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06 19:04

물류컨설팅/한국포장시스템연구소 이명훈 소장

파렛트 표준화의 문제점은 포장표준화로 풀어야 한다

맹자(孟子)는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태어나서 공자와 함께 성인의
반열에까지 이른 인물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자식 교육열이 유별난 우
리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사(故事)인데 이와 함께 회자되는 단기지교(斷機之敎)
에 대해서는 덜 알려져 있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에 앞서
소년시절에 유학을 나가 있던 맹자가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베를 짜고 있
던 어머니가 이유를 물은 즉, 맹자는 공부가 별로 진전이 없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
다. 그러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를 옆에 있는 칼로 끊어버렸다. 섬뜩해진 맹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네가 학문을 그만둔다는 것
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생계 방편인 베짜기를 그
만두면 도둑이 되거나 남의 심부름꾼이 될 수밖에 없을진대 대장부가 학문을 중단하
면 역시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맹자는 이 말을 듣고 즉시 돌아
가 밤낮으로 쉬지 않고 배움에 힘쓴 결과 마침내 성공하게 되었다. 즉, 斷機之敎란
무슨 일이든지 중도에 폐하면 짜던 베의 날을 끊는 것과 같이 아무런 성취를 얻지 못
하므로 일단 시작한 일을 꾸준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故事成語를 인용하게 된 이유는, 요즈음 우리의 물류표준화 분야가 이
고사가 생각나게 하는 상황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물류표준화의 핵
심인 파렛트 표준화의 노력이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일정부분 궤도수정이 불가피하
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이래, 1,100x1,100mm 규격(T11형)을 일관수송용 국가 표
준 파렛트로 강력하게 밀어왔다. 이 규격을 단일규격으로 파렛트 표준화를 달성하고
자 꾸준한 홍보와 더불어 금융지원과 세제혜택을 시행한 결과 현재까지 약 35% 정도
의 파렛트 표준화가 진척되었다. 혹자는10여년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이 정도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서 아시아 지역 내에 파
렛트 표준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국내 일각에서 표준 파렛트를 재검토하자
는 의견이 제기됨에 따라 그동안 일사분란하게 추진되었던 T11형 파렛트의 보급·확
산 전략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즉, 1,200x1,000mm 규격을 고려해
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시초부터 거슬러 가면
다음과 같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관수송용 국제표준(ISO)파렛트 규격은 4종류이었는데, 현재
는 우리 표준규격을 포함한 2개 규격이 더해져 총 6개 규격이 국제 표준규격으로 확
정되었다. 전문가들은 이중에서도 세계 3대 경제블록을 각각 대표하는 3종의 규격
즉, 미국이 주도하는 1,200x1,000mm, 유럽의 통일규격인 1,200x800mm 그리고 한국,
일본의 표준인 1,100x1,100mm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선진 국가 간의 경쟁은 물류분야에 있어서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이
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자국 표준 파렛트 규격의 확산 노력은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
다. 생산성의 고도화를 이룬 선진국 그룹은 물류합리화를 통한 원가절감으로 경쟁력
확보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한 가지 규격의 파렛트
가 일관되게 사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서로 다른 규격
의 파렛트를 사용하는 국가 간에 파렛트 규격 통일화가 쉽지 않음을 알게 해준다.


 


현재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국 표준인 48inchx40inch
(1,219x1,016mm)규격을 1,200x1,000mm규격으로 변경하여 전 세계에 확산시키고자 전
방위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1,200x800mm 표준 파렛트 사용율이 90%를
상회하고 있지만 미국의 압력에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이미 수립해 놓고 있다.
600x400mm라는 포장 모듈치수가 유럽과 미국의 표준 파렛트에 모두 잘 들어맞는 규격
이므로 융통성있는 대응이 가능하다. 반면 아시아지역의 표준 파렛트가 되고자 하는
1,100x1,100mm 규격은 600x400mm의 포장모듈치수와는 정합률이 극히 떨어질 뿐만 아
니라 아시아 지역 내의 대표규격이 되기에도 아직 몇가지 걸림돌이 존재한다. 단지
2004년도에 아시아지역 10여개 나라가 한국에 모여 역내 표준 파렛트 지정의 필요성
에 공감하고 필요한 절차를 밟아 나간다는 데에 동의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주변정세를 고려하여 아시아 역내 파렛트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한
국은 그동안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상생의 경제번영을 이루
자면 같은 역내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고, 향
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도
한국의 설득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었다. 하지만 세계 제조업의 공장이 되고 있는
중국의 처지에서 한 가지 규격만을 고집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감안, 2005년 10월 한
·중·일이 만난 제주도 회의에서 1,200x1,000mm 규격도 지역 표준 파렛트로 포함시
키기로 3국이 잠정 합의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당연히 우리에게 커다란 문제를 던져주게 된다. 1,100x1,100mm 규격을
국가 표준규격 파렛트로서 처음 주장하였던 일본은 업계의 압력에 밀려 일찌감치 후
퇴하였지만,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이 규격을 굳세게 밀었던 우리로서는 향후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개념적인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관
건이 될 것이다. 한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이 일관수송용 국가 표준 파렛트
는 하나야 하는데, 앞의 사례를 들어 이원화 하자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
다. 또한 아시아 역내 나아가서는 미주 지역까지 포함해서 1,200x1,000mm 규격 파렛
트 사용이 필요할 경우 기술적으로 어떻게 수용하느냐도 큰 문제이다.


 


물론 2006년 초 현재 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아니다. 공개적으로 발표
된 사항도 아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어떠한 형태로 공식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
다. 또한 이 사항에 대해 필자가 핵심 라인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는 것이 시기상조이고 부적절 할지도 모른다. 다만, 과거 T11형 파렛트 표준화를 추
진하면서 특정 분야가 1,200x1,000mm 규격을 표준 파렛트로 하자고 주장하며 반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가 공개적으로 불거졌을 경우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둔 해
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물류란 흐름이기 때문에 斷機之敎의 교훈처럼 끊어지거나 머물
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건이 마땅치 않다고 해서 기존의 정책
을 쉽게 변경하는 憂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일관수송용 국가 표준 파렛트가 2
개가 된다면 제 3, 제 4의 규격도 표준 파렛트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어 질 것
이며 결국은 표준 파렛트로서의 의미도 잃을 것이다. ISO 표준 파렛트가 무려 6개 규
격이 되어 지역 표준 파렛트로 전락되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책
에 따라 국내의 일관수송용 표준 파렛트는 여전히 T11형 하나이며 보급·확산을 위
한 홍보와 각종 지원은 이 규격에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1,200x1,000mm 규
격 파렛트가 필요한 수출제품이나 특정분야를 수용하기 위하여 일부 관련 제도를 완
화하거나 재정비하고 적용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발맞춰서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물류표준설비 인증제도」는 몇 가지
점에서 정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상의 정비와 더불어 실무 차원에서의 대응책은 포장표준화가 해답이
다. 즉, 유럽의 대응책과 같이 1,100x1,100mm 규격과 1,200x1,000mm 규격 파렛트에
모두 적재효율이 좋은 포장규격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규
격은 600x500mm 규격을 모듈치수로 하여 계열치수인 600x250mm, 500x300mm,
500x200mm, 300x250mm, 300x200mm, 250x200mm 등 총 7개의 표준 포장치수 규격이 있
다. 또한 1,200x1,000mm 규격 파렛트에는 적재효율이 86% 정도로 약간 떨어지지만
412x275mm, 471x314mm 포장치수 규격도 양쪽 파렛트에 적용 가능하다. 불행하게도
T11형과 유럽 표준인 1,200x800mm 파렛트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포장규격은
300x200mm 정도 밖에 없다. 유럽 표준 파렛트 사용이 불가피 할 경우에는
600x400mm, 400x300mm, 300x200mm 등 3종의 표준 포장치수를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
이다. 새로운 제품은 설계단계부터 앞에서 거론된 겉포장치수에 정합할 수 있도록 신
경써야 한다. T11형 파렛트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하게 1,200x1,000mm 규격을
써야 할 경우에도 별도의 노력 없이 적재효율 저하는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표준 파렛트 규격 변화는 어느 시점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직 구체적
으로 점치기 어렵지만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적어도 국익에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
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을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물류의 중요성이 커지
고 있으므로 국내외 경제 회복 추세와 맞물려 2006년에는 물류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함께 핵심적인 논의 주제가 될 것으로 예측되
는 파렛트 표준화 문제에 있어서 斷機之敎의 교훈이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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