회원 늘리기’는 아니지 않는냐”며 쓴 소리를 했다.
또 다른 선사 관계자는 “대리점 영업에 도움이 되는 시장 상황을 공유하고, 애로점이 발생하면 협회에 의존해 대 관공서 업무를 처리하는 게 과거 협회의 제1목적이었는데 이것이 발휘가 안 되기 때문에 협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제1목적을 잃어 부유하고 있기보다는 또 다른 지향점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우선시 돼야 한다고 판단된다”고 언급했다.
총대리점협회-지방대리점협회, 피해의식 속 갈등 지속
1980년대 해운업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총대리점협회와 지방대리점협회가 각각 출범했다. 총대리점은 외국선주와의 계약을 주선하고 그 중 각 지방 항만에서의 실무는 지방대리점 측이 담당한다.
이 같은 구조에서 대리점료가 100이라면 이 중 총대리점이 60%를, 지방대리점이 40% 를 가져가는 구조가 예전부터 정착된 관행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규제 완화 이후 ‘자율경쟁’의 명목 하에 정부는 두 업종의 구분이 없다고 판단, 2001년 11월부터 하나의 법 아래 뒀다.
당시 표면상으로는 두 업종의 네트워크 반경이 넓어지는 만큼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고 각각의 비즈니스에 제한을 두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업계의 특별한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처럼 ‘자유로운 경쟁’은 양(陽)의 방향이 아닌 ‘피 튀기는 요율 덤핑 경쟁’이라는 음(陰)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총대리점은 지방대리점이 낮은 요율을 무기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뺏는다고 생각하고, 지방대리점은 자유로운 제도 하에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총대리점을 통하는 방법으로 낮은 수익을 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총대리점협회 관계자는 “요율 덤핑으로 우리나라의 대리점 전체가 부실해 지고, 100의 요율을 받을 수 있는 걸 50~60의 요율밖에 받지 못하니 국가적으로도 손해”라며 “둘 다 100을 받아야 공평하지 않겠냐”고 반발한다.
이 가운데 총대리점협회는 지방대리점협회를 흡수하고자 하는 의향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지방대리점협회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등록갱신제 건과 같이 두 협회가 한 목소리를 낼 때는 작은 두 개의 단체보다는 하나의 큰 단체로써 의견을 피력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업종상 실제 업무가 다르다’, ‘각 업체가 수익을 내는 루트가 달라 복잡하다’는 등의 입장만 내비치고 있어 좀처럼 두 협회의 사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선사 관계자는 “대리점 업계 내부가 둘로 나눠져 각기 신규업체 유치에만 목 메며 요율 깎기 경쟁을 하다보면 공동으로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며 “불순한 대리점 업계 시장을 정화하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숙제로 남아있다. 업체건 협회건 각각의 이익에만 급급하거나 피해의식에 휩싸여 있다면 앞으로도 ‘숙제’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 와중에 주한외국해운대표자협회(AFSRK)는 일사천리 행보를 밟고 있다. 하파그로이드의 토마스 엥겔 대표를 필두로 2007년에 정식 출범한 AFSRK는 현재 26개 회원사로 꾸려져있는 단체로 정부에 해운 유관단체로 등록돼 있다. AFSRK는 국내 해상운송, 해상안전, 항만운영 등 해운산업 전반에 대한 발전을 도모하고 국내항만 물류시설 견학이나 정부·지자체의 공동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2013년 1월1일부로 토마스 엥겔이 AFSRK의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기존 부회장으로 부임해 있던 APL의 얀 올로프 폰 펠리츤 대표가 회장으로 새롭게 부임했다. 5년 만에 새로운 회장이 선출된 만큼 AFSRK 회원사들의 기대도 클 것으로 사료된다.
이에 대해 얀 대표는 “전 회장인 토마스 엥겔 대표가 워낙 훌륭하게 AFSRK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바꿔야 할 부분은 없다. 한국에서 해운업을 하고 있는 외국인 선주들에 대한 편의를 1순위로 두는 단체의 목표는 변함없기 때문에 나 역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AFSRK 회원사 대부분은 세계적으로도 톱20위 선사에 이름을 올리는 굴지의 선사들이기 때문에 한국 내 주요 항만에서 처리하는 물동량이나 투자 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총대리점협회는 AFSRK에는 가입해 있고 협회에는 가입이 안 된 몇몇 업체를 회원으로 유치하고자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얀 대표는 “AFSRK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운송 서비스 제공, 환경에의 책무, 국내외 보안 조건 준수 등을 기본으로 실행 가능한 장기적 전략을 보장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이 같이 한국 내 해운업 발전을 위하고 있다는 점은 협회와 다르지 않다”면서도 “그들의 회원은 대리점업체고 AFSRK의 회원은 외국인 법인장이기 때문에 시각과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단체는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는 게 최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등록갱신제 시작, 그 후가 더 중요하다
해운법이 개정된 건 엎질러진 물이다. 협회가 실의에 빠져있거나 이해관계만 따지는 등 ‘검은 아우라’만 뿜어내고 있어선 안 된다.
지금 상황의 등록갱신제와 관련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정부가 업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되 대리점협회와의 활발한 정보 교류를 하며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정부도 세심한 사후관리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협회의 2013년도 연간 사업계획을 살펴보면 ‘정부와 연계한 대리점업계 실태조사’라는 내용이 있다. 계획서 상에는 3월로 표기돼 있으나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일정은 다소 지연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 측의 협조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협회의 조사는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과 관계자는 “대리점협회 측의 업무 위탁 요구는 일부 납득되지만 규제위원회 측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대리점협회로의 업무 위탁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의 등록갱신제 진행 상황을 물으니 “당초 우리 부처에는 대리점업체의 주소 및 대표자 변경 요청 건이 수시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업체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면 변경 건 처리와 더불어 등록갱신을 유도하는 식으로 업무가 진행 중”이라며 “물론 등록갱신제에 대해 알고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수선한 업무 분위기 때문에 조직개편 이후 본격적인 업무 개시가 되면 등록갱신제와 관련한 사항 역시 제대로 진행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때는 정부 측에서도 공식 안내문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 등록갱신제 시행 이후 구체적인 사후관리 방안을 내 놓는 것은 아직 때 이른 발상이라고 판단된다. 등록갱신제는 이제 막 시작단계기 때문에 당장 해결책이 도출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
정부와 협회가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등록갱신제가 시행되는 첫 해인 올해, 상호 협력 하에 시장 질서를 정화하기 위한 기반을 잘 다져놓는 것이다. 1년간 유령업체가 정리되는 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제도적 차원의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협회 역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한 번 협회 활성화의 페달을 밟아야 한다. 해운부대업과 대리점업계의 새로운 길 찾기 과정에서 정부와 업·단체의 협력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지 지켜봐야 할 때다. < 김보람 기자 br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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