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0 16:46

기획/선복 뺀 북미항로 분위기반전…유럽항로는 ‘먹구름’

북미항로 앞다퉈 서비스 철수…내달 중순께 운임회복 검토
데일리머스크 등 유럽항로 시황 개선 여지 낮아

●●●올해 들어 컨테이너선 시장은 근해 일부항로를 제외하고 어둠의 터널에서 신음하고 있다. 운임은 1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났으며 선사들의 실적도 지난해 반짝 흑자에서 다시 적자로 줄줄이 돌아서고 있다. 일각에선 올해 국적선사들이 1조원대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심각한 해운불황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북미항로에선 대대적인 선복감축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선사와 화주의 공생관계 구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올해 선사들의 실적은 ‘악몽’ 그 자체다.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14곳의 정기선사 중 64%인 9곳이 적자를 냈다. 나머지 5곳도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에 울상을 지었다. 우리나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상반기 동안 각각 1억8840만달러 95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의 1억1250만달러 1억3800만달러 흑자에서 각각 적자로 돌아섰다.

중국 양대 선사인 코스코와 차이나쉬핑도 지난해 1억4670만달러 1억9550만달러 영업흑자에서 올해 1억4660만달러 8180만달러의 영업적자로 전환했다. 이밖에 대만 양밍도 9050만달러에서 -1억1290만달러로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쓴잔을 마셨다. 대부분의 선사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만큼 고스란히 까먹은 모습’이다.

2009년 악몽 ‘Again’

선사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천억원대의 흑자 잔치를 벌였다가 1년만에 다시 금융위기 시절 겪었던 심각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모습이다. 선사들의 실적 악화는 무엇보다 북미항로와 유럽항로의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물동량 성장 폭은 둔화된 반면 선박량은 껑충 뛰어 운임하락을 부채질했다.

북미항로는 지난해 3분기 이후 시황이 하락세로 꺾인 뒤 근 1년 동안 약세 흐름이 이어져 선사들의 애를 태웠다. 미국 항만분석기관인 피어스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아시아발 미국행(수출항로) 해상컨테이너 물동량은 20피트 컨테이너(TEU) 871만6557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 859만8311개에 비해 1.4%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6월 -3.8% 7월 -5.2% 8월 -3.6% 등 3달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성수기 진입 이후 오히려 물동량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형국이어서 성수기를 맞아 대대적인 운임회복을 벼렀던 선사들에게 치명타가 됐다.

같은 기간 한국발 물동량은 46만5883TEU를 기록해 지난해 45만872TEU에 비해 3.3% 성장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발 실적은 562만3675TEU를 기록, 1년 전 558만3981TEU에서 0.7% 늘어났다.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일본발 물동량은 41만3047TEU로, 지난해 39만3396TEU에서 5% 성장했다. 일본발 실적은 2009년 이후 한국에 추월당했다.

유럽항로는 북미항로보다 양호한 성장률을 나타냈다. 컨테이너트레이드스터티스틱스(CTS)에 따르면 1~8월 아시아발 유럽행 물동량은 1634만200TEU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1559만3900 TEU에서 4.8% 성장했다. 1분기 6% 2분기 3.5%의 성장률을 보인 뒤 3분기 들어서도 2달 동안 5.3%의 성장곡선을 그렸다.

물동량이 보합 또는 증가곡선을 그렸음에도 해상운임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발 유럽항로 운임은 지난해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00달러를 웃돌다 현재 800달러선 안팎까지 떨어졌다. 1년 만에 3분의1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선사들은 유럽항로 손익분기점(BEP)을 1600달러선으로 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실으면 실을수록 심각한 적자를 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40피트 컨테이너(FEU) 기준 3000달러선까지 상승했던 한국발 북미항로 단기수송계약(스폿) 운임은 현재 1700~18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중국 기점 운임은 한국기점보다 더 낮다. 상하이항운교역소에 따르면 상하이-북유럽간 수출항로 운임은 750달러 아래로 떨어졌으며 상하이-미서안 운임은 150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1만TEU 초대형선 100여척시대…공급과잉 부채질

운임 추락은 공급과잉을 빼놓곤 설명할 길이 없다. 초대형선이 집중 투하된 유럽항로 운임의 하락세가 큰 것에서 공급과잉이 시황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컨테이너리제이션인터내셔널(CI)에 따르면 아시아-유럽항로 선복량은 올해 들어 22%나 급증한 것으로 보고돼 선사들을 한숨짓게 했다. 프랑스 해운컨설턴트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전 세계 1만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107척 134만5천TEU로, 이들 대부분이 유럽항로를 취항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북미항로도 올해 들어 하이난PO나 그랜드차이나쉬핑 TS라인과 같은 중화권 선사들의 대거 진출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사들은 공급량 줄이기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공급조절은 아직까지 선사협의체의 손길이 닿고 있는 북미항로에서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에 이은 선복감축 ‘시즌2’인 셈이다.

현대상선과 MOL APL로 구성된 뉴월드얼라이언스(TNWA)는 10월부터 아시아-북미 서안 서비스 한 곳을 중단했다. 다롄-텐진-칭다오-요코하마-LA-오클랜드-요코하마-부산-다롄 순을 연결했던 PCE 서비스다. 이 노선은 APL이 4250~4713TEU급 선박 6척을 투입해 운항해왔다.

한진해운과 코스코 케이라인 양밍이 제휴한 CKYH는 중국 국경절 직후 2주간 선복량을 20% 이상 줄였다. 뒤이어 다음달부터는 코스코가 운항하는 CLX와 한진해운의 SJX 서비스를 항로에서 철수할 계획이다. CLX는 4215~4367TEU급, 한진해운의 SJX는 4367~5089TEU급 선박이 각각 취항 중이다.

그랜드얼라이언스(GA)도 3600TEU급 선박이 운항하는 미 서안 서비스인 JCX를 11월부터 중단키로 했다. GA는 북미동안에서도 노선 하나를 빼기로 결정하는 등 항로 감축에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상반기 북미항로에 진출했던 하이난PO와 TS라인은 중국과 부산에서 북미 서안 남부를 연결하는 서비스 TP3를 지난달 말 칭다오 출항을 마지막으로 중단했다. 이 노선엔 2974TEU급 5척이 운항해 왔다. 이로써 3개 노선으로 시작했던 두 선사의 북미항로 서비스는 TP2 한 곳만 남게 됐다.

노선 감축과 함께 북미항로는 선복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노선 감축을 단행한) 국경절 이후 전 선사들이 선복이 없어서 화물을 제때 못 실어 나르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하며 “현재 선사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운임회복에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화주 터무니없는 운임요구…선사 도산 바라나

북미항로 취항선사들은 현재 상승추세인 분위기를 반영해 빠르면 다음달 중순 이후 운임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선사들은 현재 1700달러선(FEU기준)까지 떨어져 있는 스폿 운임을 2000달러선까지 회복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운임회복을 진행할 예정이다. 외국선사 한 임원은 “GRI(기본운임인상)가 될지 할증료 도입이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운임회복이 도입되는 것은 확실하다”며 “선사들이 사활을 걸고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항로도 서비스 감축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TNWA와 GA가 중국발 기점의 북유럽항로 서비스를 통합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UASC 양밍해운은 지난해 5월 개설한 극동-아드리아해 노선을 오는 12월 중순께 중단할 계획이다. 이 노선엔 4700TEU급 컨테이너선 총 8척이 운항하고 있다.

반면 머스크라인이 이달 말부터 진행하는 중국 기점 ‘매일운항서비스’인 데일리머스크는 시황에 부정적이다. 매일 운항을 위해선 선박의 추가 투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공급상승 압력을 더욱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내년 운송계약(SC)을 앞두고 선사와 화주간 상생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삼성이나 LG 등의 주요 대형화주들은 선사를 대상으로 수송입찰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모 대형화주의 경우 스폿운임을 내세워 올해 계약 운임보다 최소 300~400달러가량 낮은 운임을 요구하고 있어 선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요구가 관철될 경우 이 화주는 북미항로에서 FEU당 1500달러선에서 선사와 계약하게 되는 셈이다.

국적선사 한 관계자는 “100~200달러 정도라면 현재 시황이 안 좋은 점을 고려해 수용할 수 있겠지만 어처구니 없는 운임을 요구하면 어떻게 들어주겠느냐”며 “선사가 파산하길 바라는 것이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를 두고 해운업계 안팎에선 화주와 선사들이 불황기에 고통을 분담하는 구조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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